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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시사포커스] 기업주도형벤처캐피털(CVC) 규제완화의 속내는 지주회사제도와 금산분리 허물기
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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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7,8월호 – 시사포커스(1)]

기업주도형벤처캐피털(CVC) 규제완화의 속내는
지주회사제도와 금산분리 허물기

 

권오인 재벌개혁본부 국장

 
21대 국회가 개원하고 발의된 1호와 2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일반지주회사도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orporate Venture Capital, CVC)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이 법안은 벤처기업과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재벌과 대기업 자본을 활용한다는 목적이다. CVC는 재무적 이익을 추구하고 기관 투자자와 정부, 해외 자본 등이 투자 주체인 일반 벤처캐피탈과는 달리 투자 주체가 재벌과 대기업이고, 재무적 이익 외에 사업 확장, 기술과 인력 자원의 확보, 신시장 개척 등의 전략적 이익까지 추구하는 자본이다. 겉모양만 봤을 때는 마치 벤처기업을 성장시키려는 것 같지만, 뜯어보면 재벌에게 특혜를 주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지주회사제도와 금산분리 원칙 허물기 전략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을 비롯한 8개 재벌·대기업 그룹에서 3조 9,264억 규모로 CVC를 운영 중에 있다. 다만, 일반지주회사의 경우 공정거래법 지주회사 행위 제한에 따라 CVC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즉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경제력 집중과 지배주주의 사익편취를 방지하기 위해 일반지주회사가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회사의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표준산업분류에 따라 금융업에는 창업투자회사와 신기술 사업금융업과 같은 벤처캐피탈도 포함되어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금산분리 원칙을 엄격히 규정해 놓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벤처활성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이 원칙을 깨겠다는 것이다.

초창기 지주회사제도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까지만 허용되었고, 자회사 지분 의무 보유율도 상장사 30%, 비상장사 50%였다. 자회사와 손자회사 간 사업 관련성도 따졌으며, 부채비율도 100%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벌들의 로비와 이를 수용한 정치권으로 인해 지분 보유비율이 상장사 20%, 비상장사 40%로 완화되었고, 부채비율도 200%로 상향, 증손 회사까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으며, 자회사와 손자회사 간 사업 관련성 요건도 폐지되었다. 그 결과 지주회사로 전환한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다. 지금의 CVC 허용 시도도 벤처기업 육성을 핑계로 지주회사제도를 더욱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에 불과하다. 20대 국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을 통해 은행법상 은산분리 원칙을 허문 데 이어 21대에서는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까지 훼손하려는 셈이다. 이들의 뜻대로 개악이 이루어진다면 재벌들은 벤처시장까지 장악하여 더욱 덩치가 커질 것이다. CVC를 통해 지주회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에서 과거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시켰던 그들의 전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과거 경제력 집중 억제책이었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재벌들의 로비와 이를 받아들인 정치권으로 인해 예외가 하나둘씩 늘면서 노무현 정부 말에 무력화되었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차등의결권과 함께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세습과 사익편취 악용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허용될 경우, 재벌 총수 일가들의 경영권 세습과 사익편취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과 현대차그룹 등 재벌 총수 일가들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저가에 계열사 주식을 확보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계열사 기업가치를 증대시켜서 그 자금으로 그룹 모회사의 지분을 확보했던 방식의 불법과 편법들은 세간에 많이 알려져 쉽지가 않다. 때문에 재벌들은 승계와 사익편취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CVC가 허용된다면 재벌 후계자들은 벤처회사를 설립하여 CVC로부터 투자를 받고, 증자와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기업가치를 키워 결국 벤처회사 자금으로 그룹의 모회사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손쉽게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게 된다. 차등의결권까지 보장된다면 더욱 안정적으로 세습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벤처기업 성장 부실과 혁신의 부재는 기회와 유인 문제

우리나라 벤처기업 수는 지난 5월 기준 약 3만 7천 개다. 하지만 이 중 성공한 벤처기업의 이름을 국민들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는 재벌들이 쳐놓은 높고 단단한 진입장벽과 혁신이 일어날 수 없는 불공정한 경쟁환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혁신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회-유인-금융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시장은 금융은 있지만 기회와 유인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재벌과 대기업들은 수직계열화를 통한 내부거래와 하청기업과의 전속거래 구조를 통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새로운 기업들의 진입을 막고 경쟁을 제한시켜 혁신은 물론 시장 활력까지 떨어뜨린다. 아울러 단가 후려치기로 중간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의 혁신을 떨어뜨리고, 기술탈취와 같은 불공정행위가 만연해 벤처기업들의 생존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3만 6천여 개의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벤처기업 정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30%가 기술유출과 디자인 및 상표도용 문제를 주요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선 재벌에게 쏠린 불공정한 시장구조부터 개선해야

전경련을 필두로 한 재계에서는 현 정부 출범 후 지속적으로 CVC 규제 완화를 요구해 왔다. 이러한 재계의 안이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 전면개정을 위한 TF에도 개진되었으나, 경제력 집중과 금산분리 원칙 문제로 인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코로나19 상황을 맞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법안이 발의되었고, 재계에서도 적극 지지하며 밀어붙이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와 M&A를 하겠다면 금산분리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벤처지주회사제도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우선 해야 할 일은 벤처기업들에게 기회와 유인이 생기도록 기술탈취 등 불공정행위를 막을 수 있는 징벌배상제와 디스커버리제도부터 도입하는 것이다. 공정한 시장 토대도 없이 재벌에게 CVC를 맡긴다면 오히려 벤처시장까지 재벌에게 넘겨주게 될 것이다. 아울러 코로나19 상황에서 중소벤처시장을 활성화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재벌에게 특혜를 준다면 재난자본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