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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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야기] [같이 연뮤 볼래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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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9,10월호 – 우리들이야기(5)]

영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해피엔딩을
향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효겸

어느새 코끝에 서늘한 기운이 와 닿는 가을의 문턱입니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같이 연뮤 볼래요?]에서는 지난 편 서두에서 언급되었던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올해의 남은 이야기는 모두 한국 창작 뮤지컬에 대해서 다루고자 하니 기대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박천휴와 윌 애런슨 듀오의 작품입니다. 박천휴-윌 애런슨 듀오는 2012년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로 데뷔했는데요. 두 작품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넘버들의 가사가 아주 서정적이고 내밀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보통의 평범하지만 단단한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하늘색,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분홍색 등 특정 색으로 가득한 포스터를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디서든 그러한 포스터를 본다면 이 듀오의 작품인가, 살짝 기대해 볼 수도 있겠죠.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작업기에 따르면, 대략적인 줄거리는 21세기 후반 헬퍼봇(Helper-bot)이라 불리는,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로 개발된 동시에 인간의 외모와 감정을 지닌 1세대 로봇들이 세월이 흘러 고물이 되었고, 그들이 서울의 변두리 낡은 아파트에 저마다 버려진 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은 지지직거리는 레코드 플레이어에서 ‘우린 왜 사랑했을까(이 뮤지컬의 원제와 같습니다)’가 흘러나오는 어두운 올리버의 방에서 시작합니다.

올리버는 헬퍼봇 5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기능에 보다 충실한 편으로 내구성이 높습니다. 정해진 일과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본인의 방에서 키우는 화분에게 애정을 가득 주고, 전 주인 제임스의 영향인지 재즈 음악을 좋아해 월간 재즈를 매월 받아보면서 꽤 오랜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클레어는 헬퍼봇 6이고 좀 더 관계 지향적인 로봇으로 감정 표현이 보다 능숙하고 재미있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현재 아파트 방 한편에서 지내는 일상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는데요. 클레어는 어느 날, 고장 난 충전기로 인해 같은 층 복도의 여러 방을 두드리다가 올리버의 방을 두드리게 됩니다. 올리버의 충전기를 빌리고 가져다주며 클레어는 올리버의 방으로 찾아가게 되고 올리버가 제주도에 살고 있는 옛 주인 제임스를 만나기 위해 빈 병을 모아 동전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됩니다. 클레어 역시 제주도에만 살고 있는 반딧불이를 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요. 그 둘은 의기투합해서 변두리 아파트를 벗어나 목포-제주 간 해저 터널을 지나 제주도로 찾아가게 됩니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비록 인간이 아닌 헬퍼봇들이지만, 우리는 올리버와 클레어, 그리고 그들과 전 주인들 간의 관계를 통해 우리 인간들의 관계와 감정에 보다 솔직하게 접근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올리버는 전 주인 제임스를 친구라고 여기고 마음속 깊이 그리움을 담아두고 있습니다. ‘고맙다 올리버’(세상 모든 게 다 변해도 너는 여전히 같겠지, 그래 지금처럼 날 위해 그렇게 내 곁에 함께 머물러줘. 착한 우리 올리버 니가 있어 참 좋구나)라는 넘버를 통해 제임스의 따뜻한 눈빛, 표정 그리고 서로를 향한 애정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반면 클레어는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영원한 마음 같은 건 없어. 세상 어떤 사랑도 계절처럼 끝이 와, 결국 모든 건 변해 가) 넘버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고통받던 전 주인이 결국은 견고한 슬픔으로 망가져 버린 과거를 품고 있음이 나타납니다. 클레어는 올리버에게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제주도에 도착해 제임스의 집을 찾아간 올리버는 제임스는 이미 사망했고 그에게 남겼다는 오래된 레코드를 받아서 나옵니다. 둘은 함께 제주도의 숲을 찾아가 반딧불이를 만나게 되고 클레어는 조그마한 병에 반딧불이 하나를 담아 서울의 아파트로 돌아옵니다. 다시 본인들의 방에서 평온한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 두 헬퍼봇은 서로를 생각하다가 사랑에 빠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둘이 제주로 향하면서 불렀던 ‘My favorite love story’가 상상으로 엮어낸 사랑 이야기였다면 서울로 돌아와 둘이 각자 방에서 부르는 ‘사랑이란’ 넘버는 올리버와 클레어가 서로를 생각하고 떠올리며 극이 절정으로 도달하는 부분입니다. ‘니가 날 볼 때 너의 그 눈빛과 니가 웃을 때 너의 그 미소와 니가 먼 곳을 볼 때 너의 그 옆모습과 날 웃게 하는 너의 말투와 너무 따뜻한 너의 예쁜 마음들’ 꾹꾹 눌러 담은 연애편지처럼 가사가 정말 예쁜데요. 물에 물감이 똑 떨어져서 서로의 색으로 닮아가는 사랑의 과정을 잘 표현해 낸 것 같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난 널 더 보고 싶어 널 더 듣고 싶어 계속해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매일을 너와 함께 하고 싶어 난’ 이 넘버를 끝으로 올리버와 클레어는 서로에게 달려갑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올리버는 클레어의 움직이지 않는 다리와 자꾸만 쳐지는 팔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든 고쳐 보려고 헬퍼봇 6 매뉴얼도 찾아보려 하고 자잘한 부품과 공구들을 한아름 들고 나와 클레어를 위로하는데요. 클레어는 어느덧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올리버와 사랑을 멈추자고 말합니다. 클레어가 먼저 마지막에 닿게 될 경우 올리버에게 닥쳐올 엄청난 고통을 피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올리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자고 말합니다. 이전의 올리버라면 아마 무서워서 사랑을 시작하지도 않고 도망갔을 텐데, 이제는 담담하게 ‘너와 나 잡은 손 자꾸만 낡아가고 시간과 함께 모두 저물어 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해’라고 클레어에게 한 발짝 더 내딛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로 인한 슬픔과 고통까지 모두 감수하겠다는 의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레어는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하고 제주도에서 소중하게 담아온 반딧불이도 세상 밖으로 놓아줍니다. 올리버도 놓으려고 했죠. 하지만 올리버는 이전부터 꾸준하게 화분에 말을 걸어주고 물을 주고 키워왔듯이 클레어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둘 다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은 아마 우리 모두의 수만큼 다양할 것입니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본연의 감정은 사실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헬퍼봇들의 사랑을 통해 오히려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 보다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올리버나 클레어처럼 내 감정을 솔직하게 상대방에게 털어놓았던가, 사랑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 좀 더 상대방을 위하고 보듬어주는 사랑을 했던가, 슬픔 앞에서 올리버처럼 용기 있었던가, 자꾸만 곱씹게 됩니다. 우리 역시 올리버와 클레어처럼 끝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끝이 있지요. 그 끝에 다다르기 전에 어쩌면 우리도 올리버와 클레어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 괄호 안은 넘버의 가사 일부를 나타냅니다.


추신.

공연계에서도 최근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관람 수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선 거리 두기 좌석제(띄어 앉기)를 시행하며, 전 관객 대상 체온 측정, 마스크 착용 의무화 및 온/오프라인 문진표 제출 의무화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공연장 내 방역 및 소독, 열화상 카메라 설치를 통한 상시 모니터링 등 공연계에서도 관객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힘내라 공연계


[같이 연뮤 볼래요]에서는 같이 이야기하고픈 연극과 뮤지컬을 소개해드립니다.
필자인 효겸님은 10년차 직장인이자, 연극과 뮤지컬를 사랑하는 11년차 연뮤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