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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경실련이야기] [전문가칼럼] 안보에 제2외국어가 필수적인 이유
202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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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5,6월호-우리들이야기(1)]

안보에 제2외국어가 필수적인 이유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대한민국의 GDP가 작년 말 기준 1조 6,310달러로 세계 10위의 반열에 올랐다. 또 수출에서 7위, 수출입을 합친 교역에서는 9위의 규모를 보여 명실공히 무역강국의 위치를 분명히 했다. 여기에 문화 분야에서의 한류도 지속하여 경제와 문화 모두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우리의 아킬레스건, 안보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는 영역이 있는데 이는 바로 안보다. 안보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항상 답답하다. 그것은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가 아니라 주변 강대국의 역학구도에 철저하게 의존되어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결코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것 같지도 않다. 오직 자국의 이익 관점에서만 접근하여 이익을 취하려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역학관계를 잘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이상론에 불과하다. 지난번 사드 파동 때 이를 이미 경험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이해 당사자만의 대화와 협상을 추구하는 양자주의(bilateralism)에서 벗어나서 문제를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틀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자주의는 근본적인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우리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국들뿐 아니라 제3국들까지 최대한 포함시키는 다자주의의 틀로 문제를 가져갈 때 단지 한반도라는 지역의 문제를 넘어 인류 공영의 가치 추구라는 어젠다를 상정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그리고 오직 그렇게 할 때만이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정책에 한계를 긋고, 제동을 걸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 수준과 정보 취득력은 다자주의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가? 대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은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국제기구 진출 비율이 매우 낮다. 국제기구에서 한국인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이는 기본적으로 낮은 외국어 능력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제 관계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결정을 얻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흔히 영어 하나로 충분하다는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서로에게 외국어인 영어는 이제 기본이고, 보다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언어인 제2외국어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이라는 어젠다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비록 현재는 우리의 역량이 부족하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이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길러야 하지 않을까? 요컨대 유일한 답은 교육에 있다. 동북아라는 지역적 틀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로 나아가 많은 우방들을 확보한 뒤 그들을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이라는 어젠다로 이끌기 위해서는 우리의 어린 세대가 이를 감당할 만한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높은 국제화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인데, 이의 기본 전제가 되는 우리의 외국어 교육 현황을 보면 암울하기 짝이 없다. 오직 영어 일변도의 정책, 즉 제2외국어를 등한시하는 정책도 문제이지만, 제2외국어 가운데에서도 오직 일본어와 중국어에 거의 모든 학생들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물론 동북아의 지역어도 필요하지만 세계 주요어가 너무 홀대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통의 프랑스어, 독일어가 몰락하였고, 스페인어와 러시어어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중국과 미국에 편중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프랑스어권 국제기구(OIF)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인구 증가로 인해 전 세계의 프랑스어권 인구가 2050년에 최대 7억 5천만 명에 이르러 일약 세계 2위의 언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스페인어도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사용하는 매우 중요한 언어이고, 독일어도 EU 내에서 화자의 수가 가장 많은 주요 언어이다. 또한 동구권과 중앙아시아 등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러시아어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으며,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사용되는 아랍어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교역에 있어 지나치게 중국과 미국에 편중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우리는 최근 들어 자주 경험하고 있다. 하루 빨리 해외시장의 다변화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들 주요 세계어들이 학교에서 가르쳐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 당국은 항상 교육 현장에서의 수요 부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요청이 있어야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원인과 결과의 분석이 뒤바뀐 논리이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 보장을 표방한 제7차 교육과정을 앞두고 제2외국어 수요 조사를 시행한 바 있는데 이때 교육부나 교육청을 중심으로 프랑스어와 독일어 교사가 수요에 비해 과다하다고 판단하여 두 언어의 교사들을 감축하기 위한 여러 조처들을 취했으며, 그 결과 대부분의 학교에서 일본어와 중국어만 남게 되었다. 이후 각 학교는 가르칠 교사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 언어들에 대한 수요 조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시하는 일본어나 중국어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이렇게 누구로부터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내버려진 사이 이들 제2외국어는 그야말로 고사 직전에 있다. 예컨대 서울시의 공립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 교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내년 신학기에는 오직 한 명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철저하게 시장논리에만 맡겨둔다면 교육정책은 왜 있으며 교육부는 왜 존재하는가? 이렇게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올바른 국가 미래 계획은 누가 만드는가? 불행하게도 이러한 사태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달 한국외국어대학 사범대가 프랑스·독일·중국어교육과를 통폐합하기로 했다. 이는 한국외대가 가지는 상징성으로 인해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교육부의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이 원인이지만 사실 졸업 후 교사로서의 취업이라는 본래의 목적 수행이 원천적으로 막힌 상태에서 내려진 평가라는 점에서 어쩌면 한국외대는 피해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2외국어 교육, 특히 서양어 교육의 확대 필요

이제 제2외국어의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서양어 교육을 확대하여야 하고 이를 위해 서양어 교사 임용을 확대해야 한다. 선진국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EU의 외국어 교육 정책은 우리에게 좋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언어 간의 아무런 차등 없이 학생의 요구에 따라 서너 개의 외국어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 5월 13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전국 시도 교육감협의회’가 2022년 임용시험부터 독어와 프랑스어 과목을 포함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는 내년부터 교사 임용시험에 독어와 프랑스어 과목이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소식을 전해준 교육감들의 결단에 찬사를 보낸다.

이것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등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번 결정이 우리나라의 제2외국어 교육정책의 대전환이라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제2외국어 교육의 강화와 균형 잡힌 언어의 분배가 우리의 미래 안보 역량을 강화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