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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의원 청부입법은 국민 기만 행위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의원 청부입법은 국민 기만 행위
법원의 구성 다양화·대법관 증원으로 사법신뢰 회복해야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골자로 한 법률안 초안을 준비했으면서도 자신의 명의로 입법청원을 하지 않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인 홍일표 의원을 통해 12월 중순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법원은 사법기관으로 입법이 필요하면 정부를 통해 부처 협의와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치고, 입법예고와 법제처 심사 등을 통해 정식으로 국회에 법안을 접수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입법을 통한 청부입법이라는 편법을 쓰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에 지나지 않는다.

<경실련>은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타당성과 합헌성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민의견수렴절차와 부처간의 다양한 협의절차 등을 회피하기 위해 의원입법을 추진하는 대법원의 꼼수를 강력히 규탄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사법의 정치화로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고 국민의견 수렴에 적극 나서라.

대법원은 그동안 자체법률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밀어붙인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번 상고법원 설치법안 역시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은 물론 일부 지방법원장들까지 나서 국회에 대한 전방위적 입법로비를 벌였다. 대법원이 부처 협의나 법제처 심사 등의 절차가 필요한 정부입법 대신 의원입법으로 이러한 절차를 회피하고자 한 것은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더 큰 문제는 전국 시·도의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법원장들이 입법 활동에 관여하면서 선거관리의 중립성을 훼손한 것이다. 선거관리위원장은 국회의원선거, 정당 활동은 물론 개별 의원의 정치자금까지 관리 감독하는 등 누구보다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다. 결국 이번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입법로비는 사법부와 입법부가 특정 사안에 결탁하면서 사법이 정치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사법권 독립을 훼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표면화되었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상고법원과 관련하여 의원들에게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고 노골적으로 부탁하는가 하면, 12월 5일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는 “재판은 으레 3심을 거치는 것이라는 낭비적·소모적인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데 온갖 지혜를 쏟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사법부 수장의 헌법이 보장한 3심제를 부정하는 부적절한 발언과 태도를 보였다. 결국 양 대법원장 체제에서 보수화, 획일화가 가속화되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더욱 추락하고 있다. 대법원은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고 보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국민의견 수렴에 적극 나서기를 촉구한다.

둘째, 어떠한 이유에서도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와 3심제의 사법시스템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사법정책위원회에서 상고법원 도입을 건의한 뒤 9월 상고제도 개선 공청회를 개최하고 곧바로 입법로비에 들어갔다. 다양한 의견수렴 및 협의절차 없이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만 강조하면서 대법원은 내년 9월 1일 상고법원 시행을 목표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대법원이 부장판사급 20여명으로 구성되는 상고법원을 설치하게 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상고심에서 대법관의 재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국민들은 여전히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상고심을 받기를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3심제의 사법시스템까지 훼손하면서 국민의 입장이 아닌 사법부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접근 방식을 납득하기 어렵다. 상고법원 설치는 위헌적 요소도 가지고 있다. 헌법 제101조 2항의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는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또한 상고법원 설치안에 따르면 상고법원 판사를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대법원장이 임명하게 되어있는데, 상고법원 소속 법관들은 헌법상 상고심을 심리할 권한이 없고, 국민주권 원리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법원은 상고법원을 설치하면서 대법원의 기능을 ‘정책법원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관 체제를 어떻게 구조개편 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재판실무 효율성 논리만을 내세워 대법원의 심리부실 문제를 상고법원에 떠넘기고, 소수의 대법관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안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대법원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 3심을 받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세속적 권위에 얽매여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문제를 직시하고,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법원의 구성을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해답은 상고법원 설치가 아니라 상고심의 인적구성을 다양화하는 ‘대법관 증대’다. 상고심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가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재판의 결과 못지않게 국민들의 재판받을 권리와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여 실추된 사법신뢰를 회복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