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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야기] [같이 연뮤 볼래요] 뮤지컬 <메리 셸리>, 두려움 너머의 자유를 찾아서
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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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11,12월호] [우리들이야기(5)]

뮤지컬 <메리 셸리>, 두려움 너머의 자유를 찾아서

효겸

이번 [같이 연뮤 볼래요] 11번째 이야기로는, 최근 개막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원작인 동명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 <메리 셸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뮤지컬 <메리 셸리>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놀랍게도 둘 다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입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제작했던 이성준 음악감독이 이후 작가인 메리 셸리에 초점을 맞춰서 다시 한번 제작을 하게 되었고, 올해 초연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두 뮤지컬은 비슷한 요소를 함께 활용하는데요. 괴물이 잉태된 어둠, 엄청난 천둥소리, 희미한 괴물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 등을 동일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등장인물의 섬세한 감정표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메리 셸리는 당시 급진적인 어머니와 아나키스트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는 어릴 때 사망하고 본인을 방치하던 새어머니와 동생들에 둘러싸여 힘겨운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극에서도 메리는 본인의 새어머니가 자신이 책장 곁으로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했다고 퍼시에게 털어놓는데요. 메리는 몰래 글을 쓰던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지적 갈증을 채워주던 시인 퍼시 셸리를 만나 그가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손가락질, 지독한 가난, 자식의 사망 등 여러 일을 겪으며 점점 외로움과 고독에 잠식되던 때에 바이런의 별장에 방문하게 됩니다.

뮤지컬 <메리 셸리>는 메리가 죽은 개구리에 전기 자극을 가해 다시금 움직이게 하던 당시 갈바니의 실험을 보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이후 이 실험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모티프가 되는데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도 죽은 사람의 몸에 전기 자극을 가해 새로운 생명이자 괴물을 창조해 냅니다. 메리는 그 실험을 본 이후로 죽은 사람이 살아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괴물 같은 환영에 시달리게 됩니다. 퍼시와의 불화, 퍼시의 아내인 해리엇의 자살, 여동생과의 갈등 등 일련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메리는 바이런의 별장을 떠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쓰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창조한 박사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에서 따온 이름인 건 알고 계셨나요? 괴물은 이름이 없습니다. ‘나만의 언어 rep.1) 넘버에서도 메리가 괴물에게 ‘내가 이름을 지어 준 적이 없구나’라고 되뇌며, ‘자유, 생명 아니면 죽음, 고독 아니면 사랑, 언어 아니면 노래 내가 몰랐던 세상 존재’라고 괴물에게 이름 대신 언어를 부여합니다. 그 과정에서 메리는 괴물이란 자신 안에 숨겨진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겪어온 무한한 고독 속에서 괴물이 자라났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메리 셸리는 본인의 두려움을 꽤 오랫동안 외면해 왔을 겁니다. 심지어 소설을 완성하고 나서도 말이지요. 괴물은 ‘북극에서 만나’라는 넘버를 통해 본인의 마음을 메리에게 토해 냅니다. ‘나에게 말은 가르쳐 준 것은 그대였다. 나를 부정하지 말라. 저주받은 창조자! 왜 당신 스스로 혐오스러워 외면할 끔찍한 괴물을 만들었는가!’라고 외치는데요. 이렇듯 고독하고 슬픈 존재인 괴물의 분노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난 괴물’ 이라는 넘버에서는 자신을 창조해놓고 끊임없이 외면하는 창조주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대한 분노를 ‘나의 신이여 말해 보소서, 대체 난 뭘 위해 만들었나. 정녕 내겐 태어난 이유가 없나’라는 가사와 함께 울부짖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러한 울부짖음은 메리 셸리가 자신을 포함한 세상 모두에게 나타냈던 분노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소설을 통해 메리 셸리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마음을 세상 밖으로 꺼 내고 위로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괴물인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극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네, 제가 바로 이 책을 쓴 괴물입니다’라고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나서는 장면을 통해 메리 셸리의 성장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뮤지컬 <메리 셸리>에서는 메리 이외에 바이런의 주치의인 닥터 폴리도리를 통해서도 마음속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폴리도리는 메리에게 본인도 공포 소설을 쓰고 있다며, 그 소설을 다 쓰고 나면 자유가 있을지 반문하는데요. 폴리도리는 바이런의 글을 몰래 훔쳐보며 본인만의 괴물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나의 괴물’이란 넘버를 통해 폴리도리의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바이런에 대한 동경과 질투, 그리고 두려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의 늪에 빠진 나 또한 괴물, 내가 아는 가장 두려운 이야기, 나의 삶에 깊숙하게 들어와 누가 진짜 괴물인지 모르는 이야기’라고 읊조리던 그는 ‘나의 괴물 rep.’ 넘버를 통해 ‘신이 설령 괴물을 만들었다 할지라도, 사랑의 결말이 영원한 행복은 아니듯, 비록 고통이 더해가는 삶이라 해도 언젠가 찾게 될 행복을 위해 모두가 그렇게 살아’라고 이야기하며 바이런과의 굴레를 끊어내고 자신이 쓴 소설을 남겨두고 바이런의 곁을 떠납니다. 후에 메리와 폴리도리는 다시 만나 ‘이 무서운 이야긴’ 넘버를 함께 열창합니다. ‘두려움 속에 나약한 우린, 책을 덮으면 사라져 버려. 괴물은 이제 두려워하지 않겠어. 이 괴물은 나니까’라는 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두 사람 다 마음속 괴물을 마주했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내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마지막에는 괴물이 창조주를 벌하고 스스로 평안한 안식의 길로 나아갑니다. 이 장면과 어우러진 극의 마지막 넘버인 ‘신이 인간을’에서는 ‘설령 괴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내가 누군지 말할 수 있도록. 설령 아무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인생의 결말이 불행이래도 가는 그 길을 절망으로 살진 않으리’라는 가사를 통해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비극이지만 우리는 역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두려움이란 본인만의 괴물을 마음속에 품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여 러분은 이 괴물을 어찌하실 건가요?

*추신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2018년 이후 4번째 시 즌으로 돌아왔습니다.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 서 11월 24일부터 내년 2월 20일까지 진행됩니다.

1) *rep : reprise, 리프라이즈, 음악에서의 반복을 의미하는데 같은 선율을 반복해서 사용한 서로 다른 버전의 노래


[같이 연뮤 볼래요]에서는 같이 이야기하고픈 연극과 뮤지컬을 소개해드립니다.
필자인 효겸님은 11년차 직장인이자, 연극과 뮤지컬를 사랑하는 12년차 연뮤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