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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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위기 상황에 정쟁 유발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여야 합의로 개정된 국회법은 대통령의 거부로 다시 국회로 돌아가게 되었다. <경실련>은 메르스로 온 국민이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정쟁과 국론분열을 야기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시행령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의 시행령이 모법(母法)에 어긋나도 국회가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다. 이때문에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과 같이 하위법령이 상위법을 무력화하는 소위 ‘법 위에 군림하는 시행령’이 등장해왔다. 세월호 시행령은 특별법이 독립기구로 규정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사실상 정부 하위 기구로 전락시켰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은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행태를 바로잡고자 국회가 시행령이 법률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정부에 ‘수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이다.

위법적 행정입법을 국회가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권한이다. 세계적으로도 모법에 어긋나는 행정입법은 국회에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더구나 이번 개정안은 시정 요구 자체도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가 이 권한을 남용해 발목잡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부의 과대망상이다. 만약 법률 해석에 충돌이 생겨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해당 구성원이나 기관이 대법원에 최종 심판을 요구하거나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권한 쟁의 심판을 청구하면 된다. 이러한 절차가 있고, 학계에서도 합헌 의견이 상당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굳이 정쟁을 유발하는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당초 개정안에 대해 강제성 여부를 놓고 위헌 논란이 일어나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나서 헌법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중재안까지 냈다.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한다’는 조항에서 ‘요구’를 ‘요청’으로 변경해 삼권분립 위배와 행정자율성 침해 가능성을 최소화하거나 없앴다. 그럼에도 이마저 거부한 것은 국회 입법권에 대한 권능을 무시하고 자기 입맛대로 모든 것을 규정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과 다름없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메르스로 인한 위기에 정쟁과 국론분열로 인한 위기까지 더해졌다. 메르스 사태 대응과 국민대통합에 나서야 할 상황에서 사회적 역량을 대통령 손으로 무너뜨렸다. 국민의 위기에는 뒷짐만 지고 있던 청와대가 자신들의 권력 수호를 위해 발 빠르게 나서는 모습은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메르스로 많은 국민과 의료진들이 사활을 걸고 버텨내고 있다. 지금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쟁과 국론 분열이 아닌 사회통합과 국민대통합이다. 책임 있는 자세로 메르스 사태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대통령의 의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국회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헌법의 규정대로 신속하게 재의결에 나서야 한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국회법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하고 메르스 사태 대응과 민생 현안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