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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J 칼럼] [전문가칼럼] 아침, 내일 그리고 인샬라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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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2년 대선특집호]

아침, 내일 그리고 인샬라

박만규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우리나라를 서양에 소개할 때 흔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라는 명칭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아침이 고요해서가 아니었다.

상고 때부터 중국에서는 한반도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를 ‘조선’(朝鮮)이란 이름으로 불러왔다. 고조선(古 朝鮮,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때부터 그러했다. ‘朝鮮’이라는 말에서 朝는 ‘아침 조’이고, 鮮은 ‘빛날 선’ 혹은 ‘고울 선’이다. 그러므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조선은 ‘아침해가 빛나는 나라’, ‘아침이 맑고 고운 나라’라고 불렀다는 뜻이 된다. 왜 이렇게 불렀을까?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은 동쪽에 자리잡고 있기에 아침을 먼저 맞이하며 햇빛이 빛나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鮮을 ‘고요하다’로 새길 수도 있는데, 바로 이 때문에 19세기 구한말 이래 조선은 그 한자의 의미를 직역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로 서양에 소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이제는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을 만들어내는 문화강국이 되면서 세계를 호령하는 ‘Dynamic Korea’(역동적 대한민국)가 되었다. ‘역동적’이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을 여는 나라가 아니다. ‘역동적인 내일’을 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내일’을 나타내는 tomorrow (투모로우)가 ‘아침’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내일’을 뜻하는 영어 단어 tomorrow는 전치사 to(at의 뜻)와 ‘아침’을 뜻하는 명사 morrow(모로우)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이 morrow는 다양한 어형 변화를 거쳐 현대 영어의 morning(모닝)이 되었다. 요컨대 tomorrow는 ‘아침에’라는 뜻인데, ‘내일’을 왜 ‘아침에’라고 명명했을까? 이는 당시 사람들이 ‘내일’을 ‘(자고 일어나) 아침이 되면 오는 날’로 나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로망스어들도 마찬가지이다. ‘내일’을 뜻하는 프랑스어의 demain(드맹)이나 이탈리아어의 domani(도마니), 포르투갈어의 amanha˜(아마냥) 등이 모두 영어의 tomorrow처럼 전치사와 ‘아침’을 뜻하는 명사의 결합으로 이루어 이루어진 말들이다. 독일어에서 ‘내일’을 가리키는 부사 mn˜rgen(모르겐)도 본래 ‘아침’을 뜻하는 명사 ‘der Morgen’에서 왔고 스페인어의 ‘내일’을 가리키는 부사 man˜ana(마냐나)도 ‘아침’을 뜻하는 명사 ‘la man˜ana’에서 왔다. 알겠다. ‘내일’은 ‘아침’에서 왔다. 그렇다면 ‘아침’을 뜻하는 말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영어에서 ‘아침’을 뜻하는 morning과 독일어에서 아침을 이르는 말은 Morgen(모르겐)은 원시 게르만어 (Proto-Germanic) *murganaz에서 온 말인데 이는 ‘해돋이’(日出, sunrise)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는 원시 인도 유럽어(PIE) *merg-에서 온 말로 추정되는데 이의 어근 *mer-는 ‘빛나다’는 뜻이었다. 프랑스어의 matin(마탱), 이탈리아어 mattina(마티나), 스페인어 man´ana(마냐나), 포르투갈어 manha˜(마냥) 등 로망스어에서 ‘아침’을 나타내는 말은 모두 라틴어 matutinum(마투티눔)을 기원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어머니’를 뜻하는 mater(마테르)에서 온 말이다. 우리 모두가 어머니에게서 탄생했듯이, 하루는 아침에서 탄생한다는 뜻을 비유적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침’은 ‘하루의 탄생’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은 한국어도 마찬가지여서 매우 흥미롭다. 우리말의 ‘아침’도 하루의 ‘시작’을 뜻하는 말인 ‘앛’ (‘앗’)에서 왔기 때문이다. ‘아침’은 ‘아’에서 온 말인데, 이는 ‘시작’을 뜻하는 ‘앗/앛’에 접사 ‘’이 붙어 이루어 진 것이다. 이르다는 뜻의 중세어의 ‘아젹’ [朝]’이나 일본어의 ‘asa(朝, あさ)’도 ‘앗/앛’[始,初]’에서 나온 말로 분석된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인도유럽어의 경우 ‘빛나다’에서 (햇빛의) ‘해돋이’가 나왔고 여기에서 ‘아침’이 나왔는데, ‘아침’에서 다시 (아 침이 되면 오는 날이라는 의미의) ‘내일’이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내일은 결국 ‘빛’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빛이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빛은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주므로 세상의 시작이요, 해를 뜨게 해주므로 하루의 시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일을 가져다 주는 희망의 시작이다. 2022년에는 우리 모두에게 항상 오늘보다 더 나은 역동적인 내일이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더구나 팬데믹이라는 비상한 사태가 우리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역동성은 우리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오늘 하루를 잘 보내면 보다 나은 내일이 올까? 올 한 해를 잘 보내면 올해보다 나은 내년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랍인들은 이럴 때 ‘인샬라’(ﻪﻠﻟﺍ ﺀﺎﺷ ﻥﺍ)라고 한다. 아랍인들은 이 말을 참 많이 쓴다. 무엇을 물어보면 그저 ‘인샬라’라고 답변하는 경우가 많다. ‘신이 원한다면’이라는 뜻인 이 말은, 된다는 얘기인지 안 된다는 얘기인지를 딱 부러지게 표현하지 않는 알송달송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잘 생각해보면 사실 너무도 분명한 말이다. 이는 요컨대 신이 원한다면 일어날 것이요, 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원하는 일이 있는데 될지 안 될지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잘 될거야’라는 확신을 주고, 원하지 않는 일 이 있어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별일 없을거야’라는 안도감을 준다.

이보다 더 좋은 덕담이 또 어디 있을까?

“어차피 신이 알아서 할 문제인데 내가 굳이 걱정을 할 이유가 없지! 그래 나는 그저 내가 할 일을 하는 거야. 맞아” 하면서 마음도 편안해지고 적극적인 자세도 갖추어 준다.

결국 ‘인샬라’는 사람이 할 일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사람이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할 뿐, 나머지는 신이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의 제갈량이 한 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동일한 말이다.
올 한 해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역동적인 날들이 펼쳐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