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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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은행의 주식소유제한제도는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은행법 동일인 주식소유제한 폐지에 관한 <경실련> 의견서


1.  재정경제부의 은행법 개정안은 정부정책과 모순이다.  


 정부는 현행 은행법의 소유제한제도의 취지가 ①  산업자본이 은행의 대주주가 될 경우 경영성과의 극대화보다는 경제력 집중을 위한 자금조달의 창구로 은행을 활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으며 ② 산업자본의 은행경영시 예상되는 도덕적 위해(moral hazard)를 금융감독을 통하여 통제하기 어렵다는 감독장치의 불완전성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는 소유제한을 철폐할 경우 이러한 취지의 제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법률적 장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거나 불충분하다. 정부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허용했을 때 이와같은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유지분한도를  철폐한다는 것은 정책의  모순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2.  이 문제는 국가의 사활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현재 환란의 근본적 원인으로  재벌을 지목하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과다한 차입구조에 의존하여 과잉중복투자를 일삼아왔던 재벌의 부실로 인해 천문학적인 부실채권 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되어 국민 1인당 150만원 정도의 세금부담을 떠안게 되어있는 현실이다. 


 은행부실의 원인은 주인이 없어서가 아니다.  은행부실은 표면상으로 부실채권으로 나타나지만 부실채권의 근본원인은 재벌의 부실에 있다. 재벌의 은행소유가 금지되었음에도 그동안 재벌은 권력과 유착하여  은행을 사금고로 전락시켜왔다. 정부가 주인일 때도 재벌은 시중자금을 독식해왔는데 아무런 대책없이 은행소유마저 허용된다면 재벌의 은행 사금고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재벌의 방만한 경영으로 제2의 환란 가능성도 매우 크다.


3.  현재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재벌은 없지만  결국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게 된다. 


 은행법 개정안에 나타난 대주주의 자격요건을 보면  법인의 경우 (계열)부채비율이 200% 이하일 것, 그리고 내부자거래 및  불공정거래 등으로 사법․행정적인 제재를 받은 경우 일정기간 경과 등의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같은 대주주의 자격요건이 있기 때문에 현재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재벌은 없다고 정부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에서는 재벌의 부채비율을 200%대로  낮추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 정책이 성공하게 되면 대부분의 재벌이 자격요견을 갖추게 되는데, 현재 요건으로는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재벌은 없다면서 문제점을 덮어두려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재벌의 이익을 챙겨주는 우를 범함으로써  재벌개혁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4.  개정안을 시행하는 대신에 자격요건을 엄격히 시행한다고 하지만 재벌총수의 친인척들이 모두 은행을 소유할 수도 있다. 


 만약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재 은행을 소유할 정도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주체는 재벌이나 재벌의 소유주 밖에 없다.  삼성그룹의 경우 제일제당그룹, 신세계그룹, 한솔그룹 등 친인척이 관련된 그룹이 여럿  있는데 현행 개정안대로라면 이들 그룹이나 소유주가 모두 은행을 소유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가능하게 된다. 일단 이들이 은행을 소유하고 난 후에는 친․인척의 이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도덕적 위해(moral hazard)를  규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5.  정부의 원칙없고 일관성없는 정책도 문제다. 


 정부가 자금흐름의 활성화를 위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해도 중소기업은 대출이 어려워 연일 부도의 위험에 처해 있고, 은행의 대출은 재벌에게만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같은 재벌의 자금독식현상을 우려하여 정부는 심지어 회사채의 인수마저 규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자금독식현상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재벌의 은행소유를 인정한다는 것은  심히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의 경제개혁작업이 시작되고 난후  지적된 문제점 중 가장  심각한 것이 “개혁의 원칙 부재와 일관성  결여”였다. 이러한 원칙없음과  일관성 결여는 이번 은행법 개정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6.  대주주에 대한 여신제한 및 감독강화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지만 이는 금융감독시스템을 개선하는 최소한의 조치이다. 


 여신제한 및 감독강화는 은행의  소유와 관련없이 시행되어야  할 사항이다. 은행계정에만 적용되는 현행  여신한도를 신탁계정으로까지 확대하고  또 그 비율을 은행 자기자본의 45%에서  25%로 축소하는 것은  대주주만이 아니라, 모든 여신기업에 적용되어야 할 당연한 조치인 것이다.  그리고 이미 국제통화기금과의 합의를 통해 동일인 및 동일계열기업군  여신한도를 이러한 방향으로 개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재벌의 은행소유에  따른 문제점 보완사항이 아니라 현재의 낙후된 금융감독시스템을 일부나마 개선하는데 필요한 조치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감독당국의 무책임한 방임을 감안하면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소유주를 인정하고 있는 상호신용금고의 경우 많은 수가 대주주의 불법적 자금유용으로 부실화된 바 있다. 또한 환란의 도화선이 되었던 종합금융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이제까지 한번도 제대로 작동되어 본적이 없는 현재의 감독시스템만을 믿고 재벌의 은행소유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무책임한 주장을 펴고 있다.


7. 재벌의 은행소유시 교차대출 문제점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재벌이 은행을 소유했을 경우 대주주에 대한 여신규제 및 감독을 강화한다지만 재벌들간의 담합에  의한 교차대출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A]재벌이 [갑]은행을 소유하고 [B]재벌이 [을]은행을 소유했을 경우, 서로간의 담합에 의해 A재벌이 을은행의 자금을  독식하고, B은행이 갑은행의  자금을 독식할 개연성이 많다는 점이다.


8.  소유권에 바탕을 둔 책임경영의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지만 대주주가 없어도 책임경영은 가능하다. 


 은행에 주인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개정의 취지에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재벌의 은행소유를 억제하면서도 책임경영이 달성될 수  있는 방법은 불가능하지 않다. 미국의 일류은행들을 포함해 선진국의 은행들은  눈에 띄는 주인들이 없어도 잘 운영되고 있다. 은행의 주인을 찾아준다는 것은 이 주주들이 정부의 간섭없이 주주의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또 현재도 엄연히 은해의 주인은 있다. 주주들이 주인인 것이다. 


 정부는 은행부실을 소유권에 바탕을  둔 책임경영 부재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과는 독립된 건전한 금융자본을 육성하는 방안에 대해 강구해야 할 것이다.


9.  현행 제도상 복수의 담합에 의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더욱더 재벌의 은행소유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정부는 현행 은행법상 복수에 의한 담합의 우려가  있다고 하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재벌의 은행소유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재벌이 왜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는  은행의 주식을 보유하는가? 그것은 은행의 경영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하는 것을 방치하고 나서 문제로 지적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10. 200%의 부채비율 기준은 무엇인가?


 개정 은행법안에는 법인의 경우 계열 대주주의  자격요건을 부채비율 200%라고 규정하고 있다. 부채비율이 200%라는 것은  타인자본이 자기자본의 2배라는 의미인데 200%의 기준은 전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부채비율을 100%로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즉 최소한 자기 자본이 50%는 넘을 때 채권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지배목적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산업자본과 독립된 금융자본의 경우에도  부채비율이 100%가 되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부채비율 200%를  법인 대주주의 자격요건을 내건  것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재벌의 부채비율 200% 축소정책과 맞추어 은행을 재벌에 넘겨주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1) 은행법 제17조의3 [동일인  주식소유제한 등] (①주주 1인  및 그외 대통령령이 정하는 특수관계에 있는 자(이하 “동일인”이라 한다)는 금융기관의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4를  초과하는 주식을 소유하거나 사실상 지배하지 못한다…….)는 현행 법조항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2) 위에서 지적했던 문제점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법 개정은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특히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더욱 맞지 않는 시책이다. 


  (3) 기본적으로 은행을 재벌에 맡긴다는 것은 공룡에  날개를 달아준 꼴밖에는 되지 않고, 재벌개혁은 물거품이 되며, 한국경제는 또다른 위기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먼저 국민적 합의를 본 후에 세부시행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4) 기본적으로 경실련은 현행 은행법의 개정이 경제의 근본을 뒤흔드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세밀한 준비없이  졸속으로 시행하려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재벌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실련은 은행의 주식소유제한제도는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요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