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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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TV에서 소외당하는 우리, 우리의 가족 그리고 대중문화
200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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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후 칼라시대를 거치며 TV를 시청하는 수용자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그만큼 영상매체가 사람들의 생활 깊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지 살펴보는 조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TV를 보는 것으로 직장이나 사회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결과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아이들은 TV가 가족과 친구의 자리를 대신하는 영상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노인 층이나 주부들 또한 아이들 못지 않게 텔레비전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스스로의 문화적 향유를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거나 경제적 부담을 지불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자신의 취향과는 전혀 관계없이 TV가 보여주는 문화와 정서를 함께 공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방송매체의 유기적 기능을 생각하면 시청률과 소비상업주의에 끌려 다니는 현재의 제작 풍토로 인해 점점 가벼워지는 우리 방송의 현주소가 몹시 안타까우며 이에 최근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가족문화를 어떻게 담아내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Ⅱ.  분석기간
2000년 10월 16일 ~ 200년 10월20일


Ⅲ. 분석내용


1. 먼저 평일 심야시간대와 주말 저녁 대부분의 시간을 10대 중심의 오락 프로그램으로 채우고 있는 방송3사의 편성에서 지나친 양적 불균형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SBS의 <기쁜 우리 토요일> KBS의 <자유선언 토요일> MBC의 <목표달성 토요일>등의 토요일 저녁 방송3사의 여러 오락프로그램들과 일요일 오후 5시 방송되는 10대만을 위한 가요 프로그램 와 KBS의 <슈퍼TV일요일을 즐거워>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등의 일요 오락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젊은이들, 그것도 10대의 청소년만이 공유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 중 몇몇은 처음부터 시청 대상을 10대로 한정시켜놓았다고 제작진 스스로 말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또한 평일 저녁시간을 청소년들에게 상납하고 있는 시트콤<행진> KBS의 <멋진 친구들>과 10대 가요순위 프로그램 KBS의 <뮤직뱅크> MBC의 <음악캠프>가 있고, 심야시간대를 장악하고 있는 MBC의 <섹션TV> SBS의 <한 밤의 TV연예> KBS의 <연예가 중계>등 각 방송사의 넘쳐나는 연예정보프로그램들도 모두 10대 전용의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MBC의 <비밀>이나 KBS의 <가을 동화>같은 미니시리즈들도 10대를 표적으로 하고 제작하고 있는 트랜디 드라마의 맥을 착실히 뒤이어 가고 있다.  


이렇게 주말과 평일 심야시간대가 가족 구성원이 모두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의 프로그램보다는 10대를 위한, 그것도 일부 스타연예인에 열광하는 10대 초반들을 타겟으로 하고 있는 내용 일색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요사이는 CF 조차도 모든 세대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의 광고라기보다는 특정 세대만이 공유하고 있는 이미지를 내세우는 추세여서 10대 위주 젊은이들의 코드를 이해하지 않으면 뒤쳐지고 식상한 문화로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문화의 틈새에 끼어 등장하는 기성세대의 이미지도 극히 희화화 된 채 10들의 취향에 맞는 이미지로 재 포장되고 있다.


2. 소외되는 어린이, 어린이 프로그램


유아와 어린이 프로그램의 방송 환경은 물론 매우 열악하다. 그러나 적은 인원과 제작비 등의 이유를 인정하면서도 가장 아쉬운 점은 그것보다는 제작진의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기존 방송 3사보다 훨씬 적은 제작비와 인원으로도 <방귀대장 뿡뿡이> <딩동댕 유치원> 등을 비롯하여 <퀴즈 천하 통일> 등 유아와 어린이의 각각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어 학부모에게 위안을 주는 EBS가 있기 때문이다.


공중파3사가 구색 맞추기 식으로 방송하는 몇 편의 유아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수입만화로 어린이 시간대를 모두 채우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살펴보면 만화가 어린이 프로그램의 전부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가 하는 의심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 만화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제작된 수입물이기에 문화적 편식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KBS에서  어린이 드라마<요정 컴미>와 어린이들의 동요 콘테스트가 주 주메뉴인 <열려라 동요세상> 등을 꾸준히 방송하고 있는 것으로 공영방송으로서의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하고 있으나 그 외 공중파 채널의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은 전무한 실정이다.


또한 몇 되지 않는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본래의 기본 목표인 재미와 유익함의 조화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해 소기의 목적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MBC의 <뽀뽀뽀>를 비롯한 어린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한결같이 비정상적이고 문제점이 많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영악하거나 아니면 나약하고 의존적이며 때로는 무례하기까지 하다. 비록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 할 지라도 어른들의 비중이 크면 상대적으로 어린이들은 소극적이고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어 소도구로 전락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고 어린이들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면 어른의 존재가 아이들의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만 머물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가지 좋은 결론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여러 부정적인 과정을 거친다면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으로 좋은 평가를 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과정이 바람직하지 않으면 목표가 아무리 훌륭해도,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결국 무의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 명분뿐인 참여, 소도구화하는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소외당하는 우리의 가족들


최근 MBC의 <전파견문록>이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해석한 단어를 어른들이 편을 갈라서 맞추는 것으로 꾸며지는 코너가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어린이들을 매주 참여시키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여타 오락프로그램이 시도하지 않는 어린이의 순수함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주 그 코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문제를 낼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카메라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문제를 푸는 어른들끼리 서로 시끌벅적하게 지내는 동안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스튜디오의 한 구석을 지킬 따름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모두 문제를 풀고 나면 커다란 모자 하나를 선물 받는 것으로 그 역할이 모두 끝나는 것이다. 아무도 그 이상의 역할을 그 아이에게 기대하거나 함께 문제 풀이에 동참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출연하는 아이의 순수함이란 것이 단순히 양 팀의 어른 출연진들이 해나가는 문제풀이를 위해 등장하는 하나의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예는 이미 하나의 성공한 가족 오락프로그램으로 평가받기도 한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노인들의 꾸밈없는 말과 행동으로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한 이 프로그램이 가지는 문제점이 노인에 대한 희화화라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는 주책 맞은 노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어느 정도 있었기에 꽤 긴 시간 유지가 되었다. 문화적 혜택이 부족하고 학식이 낮은 노인들을 단지 정서적으로 우리와 공감하는바가 다르다고 해서 왕따 시키며 웃을 수는 없는 일이며 일반 시청자들도 그 정도의 소양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TV에서 오락프로그램이 그것을 소재로 삼아 이용하고 있다면 시청자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구경거리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만일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노인들이 나의 부모라면 너무 창피하고 싫겠지만 내 가족을 제외한 노인들은 원래 푼수 끼가 있으며 무시당해 마땅하다는 생각에 물들어 노인 세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외면하는 요즘 젊은 아이들의 성향을 더욱 조장할지도 모른다.


사실 노인 참여 TV 프로그램은 화목한 노인 가정을 비추거나 노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건강정보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코너를 두고 있는 KBS의<언제나 청춘>과 노인 문제가 어느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실버>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노인 대상 프로그램들이 방송이 시작되는 새벽시간의 시청률 사각지대에 몰려 있는 것이 편견의 첫 번째 한계이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방송의 편견을 그대로 프로그램 안에 포함시킨 것이 그 두 번째이다. 노인들이 DDR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것 등은 너무 당연한 일인데, 이를 우스꽝스럽고 어리숙한 모습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으며 홀로된 노인을 위한 ‘실버 데이트’코너도 마치 젊은이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처럼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또 일선에서 물러나 여가생활을 즐기는 노인들을 일방적으로 미화하고 긍정적 노인의 위상으로 형식화시키기도 한다.


Ⅳ.결론 및 제언


얼마전 모 기관의 조사에서 여러 대중매체 중에서 텔레비전이 가장 영향력이 큰 매체라는 결과가 나왔다. 거기에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 TV가 대중문화의 흐름을 선도하고, 기성세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TV가 제공하는 정도의 문화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TV는 더욱 모든 세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TV를 통한 문화는 일부 특정 대상만을 위한 것이 아닌 만큼 모든 계층이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잣대로 모든 프로그램을 재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족 시간대에 편성되거나 가족 모두를 주 시청 대상으로 삼고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이라면 그 내용을 수용함에 있어 가족구성원간의 최소한의 공유는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서로가 서로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각색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시청자들은 방송에 대한 신뢰로 인하여 방송내용을 특별한 여과 장치 없이 받아들이고 정보로 습득하고 있다. 특히 방송이 만들고 보여주는 노인의 모습은 곧바로 일반인들이 노인을 인식하는 지표가 되기 쉽다. 방송제작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우습게 그려지는 ‘가정주부’의 한 단면처럼 스테레오 타입화된 보여지는 ‘노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고령에도 역동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해내는 노인들도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음을 인지하고 방송에서 그들의 모습을 올바르게 담아낼 때라야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긍정적 구성원이 될 수 있고 동시에 노인들도 사회의 어른으로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의 시각이 편견으로 물들어 있으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시각을 편견으로 채워나갈 위험의 소지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힘없는 어린이나 노인뿐만이 아니라 장애인 등의 사회적 소수를 다루는 방송의 시각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장애인들을 정상인의 생활에 방해가 되거나 가족에게 짐스러운 존재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방송의 책임을 묻는다면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에서 보여주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현실 사회에서의 장애인의 위치보다 더 왜곡되거나 소외된 채로 나타날 때가 많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이 우리 사회의 좋은 거울이 되기 위해 방송이 가지는 공적 책임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잃지 않도록 견제함에 있기도 한 것임을 제작자나 시청자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