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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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의료분쟁조정법 제정논의에 관한 경실련 입장

현재 국회에서 입법 논의 중에 있는 의료분쟁조정에 관한 법률은 지난 14대 국회 때 처음 발의된 것으로 그 논의가 10여 년간 지속되면서 아직도 법률 제정을 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의료분쟁의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을 위해 현행 제도보다 진전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의료계와 소비자, 관련기관 등에서 반론의 여지없이 공감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분쟁조정법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관계에 따라 법제정의 방향에 대한 논란의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16대 국회에 들어서 한나라당의 이원형 의원이 발의한 의료분쟁조정법(안)은 그동안 앞서 논의된 안보다도 후퇴한 것으로 매우 실망스러운 안이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률 제정(안)은 15대 국회에서 발의된 안이나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에서 이미 합의되었던 사항들을 무시하고 삭제하기로 합의한 내용들을 다시 법안에 담았다는 점에서 퇴보되고 개악된 것이다. (1999년 11월 29일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무과실보상 및 조정전치주의 규정을 삭제하기로 합의한 바 있으며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의 법률 제정(안)도 같다.)


현재의 의료분쟁조정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피해자의 보호와 신속한 구제보다는 오히려 의료인을 보호를 위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여러 조항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경실련의 의견과 입장을 밝힌다.


1. 형사책임특례조항에 대한 의견


우선 이원형 의원의 의료분쟁조정법(안) 제45조 및 제46조에서 보건의료인이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과실치상죄를 범한 경우, 12가지 유형으로 열거된 중과실 유형을 제외한 나머지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또 종합보험 또는 종합공제에 가입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와 상관없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벼운 과실로 인한 사고에 대하여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형사고소비율이 민사소송비율보다 10배 가까이에 이를 정도로 남고소의 경향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법적인 면에서의 명분과 또 종합보험과 종합공제에 가입하도록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과실에 대해서 형법 제268조 업무상과실치상죄를 범한 경우에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를 적용하거나 종합보험 또는 종합공제에 가입한 경우에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다고 하더라도 적용의 예외가 되는 중과실의 유형을 12개 유형으로만 열거하여 한정하는 것은 타당한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법안에서 제시된 중과실의 유형 외에도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유로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형사처벌특례를 인정함에 있어서 그 예외가 되는 중과실의 판단 기준을 이원형 의원의 법률제정(안)에서처럼 일부의 특정한 유형으로만 한정하여 열거하고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과실에 해당되는 사례의 열거조항은 삭제되는 것이 타당하며 구체적인 중과실 여부의 판단은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무과실 보상제도의 도입에 대한 의견


무과실 보상제도의 도입은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무과실 보상제도는  과실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우리나라 민사법체계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의료인의 과실입증책임을 엄격히 할 경우 의료사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실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 피해를 입은 환자 측의 불만과 극단적 행동이 우려되기 때문에 적당히 타협하여 해결하고자 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무과실 보상제도를 도입할 경우 의료인과 환자 모두 과실을 입증하고 과실을 인정하고자 하는 적극적 동기가 없어져 편의적으로 무과실로 판정하려는 동기가 강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의 경우 무과실 책임보험제도 하에서 무과실로 배상되는 비율이 과실이 인정된 경우에 비해 20배 가량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럴 경우 무과실 책임보상제도가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의료사고를 당한 피해자를 사회보장적 차원에서 보호하기 위한 보조적 보상제도로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실책임배상이 예외적인 배상제도로서 전락하게 될 우려가 매우 크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 될 경우 책임도 명확히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용부담은 고스란히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부담하는 전체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 자명하다.


무과실 보상제도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산업재해의 경우 사용자의 부담으로 조성된 재원으로 산재보상이 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의료인의 부담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무과실에 의한 의료사고 보상기금으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부담이 전제되어야 편의적으로 무과실 배상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3. 의료분쟁조정법 제정논의에 대한 경실련의 입장


의료분쟁조정법의 제정을 위한 논의는 1980년대부터 줄기차게 이루어져왔다. 그동안 많은 논의를 거듭하면서도 소기의 성과를 아직까지 거두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의료분쟁조정법의 제정을 위한 논의와 구체적인 내용이 주로 의료인의 이해관계와 주장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어 사회 각계의 광범위한 동의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필요적 조정전치주의, 형사처벌특례의 인정, 무과실 보상제도의 도입 등 논란이 되었던 중요 쟁점들은 모두 의료인의 이해관계와 주장에 부합하는 사안들이다. 그러나 의료분쟁조정법이 법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이러한 조항들을 담아 의료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제정되어서는 의료사고 피해자의 보호와 권리구제에 도움이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피해를 당한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소외되고 과실을 범한 의료인만 책임을 면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


의료분쟁조정법의 제정과정에서 경실련의 이와 같은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 의료사고 피해자와 환자들이 충분히 보호받고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 충실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2003.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