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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9호-3)예산감시’ 비밀회의와 오가는 쪽지’
200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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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처럼 복잡한 예산서


예산감시와 인연을 맺은 지 어언(?) 3년이 되어갑니다. 예산서 한 번 보지 못했고 국회 한 번 가보지 않았던 저에게 정부예산감시라는 거창한 임무가 주어졌을 때 무척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맨 처음 공부를 해보겠다고 서울시 각 구청 예산서를 구입하여 펼쳐보았을 때는 또 한번 황당했습니다. 마치 해석이 어려운 난수표같더군요. 다른 이론서들이야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숙달이 된다고 하지만 예산서는 오히려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고 저는 절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운동가에겐 집요한 추적이 필요하다.


절망한 지 2년7개월이 지난 지금, 누가 저에게 예산서 볼 줄 아냐고 물어보면 저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모르는데요”


전문가들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그 책을 제가 무슨 수로 해독하겠습니까? 
사실 예산감시는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이, 재빠른 계산보다는 집요한 추적이 필요한 운동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국회의 예산심의를 보면서 느낀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우리의 세금을 낭비하는 집단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국회예산심의


원래는 11월8일 끝나는 국회 예산심의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괜한 말이 길어졌네요. 올 해 국회예산심의가 장장 17일간에 걸친 예결위심사를 마치고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한해동안 내내 정부예산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수행하는 것에 비하면 우리 국회의 업무처리 능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원래는 12월2일로 정해져있는 예산처리시한을 대선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한 달이나 앞당기는 여야의 단합된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올해 정부예산이 183조원, 처음으로 국회의 심사를 받게 되는 기금이 160조원, 총 343조의 규모이니까 하루 평균 20조원의 돈을 심사하는 꼴입니다.


그러면 하루 20조원의 그 많은 돈은 어떻게 심의를 했을까요? 10월29일부터 시작된 국회 예결위를 모니터해봤습니다. 일단 예결위원 55명 중에 많이 참석해봐야 15명선, 적을 때는 대여섯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자신의 질의순서가 끝나면 곧바로 퇴장하는 것은 당연한 미덕으로 자리잡은지 오래입니다.


질의내용은 어떻냐구요?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기 위한 의원은 일단 연단으로 나갑니다. 예결위원장이 그냥 자리에 앉아서 하라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2층에 자리잡은 사진기자들의 플래쉬는 불을 뿜구요. 그리고 의원에게 주어진 금쪽같은, 정말 국민들에게는 금쪽같은 질의시간 15분을 오직 오로지 자신의 지역구에 무슨무슨 예산 배정하라고 장관들을 다그칩니다. 주로 각종 개발사업을 관장하는 건교부장관과 기획예산처 장관이 대상이 됩니다.



알고보면 내배불리기위한 선심성 예산


그런 식으로 해서 각 상임위에서 증액된 예산이 4조 2,000억원이 됩니다. 최근 5년간 평균치보다 2배 이상 많은 액수입니다. 내용도 대부분 지역구 개발과 관련된 사업이나 대선을 의식한 선심성 예산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성의원 17명을 위해 사우나실 예산으로 5억 1,200만원도 슬그머니 증액되었습니다. 해도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말이 안 나온다면 그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정부에서 올라온 예산은 국회상임위예비심사, 예결위 종합심사 및 부별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심의, 확정합니다. 계수조정소위원회는 11명의 여야의원들로 구성되는데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무척 치열합니다. 작년 예결위에서 증액된 예산들을 경실련에서 조사해서 발표한 바 있는데 지역관련 증액예산의 85%를 계수조정소위원회 11명중 9명을 차지한 영남, 호남, 충청권의원들이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밀회의와 쪽지


한마디로 들어가기만 하면 남는 장사인 곳으로 의원들 스스로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회의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고 속기록도 남기지 않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회의장 밖에는 수많은 지자체공무원, 이익단체 관련자들이 의원에게 쪽지 한 장 건네려고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러니 어느 누가 우리나라 예산이 공정하고 균형이 잡힌 예산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매년 계수조정소위원회를 공개하라고 요구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지자체, 이익단체들의 로비와 반발에 휘둘릴 수 있다”라는 것이 비공개사유입니다. 언제부터 우리 국회가 이런 로비들을 두려워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일부러 정기국회 기간에 후원회 일정을 잡는 의원들이 숱하게 많은데요. 오히려 전 과정을 공개해서 자신 주장의 타당성을 떳떳이 밝히면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책임있는 정당정치의 모습 아닙니까? 계수조정소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밀실에서 음성적인 로비로 예산이 왜곡 편성된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되풀이되는 우울한일입니다.


사실 이러한 내용들은 정말이지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작년에 항의시위에 썼던 플랭카드를 날짜만 바꾸고 올해 다시 써도 되지 싶습니다. 타성에 젖은 것일까요. 국민들도 식상해하는 느낌이 역력합니다. 덕분에 정부예산을 감시한다는 저마저 어떤 때는 매년 일회성의 관성에 젖은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때가 많습니다. 삭감할 예산만 선정하는 네거티브한 운동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산편성과정에서부터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지역에 근거한 예산감시운동이 필요한 것 아니냐 등등 고민하는 지점도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야지요. 정부예산과 국회 예산심의에 문제가 있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것이 식상한 주제든 아니든 어떻게든지 싸워나가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왜 우리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부예산을, 우리의 세금으로 월급과 온갖 이익을 받는 국회가 농단하는 것을 가만 놔둡니까.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예산심의기간에 맞춰 의견서를 전달하는 식의 일회성 운동에서 벗어나 실효성있고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운동방식과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은 하고 있는데 실제는… 글쎄요, 그 부분은 시민여러분의 감시를 저희가 받아야 겠지요. 내년 이맘때에 제가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좀 더 알찬 내용으로 채우겠다는 다짐으로 대신해야 겠습니다. 


관련내용 :   


2003년 타당성 결여된 사업 예산 8천여억원 삭감조정을 요구한다.


네티즌액션]국회는 국민부담 늘리는 선심성예산 전액 삭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