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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대표 연속칼럼 [박승옥의 법정일기31]
20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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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옥(목포경실련 공동대표, 변호사박승옥법률사무소)

형사법정에서 막 돌아오는 길이다. 오늘은 감회가 있는 날이 되었다. 8년여의 시간이 결실을 거두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28일 오후 4시 목포지원 101호 법정에는 나, 나의 의뢰인, 공동피고인, 그의 변호인 등 4명이 먼저 입장하였다. 재판부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데, 검사석 역시도 비어 있었다. 우리끼리 재판전략에 관하여 이야기하던 중 뒷문에서 사람이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고, 검사석에 가 앉는 것이었다. 분명히 검사복을 그는 입고 있었다. 검사가 맞는지 확인하는 데 수 초는 걸렸다. 끝내 형사재판이 드문 나로서는 형사법정의 흐름에 어두운 터라서, 옆의 후배변호사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요새는 검사가 뒷문으로 다니는가?”

그렇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검사의 출입문이 바뀌었다고 그는 말하였다. 검사의 출입통로를 법관들의 통로 아닌 통로로 할 것을 지난 8년여 동안 나는 주장해 왔었다. 여기 페북에 실었고 작년 이맘 때 낸 나의 책 [시민배심원제 그리고 양형기준]에도 실었던 글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곳 페북에서는 찾아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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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시시한 법정 이야기

시골에서 초등을 마치고 올라온 중학 시절에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은 유달산 자락의 원도심 번화가 가까이에 있었다. 일제 때부터 있었던 법원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하였다. 부근에 변호사 사무소 간판들이 몇 개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고 보니 그 때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은 어디에 있었는지, 같은 건물은 아니었을 텐데 특별히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검찰청이 뭔지 아예 개념이 없는 때였던 탓일 것이다.

고등까지 마치고 서울에 진학하여 법대를 다닐 무렵 언저리에는 법원청사가 구도심의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3층 슬래브 건물이었다. 거의 같은 구조를 한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청사가 나란히 왼쪽 15미터 거리에 있다는 것을 그 때쯤에는 알게도 되었다.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군복무 마치고 나서 서울에서 4년 동안 변호사를 하다가 목포로 사무소를 옮겼을 때도 청사들은 그대로였다. 2011년에 남악신도시 입구에 신청사가 지어져 옮겨오기까지 18년 동안을 그 슬래브 건물의 법정들에서 변론을 하였다.

2011년 신축된 새 청사는 대로변으로부터 벗어난 부주산 기슭에 위치하여 대지도 넓고 분위기도 조용하다. 150 미터쯤 멀찌감치 왼쪽으로 검찰청사도 보인다. 법원정문 바로 맞은편 건물에 들어 있는 나의 사무실에서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그래서 썩 괜찮은 편이다.

법정들은 크기에 따라 대, 중, 소 법정들로, 그 열리는 재판의 종류에 따라 민사법정과 형사법정으로 나뉘고 조정실도 서너 개 있다. 2층에 있는 형사 중법정에서 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신청사에서의 변론생활이 시작된 지 한두 달이 지났을 무렵 어느 날 보니 그 법정에를 법관출입문으로 공판담당 검사가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었다. 석연치 못한 느낌이 든다 싶었는데, 그 뒤 어느 날은 그 법정에서 제일 늦은 순번의 재판을 마치고 보니 검사는 역시 법관출입문을 통하여 퇴정하고 있었고, 또 어느 날엔가는 법정 개정 직전에 법정에 이어지는 통로에서 공판검사와 재판장이 정겹게 인사를 주고 받는 모습이 그 열린 법관출입문을 통하여 나의 눈에 목격되었다.

공판검사의 법정출입을 법관전용 출입문을 통하여 하도록 허용함이 재판에 빚어낼 시비의 여지와 의구심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 나의 불편함의 원인이었다. 국가기관인 검찰에게 저토록 공공연히 예우를 해 주는 법원과 재판장의 처사를 보면서 재판 당사자들은 무엇을 느낄 것인가!
검사를 피고인 자신하고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고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불식간에 생각하게 되지 않겠는가! 검사는 피고인에게가 아니라 재판장에게 대등하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 수 있겠는가 !

피고인의 항쟁의지가 절반은 꺾이고, 피고인을 옹호하려 했던 방청객들과 증인들은 드높은 법정의 저 함께 드높은 검사와 재판장을 보고서 생각을 거두거나 주저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에 끼쳐질 손상이 생각되어 편하지가 못하였다.

시정을 구하는 민원을 고심 끝에 개인자격으로 대법원에 접수하였는데, 사실 여부의 확인을 목포지원에 대법원이 요구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다른 변호사들은 이의가 없는데도 내가 민원을 낸 것이 개인자격으로서인지를 법원 측이 내게 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 나는 지역변호사지회 대표직을 맡고 있었다. ) 그 얼마 뒤에 공판검사의 출입은 변호사들처럼 일반인 출입문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알고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잠깐이었다. 해가 바뀌고 법원 검찰의 인사이동철이 지난 어느 날 보니 다시 법관출입문으로 공판검사가 들어오고 나가고 있었다.

마침, 봄철에 정기적으로 열게 되어 있는 지역 변호사단체와 법원의 간담회가 열리는 시점이었기에 그 석상에서 문제점을 개진하고 적절한 시정조치를 요청하였다. 그 지원장은 평소에 여러 모로 내가 존경하는 분이었다. 상황을 알아보고 나서 입장을 통지하겠다고 그분은 석상에서 정중히 말하였다.

10여 일 뒤에 들은 설명은 전국적으로 신축되고 있는 법원청사의 설계가 그렇게 되어 그 법정에는 검사출입문이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 이를 새로 설치하기가 건물구조상 어렵다는 것, 재판준비를 위한 공판검사용 사무실 한 칸을 법정 통로 쪽에 내주고 있는데 법정출입을 일반인들의 출입문으로 하게 할 경우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다음 걸어서 법정동으로 이동하여 엘리베이터로 갈아타고 법정에까지 다시 올라와야 하는 불편이 있다는 것, 검사의 바쁜 업무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 공판검사용 사무실을 다른 곳에 배치하는 것은 검찰업무의 비밀성 등에 적절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 등이었다.

그러니 이 문제를 일개 재판장으로서나 지원 단위의 법원으로서는 달리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진솔한 말씀이었다.

이제 어쩐다? 이 정도의 성의 있는 확인과 설명을 듣고서도 내 생각을 더 고집할 수 있을까…

더 이상 그 문제에 신경이 쓰이지 않으면 좋으련만,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그 법정에 드나들 때면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피고인을 국가에 대등한 위치에 두지 못하는 법정은 공정하지(impartial) 못하고 따라서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피고인에게 제공해 주어야 할 우선적인 가치이고 그 책무는 법원에 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검사의 법정출입을 법관전용 출입문으로 하게 함은 피고인에게와 국민들에게는 검찰을 우월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게다가 이건 또 뭐란 말인가, 검사의 법원 사무실을 판사들이 배치된 동일공간에 두게 하다니..

이런 생각이 들어 법관출입문 쪽을 애써 외면하는 버릇이 생겼다.

또 해가 바뀌고였을까, 지방변호사회 회장 앞으로 민원성 서신을 보냈다. 공판검사의 법정출입을 법관출입문으로 하게 하고 검사사무실을 판사들하고의 동일공간에 두게 하고 있는 상황을 시정하도록 노력해 달라는 취지로.

여러 달만에 회신이 왔다. 나의 민원에 대하여 집행부가 검토하면서 회원들의 견해를 들어본 결과, 나의 생각에 공감하는 회원들도 상당히 많으나 그 정도의 배려를 검찰이 받는 것은 문제시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더 지배적이어서 나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부디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2017년 봄, 법원과의 간담회 자리에는 일정 관계상 참석하지 못하였다. 검찰하고의 간담회에는 참석하였고, 발언을 자청하여 형사 중법정에의 출입을 수고로이 일반인 출입문으로 해 달라는 요청을 지청장을 포함한 검사들에게 감히도 하였다.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던 것 같고, 여전히
법관출입문이 애용되고 있어 보인다.

그러므로 이곳에 이 글을 쓰는 것은 피고인에 대한 법정에서의 평등한 처우를 향한 6년여에 걸친 내 나름의 노력의 연장으로서이다.

피고인을 검사와의 대등한 위치에 두는 공정한 법정은 검찰업무의 “능률의 요구에 견주어 어떻게든 저울질될 수 있는 모종의 불편이 아니”라 (Coolidge v. New Hampshire (1971)),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는 여러 가지 정부적 편의들을 기꺼이 희생시킬 준비를” 우리 모두가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할 모종의 중요하고도 가치 있는 것이며 (Brown v. Walker (1896), Field 판사, 반대의견),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그 [가치]를 위하여” 우리로서 “기꺼이 지불하[여야 할] 대가”인 것이다. (Feldman v. United States (1944), Black 판사, 반대의견.)
이러한 가치를 법정에서 관철시킴에 있어서 법원을 위시한 법조전문직 종사자들은 항상 예리하게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법원과 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그렇게 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향후의 추이를 또 지켜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