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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침체와 조세정책
 



김  유  찬   

경실련 상임집행위 부위원장

홍익대 세무대학원



세계경제의 침체가 길어지면서 위기탈출 해법을 두고 학자들은 금융의 양적완화와 재정정책으로 양분되어 다툰다. 우리나라에서도 새누리당은 한국은행을 움직여 돈을 풀자고 하고 더민주는 재정을 풀자는 입장에 가깝다. 우선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자금을 염두에 두는 논의에 국한되지만 만일 경기침체가 깊어지면 다른 더 광범위한 범위의 재정지출에 쓰여질 자금에 대하여도 같은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한국은행이 돈을 푸는 것과 재정을 통한 재원조달은 근본적으로 재정책임성이라는 측면에서 구별된다.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는 바람직한 조세의 요건으로 이러한 재정책임성이 드러나는 조세를 꼽고 있다. 세목들 중에서 간접세는 직접세에 비하여 재정책임성 측면에서 열등하다고 본다. 세금을 납부하는 주체와 부담하는 주체가 다르기에 정치가들이 납세자들에게 세금을 부담시키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상대적으로 낮게 느끼며 결과적으로 재정이 방만해 진다고 보는 것이다. 하물며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 정부가 필요한 용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제공한다면 재정책임성은 완전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은행은 독립성을 가지고 정부의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통화정책적 관점에서 필요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경제 문제는 시장에 돈은 많은데 투자를 안하는 것에 있다. 투자를 안하다고 기업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판매될 전망이 없는 상품을 제조할 기업은 없다. 판로가 보이면 기업은 말려도 투자한다. 때문에 기업을 억지로 투자하라고 독려하는 역할을 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를 하고 싶어하도록 거시경제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기업이 투자하고 싶어하도록 거시경제여건을 만들어 나가는데 한은이 돈을 풀어 돈이 넘치는 시장에 추가적인 실탄을 공급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EU에서 양적완화는 시중에 돈이 많아도 일부 국가의 정부가 국채매각이 어려우므로 이를 돕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구조조정자금을 한은을 통하여 조달하자면 이는 시중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재정책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만일 경기침체가 깊어지고 예를 들어 가계부채의 부분적 탕감과 같은 다른 더 광범위한 범위의 재정지출에 쓰여질 자금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은행이 돈을 푸는 것과 재정을 통한 재원조달을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만 판단한다면 결국은 분배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배는 개인들의 저축과 소비행태에 큰 영향을 준다.  


국내총생산 대비 기업투자 비중이 29.1%로 지난해 3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49.5%로 2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제성장과 일자리창출은 투자와 국내소비의 변수이고 투자 또한 수출과 국내소비를 보고 움직인다. 개인들은 가처분소득을 저축이나 소비에 사용하므로 결국 저축이 늘면 소비가 줄 수밖에 없다.


기업도 미래의 수익 전망이 불안하지만 우리나라의 개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다. 여러 가지 요인이 겹치고 있는데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에 사용할 생활비에 대한 걱정, 실업에 대한 걱정, 취업 못하는 자녀에 대한 걱정 등 많은 요인들이 있다. 개인들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합리적인 선택이며 말릴 수 없다. 그러나 국가경제의 입장에서 개인들의 저축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현재의 상황은 큰 문제다. 저축을 통하여 자본시장에 공급되는 자본은 과잉상태이며 정도가 지나쳐서 자본시장의 수익률은 바닥이고 이는 다시 개인들의 노후대비 누적저축액의 예상수익율과 실질자산가치를 낮추어서 더 저축을 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소비는 더 위축되는 것이다. 바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우리 정부는 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자, 배당, 주식양도차익 등에 대한 호혜적 과세를 지속하여 자본의 공급을 늘리는 저축지원이라는 잘못된 인센티브를 계속하고 있다. 다음으로 국민연금을 약화시키고 개인연금을 강화하는 인센티브를 소득세법에 계속 추가하고 있다. 개인연금은 모두 적립식이며 노후대비 저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센티브는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유해하면서 소득 및 자산의 분배도 악화시키는 악수이다.   


분배의 문제가 중요하다. 소득계층 별로 저축율이 다른데 높은 소득계층의 저축율이 높기 때문에 분배정책은 저축율을 낮춘다. 공평성 측면과 효율성 측면에서 모두 바람직한 것이다.    

   
분배는 단기적으로 움직이기 어렵고 여러 경제정책의 종합적 효과가 누적되어 결정되는 것이다. 분배는 매우 다양한 통로로 결정되며 조세재정정책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분배는 우선 시장자체에서 결정되니 정부가 정책으로 개입하기도 힘들고 개입하여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결과가 나올지, 어떻게 나올지 모두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배상태를 방관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분배는 시장작동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분배가 나쁜 것은 그 자체로 시장이 작동 안한다는 것이다. 왜 ?


분배가 악화되는 것은 기업소득대비 가계소득 증가율이 낮아지고, 소득하위에 속하는 사업자들이 많은 서비스업종의 부가가치 창출이 낮은 수준이고, 비정규직 양산, 청년실업, 조기은퇴가 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독점적 위치 때문에 중소기업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노동규율이 적절하게 확립되지 못하고 법이 지켜지지 않아 근로자들이 기업의 일방적 이익축적을 위해 해고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즉 분배의 악화는 시장이 작동하지 않고 이를 공정감시해야 할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배의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회인프라 투자를 위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경제를 대공황의 오랜 침체기에서 탈출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고, 분배지표도 개선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경제는 회복된 것이다. 이 모티브는 그보다 앞서 1930년대 독일을 경제위기에서 회복시킨 히틀러의 고속도로 건설을 필두로 한 정부주도 계획경제에서 찾을 수 있겠다. 대불황의 늪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정부가 부여한 것이다.

 

히틀러의 인종차별과 나치즘을 찬양할 생각은 물론 없다. 다만 역사적 사실로서 경제가 위기이고 개인과 기업의 합리적 선택이 일반균형(General Equilibrium)을 찾지 못하고 국지적 균형(Nash Equilibrium)에 머물 때 정치권의 강력한 리더쉽이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히틀러나 루스벨트 같은 이에게 경제학자가 경제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경제적 해법을 제시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론적 확실성은 사례가 모여야 정립되는 것이고 직면하는 현실적 요구는 엄중하다. 학자들이 제시하는 불확실한 여러 대안들 중에 상대적으로 나은 대안을 골라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성공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권의 역할이다. 현재의 세계는 대공황에 비교되는 국면이다. 다만 당시의 대규모 건설공사는 인력 투입위주의 공사라서 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분배는 개선되고 경제전체의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을 만들어갈 수 있었지만 현재의 건설산업은 장치산업화 되어 버렸다. 이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부여하고, 분배를 개선되고,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현재의 경제구조에 적합한 통로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본고는 월간조세 2016년 6월호 권두언으로 게재될 예정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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