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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성장과 구조조정





김  유  찬  

경실련 상임집행위 부위원장

홍익대 세무대학원


모두의 관심이 경제의 성장에 있다. 성장은 한 국가경제의 종합적인 성적표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경제가 침체기에 있는 현재 성장을 위하여는 우선 경제침체의 원인을 잘 파악해야 한다. 분배를 무시한 성장은 단기적으로는 가능하나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가 경제라느니 혹은 정치라느니 말하지만 정치를 정책이라고 이해한다면 문제는 정치라는 쪽에 동의한다. 잘못된 정책 선택의 결과가 소득양극화와 분배문제로 나타나고 이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저성장의 징후인 것이다. 한번 정착된 분배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의 많은 경제주체가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발전 잠재력은 그 안에서 유실되기 마련이다.    
 
세계경제의 침체가 길어지면서 위기탈출 해법을 두고 학자들은 금융의 양적완화와 재정정책으로 양분되어 다툰다. 우리나라에서도 새누리당은 한국은행을 움직여 돈을 풀자고 하고 더민주는 재정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에 가깝다. 우선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경기침체가 깊어지면 다른 더 광범위한 범위의 재정지출에 쓰일 자금에 대하여도 같은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한국은행이 돈을 푸는 것과 재정을 통한 재원조달은 근본적으로 재정책임성이라는 측면에서 구별된다.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는 바람직한 조세의 요건으로 재정책임성이 드러나는 조세를 꼽고 있다. 세목들 중에서 간접세는 직접세에 비하여 재정책임성 측면에서 열등하다고 본다. 세금을 납부하는 주체와 부담하는 주체가 다르기에 정치가들이 납세자들에게 세금을 부담시키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상대적으로 낮게 느끼며 결과적으로 재정이 방만해 진다고 보는 것이다. 하물며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 정부가 필요한 용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제공한다면 재정책임성은 완전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은행은 독립성을 가지고 정부의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통화정책적 관점에서 필요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경제 문제는 시장에 돈은 많은데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투자를 안한다고 기업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판매될 전망이 없는 상품을 제조할 기업은 없다. 판로가 보이면 기업은 말려도 투자할 것이다. 때문에 정부는 기업에게 투자하라고 독려하는 역할을 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에 나서도록 거시경제 여건을 조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한은이 돈이 넘치는 시장에 추가적인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U에서 양적완화는 시중에 돈이 많아도 일부 국가의 정부가 국채매각이 어려우므로 이를 돕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국책은행들이 필요로 하는 기업구조조정자금의 규모가 한은을 양적완화로 동원할 규모가 아니다. 많아야 십여 조원인데 왜 이를 국채발행이나 증세를 통하여 해결하지 못하나? 만일 경기침체가 깊어지고 가계부채의 부분적 탕감과 같은 다른 더 광범위한 범위의 재정지출에 쓰여질 자금이 필요하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GDP 대비 기업투자 비중이 29.1%로 지난해 3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49.5%로 2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제성장과 일자리창출은 투자와 국내소비의 변수이고 투자 또한 수출과 국내소비를 보고 움직인다. 개인들은 가처분소득을 저축이나 소비에 사용하므로 결국 저축이 늘면 소비가 줄 수밖에 없고 성장률은 낮아진다.


공급주도 경제학은 우리경제는 수출주도 경제이니 해외수출로 경제성장의 활로를 찾아야하며 해외에서 외국기업의 제품과 경쟁해야 하니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기업에게 총력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자율, 임금, 세금, 하물며 전기세 까지 깍아주며 우리는 기업을 지원했다. 예산의 큰 부분을 들여 기업을 위하여 사회인프라를 깔아주고, 대학도 학부모도 기업이 좋아할 만한 인력을 제공하기 위하여 공교육비 및 사교육비의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기업의 경쟁력이 그저 그런 수준이라는 것이다.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 브랜드 상품의 세계적 성공과는 별도로 이들 제품의 핵심 부품은 아직도 우리가 생산하지 못하고 일본이나 독일의 기업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는 것은 별로 비밀도 아니다. 한국의 전 경제역량을 동원하여 대기업을 지원했고 결과가 이 정도의 성과라면 지난 수십 년간 이 역량을 우리가 다른 대안적 발전 방향을 위하여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는 이제 커다란 경제 구조조정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는 경제 전체의 구조조정은 완만하게 진행되는 탓에 의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제 구조조정의 영향력과 범위는 1920년대의 대공황과 비교된다.   


시장경제에서 수요와 공급의 격차는 가격의 조정을 통하여 빠르게 해소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시장에서는 가격순응과정이 아주 긴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경제의 발전과 함께 자본이 누적되면서 자본의 수요, 즉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지 않으면 자본의 수익률이 저하되는데 투자자들이 이 낮아진 수익률에 적응하고 이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노후대비 연금저축이 일정한 자본수익율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 수명의 연장도 경제의 구조조정이 필요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사람들의 수명이 연장되어도 건강한 근로적령기의 기간이 연장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건강한 상태에서의 생존기간이 길어진다. 때문에 은퇴시기를 단순하게 늦추는 일은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없고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한 유연한 과적 은퇴시기를 만들어 근로시간을 연장하지 않으면 연금제도는 큰 혼란과 재정유지의 곤란함을 겪게 될 것이다.


낮아진 자본시장이자율과 은퇴 후 생존시기의 연장으로 노후대비 저축의 필요성은 더 커지고 경제활동기의 사람들의 저축성향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실업에 대한 걱정, 취업 못하는 자녀에 대한 걱정 등 다른 많은 요인들도 있다. 개인들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합리적인 선택이며 말릴 수 없다. 그러나 국가경제의 입장에서 개인들의 저축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현재의 상황은 큰 문제다. 저축을 통하여 자본시장에 공급되는 자본은 과잉상태이며 정도가 지나쳐서 자본시장의 수익률은 바닥이고 이는 다시 개인들의 노후대비 누적저축액의 예상수익율과 실질자산가치를 낮추어서 저축을 하려는 동기를 더 부여한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소비는 더 위축되는 것이다.


제조업 분야의 산업현장에서 자동화/로봇화는 또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서비스 업종에서도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사무인력의 필요성은 급감하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타와 인더스트리 4.0으로 대변되는 발전은 타업종간에도 정보가 긴밀하게 연계되어 생산이 비약적으로 효율화됨으로서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주문생산과 같은 수준의 생산만이 이루어진다. 이는 소비가 같은 수준에 머문다 하여도 산업현장에서 생산되는 소비재와 생산재의 규모의 축소를 의미한다.    

   

현재 사회의 또 하나의 큰 트렌드는 공유사회의 성격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인터넷기반을 통하여 개인들의 소비생활의 정보가 긴밀하게 연계된다. 개인들을 공유소비로 연결하면서 이익을 창출하려는 인터넷기반 중개서비스 기업들이 자동차소비, 주거공간 등 소비생활의 개별 영역에 모두 등장하면서 개인들의 소비의 질이나 효용은 증가하면서도 사회에서 소비재의 생산은 대폭 줄어드는 현실을 이제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겹쳐서 발생하면서 사회에서 고용수준은 지금까지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


자본과잉의 사회에 개인들의 저축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국가경제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소비는 더 위축되는 것이다. 바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우리 정부는 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자, 배당, 주식양도차익 등에 대한 호혜적 과세를 지속하여 저축지원이라는 잘못된 인센티브를 계속하고 있다. 자본의 공급은 더 늘어난다, 또 국민연금을 약화시키고 개인연금을 강화하는 인센티브를 소득세법에 계속 추가하고 있다. 개인연금은 모두 적립식이며 노후대비 저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센티브는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유해하면서 소득 및 자산의 분배도 악화시키는 악수이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회인프라 투자를 위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경제를 대공황의 오랜 침체기에서 탈출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고, 분배지표도 개선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경제는 회복되었다. 경제가 위기이고 개인과 기업의 합리적 선택이 경제전체를 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할 때 정치권의 리더쉽이 문제를 해결한 사례이다. 루스벨트 같은 이에게 경제학자가 경제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경제적 해법을 제시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론적 확실성은 사례가 모여야 정립되는 것이고 직면하는 현실적 요구는 엄중하다. 학자들이 제시하는 불확실한 여러 대안들 중에 상대적으로 나은 대안을 골라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성공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현재의 세계는 대공황에 비교되는 국면이다. 다만 당시의 대규모 건설공사는 인력 투입위주의 공사라서 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분배는 개선되고 경제전체의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을 만들어갈 수 있었지만 현재의 건설산업은 장치산업화 되어 버렸다. 이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부여하고, 분배를 개선되고,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현재의 경제구조에 적합한 통로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경제구조에 적합한 21세기 뉴딜의 역할을 수행할 통로사업으로 어떤 새로운 산업, 혹은 거대 프로젴트가 적합할까? 이러한 통로산업은 우선 두 가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우선 많은 사람들에게 고용기회를 제공하고 소득을 부여하여 경제순환에 새로운 활력과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업 자체의 결과물이 개인들과 기업에 직접적인 효용을 부여하고 시대에 부응하는 수준의 기술개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과연 이러한 사업을 찾아낼 수 있을까?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다. 부결되었으나 유사한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이에게 소득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21세기 뉴딜의 두 가지 요건 중에 첫 번째 요건은 충족시키는 것이다. 다만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면서 아무런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통하여 사회에 효용을 창출해내지는 못한다.


기본소득제는 큰 규모의 재정이 소요되나 또한 장점이 있다. 우선 연금이나 실업급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재정에서 지출하는 기초생계비, 노인복지, 두루누리 사업, EITC 등도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복지비용의 상당부분이 소멸되는 복지전달체계도 간소화 된다. 이 과정에서 재정의 문제는 상당 부분 저절로 해소된다. 기본소득제도는 이와 같이 자유주의적 복지의 특징을 가질 뿐 아니라 기본적인 소득이 확보되면서 사람들은 직장과 사회의 경제 및 정치의 권력자들의 부당한 압력에 대하여 당당해 질 수 있다.



본고는 <정책과비평, 2016년 여름호 시론>에 게재된 원고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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