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에게 업무상 더 큰 주의의무 부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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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07-29 조회수 34842
칼럼

[월간경실련 2024년 7,8월호][시사포커스(4)]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에게 업무상 
더 큰 주의의무 부여해야

- 거꾸로 가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에 반대한다! -

남은경 사회정책팀 팀장

 올해 초 정부는 의료사고 시 의료인의 형사처벌을 구하는 소 제기를 제한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제정 추진을 발표했다. 응급의료·중증외상·중증소아·분만·흉부외과·중증심뇌혈관 등 의료소송 위험이 큰 진료과목의 의사 기피현상 심화로 필수의료가 붕괴된다는 이유다.

 의대 증원을 비롯한 필수의료를 살리는 4대 정책으로 포장했지만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료계에 주는 선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의료사고 시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면제는 20년 전부터 의사단체가 요구해온 민원이다. 발표 초에는 비필수 분야인 미용·성형 부분은 제외했다가 결국 모두 포함해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맞냐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에게는 업무상 더 큰 주의의무가 요구된다. 그런데 전세계 어디에도 유례를 찾을 수 없고 국내 유사법안에서도 위헌 판결이 난 형사처벌면책특례규정을 그대로 벤치마킹하는 것은 필수의료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환자를 더 큰 위험에 내모는 모양이다. 의료인에게만 특혜를 제공해 평등권을 침해하고 위헌요소가 있는 의료사고형사책임면책법 추진에 신중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 내용과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 내용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의 핵심 내용은 의료인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대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처럼 책임보험·공제조합에 가입하면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고(반의사불벌죄 특례), 피해 전액을 보상하는 종합보험·공제조합에 가입하면 경상해와 필수의료행위로 인한 중상해의 경우에는 공소 제기 자체를 하지 못하며(공소제기 불가 특례), 일반의료행위로 인한 중상해의 경우에는 공소 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되 필수의료행위로 인한 사망의 경우에는 형을 임의적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필수의료행위 사망 임의적 감면 특례).

■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포함된 의료인 특혜적 내용

○ 의료인이 책임보험에 가입하면, 환자에게 의료사고로 경상해 또는 중상해를 입혀도 환자가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경찰·검찰이 더 이상 수사를 할 수 없도록 했다. 현행 형사법은 환자와 의료인간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기소할 수 있다.

○ 의료인이 책임보험과 종합보험에 가입하고 환자가 경상해를 당했을 때는 환자가 동의하지 않아도 경찰·검찰에 형사고소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했다. 필수의료행위일 경우에는 중상해를 당해도 형사고소를 할 수 없으며, 환자가 필수의료행위로 인해 사망한 경우 형사고소 및 형사재판은 가능하지만 판사가 형사 처벌을 임의적으로 면제·감경할 수 있도록 했다.

○ 진료기록·영상정보 조작, 의료분쟁 조정·중재 참여 거부, 무면허 의료행위·불법 대리수술, 예방 가능한 환자안전사고, 비의료행위 등 12개 유형에 대해서만 형사처벌특례를 제외하도록 했다.

○ 특례 적용 대상자는 의료법상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및 간호사 등 모든 의료인이 포함되며, 미용·성형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가 포함되도록 했다.

■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의 문제점

○ 위헌 소지가 있다. 중상해 교통사고에 대한 공소제기 불가를 규정해 2009년 위헌결정을 받았던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유사하다. 필수의료행위인 경우 중상해에도 형사고소 자체를 금지하는데 이는 재판절차진술권 침해 소지가 있다.

○ 피해자 보호를 위한 핵심 정책은 담기지 않았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규정된 입증책임 전환을 전제로 제정되었지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없이 형사처벌면책만 주고 있다.

○ 필수의료 회복 효과는 불분명하나 의료인 특혜만 규정한다. 의료사고 위험이 크고 난이도가 높아 기피하는 필수의료 진료과 의사의 형사책임 부담을 완화해 필수의료를 살리려는 목적임에도 모든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의 미용·성형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를 대상으로 중상해·사망·중과실 의료사고까지 형사처벌 특례를 허용하고 있다.

○ 특정 직군을 위한 입법례를 찾아볼 수 없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고, 전문성이 필요한 의료행위의 특성상 의사에게는 일반인보다 고도의 주의의무가 요구된다. 의료인뿐 아니라 위험을 수반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직군의 경우에도 주의의무를 더욱 강화해 안전사고를 예방하려고 업무상과실을 일반과실에 비해 중하게 형사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의료인에게만 업무상과실의 비고의성·비의도성을 근거로 형사책임 특례를 허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형사법체계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불특정 다수(운전자와 보행자 등)에게 적용됨에도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교통사고 방지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폐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또한 환자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환자안전사고 방지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든다는 동일한 비판이 제기된다.

○ 기존 의료인 특례제도에 추가 특례를 제공한다. 「의료분쟁조정법」 제51조 경과실에 의한 경상해 의료사고 반의사불벌죄, 응급의료법 제63조 응급의료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임의적 감면, 의료법 제65조제1항제1호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의료인 면허취소 대상 제외 등 의료인에게 적용되는 특례제도가 다수 존재함에도 추가 특례를 제공한다.  

■ 마치며
 정부가 제정하려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제정안은 의료사고 시 환자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12개 유형 이외의 모든 중과실로 발생한 의료사고’와 ‘사망 또는 중상해 결과가 발생한 의료사고’까지 공소제기 불가와 처벌의 감면 가능성을 열어 놓아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피해구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이라는 제정 취지와 달리 의료인에게 특혜만 부여하는 특례법 제정을 중단하고, 환자피해 구제를 강화하기 위한 종합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환자와 의료인 모두 의료사고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과 소송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신속하고 공정하게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료사고 입증책임을 의료인에게 전환해야 한다. 환자들은 의료사고 발생 시 사실 및 증거 확보를 위해 민·형사상 절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증명 곤란 등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고려해 피해자인 환자에 대한 입증부담을 경감하면 형사 소제기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의료감정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감정부의 거버넌스 개편, 복수감정 제도 도입 등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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