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국은행 개정법률안은 원점에서 재고되어야

관리자
발행일 2000-02-10 조회수 3009
경제

재정경제원은 지난 7월 24일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제도 등 우리 금융의 핵심적인 과제에 대한 개혁추진을 위하여 금융개혁법률에 대한 입법예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입법예고된 법률안들은 그간 우리 경제를 심각하게 왜곡시켜왔던 관치금융체제를 법제화하는 것으로서,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와 금융산업을 개혁시키기에는 매우 부족한 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에 그간 중앙은행의 독립과 관치금융체제의 청산을 위해 노력해온 저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다음과 같이 이번 입법예고안들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고자 합니다. 저희들의 의견을 참조하시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나아가기위한 국정을 전개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I. 한국은행법 개정법률안에 관한 의견


이번에 입법예고된 한국은행법 개정법률안은 현행법상 한국은행의 목적 조항에 포함되어 있는 은행신용제도의 건전화 부분을 삭제하고 은행감독원의 설치근거, 조직, 검사업무 등 한국은행의 은행감독업무에 관한 규정을 철폐하고 있습니다. 한편 중앙은행은 제한적인 자료제출요구권 및 검사기능만을 보유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등 중앙은행의 중립적인 통화신용정책을 크게 침해하는 방향으로 작성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정부의 한국은행법 개정법률안은 원점에서 재고해야 한다고 판단하며, 그 근거로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1. 은행감독원을 한국은행으로부터 분리하게되면 한국은행은 유명무실화되어 중앙은행으로서의 제기능을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은행에서 은행감독원을 분리시키면 실질적으로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는 수단을 잃게 됩니다. 은행감독원의 주요 기능은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건전한 신용질서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은행 경영이 부실화하고, 이로 인해 금융시장의 혼란이 야기되거나 자금결제제도가 불안해지는 경우, 궁극적으로 이를 수습할 수 있는 기관은 발권력을 가지고 있는 중앙은행입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중앙은행이 은행감독기능을 보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은행감독원의 설치근거, 조직, 검사업무 등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여 한국은행의 은행감독기능을 제한함으로써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재고해야 합니다.


2. 통화신용정책 운영에 대한 정부협의조항은 금통위의 소신있는 통화신용정책결정을 제약하고 정부정책의 실패를 무력한 중앙은행에 떠넘기려는 의도로서 철회해야 합니다.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안 제5조는 “중앙은행은 정부와 협의하여 매년 물가안정목표를 포함하는 통화신용정책 운영계획을 정하고 이를 발표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통화신용정책 운영에 대한 정부협의조항은 금통위의 소신있는 통화신용정책을 제약하게 될 것이며, 물가에 관한 정부정책의 실패를 무력한 중앙은행에 떠넘기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물가안정목표제가 실현될 경우 중앙은행은 책임을 면하기위하여 물가안정목표를 과도하게 설정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물가안정이라는 근본 목적을 수행하는 데에도 실효성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조항은 삭제해야 마땅합니다.


3. 금통위 의장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게되면 중립적인 통화신용정책을 운용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안 제13조 2항에 의하면 금통위 의장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금통위 의장을 이와 같이 임명할 경우 금통위 의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중립적이고 소신있는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기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금통위 의장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여 국회의 견제를 받도록 하여야 합니다.


4. 제2금융권을 포함하여 모든 금융기관에 대해 통화량 조절에 관한 사항은 한국은행이 갖도록 하여 총괄적인 통화금융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외개방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외환업무도 통화량 관리에 관한 것은 중앙은행이 갖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현재 한국은행이 통화관리상 통제할 수 있는 수신고는 전체의 30%이하로 중앙은행의 통화금융정책이 실질적으로 무력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특수은행 및 제2금융권에 대한 통제권을 한국은행이 갖도록 하여 총괄적인 통화금융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한편, 외환관리업무에 대한 관할권도 재정경제원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금융시장 교란이 거의 통제되지 못하고 경제교란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재정경제원이 관장하고 있는 외환업무는 전문적인 국제적 차원의 통화금융정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 관할권을 주무처인 한국은행에 복귀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입법예고안에서는 외환정책에 대한 중앙은행의 독자적인 정책기능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정부의 환율, 외화여수신, 외국환포지션 정책에 대한 협의기능만을 부여하고 있으며 제2금융권과 관련한 정책수단을 여전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합니다.


5. 중앙은행의 명칭을 ‘한국은행’에서 ‘한국중앙은행’으로 변경하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없으며 불필요한 혼란과 비용을 초래하게됩니다.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안에서는 한국은행의 명칭을 한국중앙은행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십년간 국내외적으로 통용되어온 한국은행이라는 명칭을 변경할 경우에 많은 불필요한 혼란과 비용을 초래하게 될 것인데, 이러한 중요한 조치를 아무런 합당한 이유없이 실행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 중앙은행의 명칭 변경은 마땅히 철회해야 합니다.


II. 금융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신설법안에 관한 의견


재정경제원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신설법안]을 제정하여 국무총리 소속하에 중앙행정기관인 금융감독위원회와 무자본특수법인인 금융감독원을 설치하고자 하나, 이것은 감독기능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관치금융을 법제화하여 보다 강고히 할 수 있으므로 철회되어야 마땅합니다.


금융감독기관을 통합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나라 금융산업구조상 적절치 않으며, 오히려 감독기능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통합된 금융감독기관을 총리실 산하에 두는 것은 관치금융을 법제화하여 보다 강고히할 수 있으므로 철회해야 합니다.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의하면 현재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으로 분리되어 있는 금융감독기관을 금융감독원으로 통합하여 국무총리 소속 중앙행정기관인 금융감독위원회 산하에 두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금융의 겸업화 추세에 따른 감독 기능의 통합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금융감독은 분야별로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므로 통합보다는 현재대로 분리하고, 대신 효율적인 정책조율을 위해 금융감독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아직 금융시장이 통합되지않은 상태에서 감독기능만을 통합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더욱이 은행감독원이 관치금융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국민경제적인 피해를 많이 입혀온 상황에서, 이것이 정부산하로 갈 경우에는 관치금융을 법제화하게되며, 우리 경제는 정경유착 비리의 희생이 더 클 수 있습니다.


III. 은행법 개정법률안에 관한 의견


1. 현행법상 금통위 및 은행감독원장 권한을 재경원, 금통위,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에 배분.조정하는 것은 한국은행을 무력화시키고, 관치금융을 법제화하는 것으로서 철회해야 합니다.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의하면 현행법상 금통위 및 은행감독원장의 권한으로 되어 있는 것중 은행업 인가 및 취소 관련사항은 재경원의 권한으로 하고, 은행 건전경영 지도.감독 관련 인.허가권은 금감위의 권한으로 하며, 은행 검사.제재권은 금감원의 권한으로 하며, 금통위는 매우 제한된 권한만을 보유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은행의 건전성 감독 기능은 통화신용정책의 운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중앙은행이 은행감독권을 상실할 경우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기어려울 뿐만아니라 유명무실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될 것입니다. 또한 은행감독권이 정부 산하로 갈 경우에 관치금융을 법제화하여 더욱 강고히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조항들은 철회해야 마땅합니다.


2.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의하면 은행소유지분한도를 4%로 통일하되,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금감위의 승인을 얻은 경우에는 발행주식총수의 8-15%까지 확대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기업으로서의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서 철회해야 합니다.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이라는 명분하에 재벌의 은행지배를 허용하는 것은 한국의 금융산업을 관치금융체제에서 재벌금융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여 재벌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등의 부작용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중립적인 금융정책의 수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금감위의 승인에 따라 소유지분한도를 8-15%까지 허용한다는 것은 시중은행을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므로 마땅히 철회해야 합니다.


3. 은행장후보 및 감사후보의 추천권을 가지고 있는 비상임이사의 구성은 소수의 대주주 뿐만 아니라 다수의 소액주주도 포함시켜 은행의 민주적 경영구조를 확립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비상임이사 구성비율 조정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참여를 배제시키는 것으로 관련 조항에 대한 재고가 필요합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주주대표의 경영참여 강화라는 명분하에 현행법상 대주주대표(지분율순) 50%, 소액주주대표 30%, 이사회추천 20%로 되어 있는 비상임이사 구성비율을 주주대표(지분율순) 70%, 이사회추천 30%로 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사실상 소액주주의 비상임이사 참여를 배제시키고 있습니다.


대주주만이 은행의 주인이며, 대주주의 경영참여를 강화할 때만이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논리입니다. 정부간섭을 없애고 소액주주라도 은행장이 주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제도화 한다면 얼마든지 책임경영이 가능합니다.


오히려 지분율순으로 비상임이사를 구성하는 것은 재벌의 은행지배를 가능케하여 시중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비상임이사 구성비율을 조정하는 조항은 재고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금융제도 자체가 정치권력에 예속됨으로써 정치적 통화남발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금융제도 전체가 권력의 사금고처럼 이용되면서 경제는 정경유착 비리의 피해가 컸습니다. 특히 경제가 물가와 투기의 구조적 악순환에 휘말려 부익부 빈익빈의 소득격차가 심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공동운명체 의식이 사라지고 붕괴현상에 가깝습니다.


또한 금융혜택이 대기업 중심으로 지원되면서 중소기업들은 빈사상태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산업구조의 저변이 취약한 것이 경제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세계화에 있어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중앙은행의 실질적인 독립과 금융자율화를 중심으로 한 금융개혁작업은 우리 경제의 회생을 위해 절대적인 과제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입법예고안들은 이러한 과제를 충족시키기에는 극히 부족하며, 오히려 관치금융체제를 법제화하여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입법예고안은 심각히 재고되어야하며 관치금융청산과 중앙은행의 독립이라는 취지에 맞게 재작성되어야합니다.


이러한 전국민적 염원을 깊이 헤아리시어 반드시 정책입안과정에 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997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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