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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부패는 악취가 아니라 향기를 내뿜는다?

[월간경실련 2021년 3,4월호 – 우리들이야기(1)] 부패는 악취가 아니라 향기를 내뿜는다?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LH(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공적인 개발 정보를 자신들의 사익 편취에 이용했다는 사실은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청렴은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데, 오히려 이들이 부패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부패하다’라는 뜻의 영어 어휘 corrupt는 라틴어로부터 14세기에 고대 프랑스어를 거쳐 들어간 말로, 라틴어 동사 corrumpere는 ‘함께’라는 뜻의 cor와 ‘파괴하다’라는 뜻의 rumpere로 이루어져 있다. 즉 생물체가 썩거나 부패한다는 추상적인 개념을 ‘(내부 요소들이) 함께 파괴된다’고 나타냈던 것이다. 그러다가 15세기에 들어서는 뇌물을 받거나 부정한 일을 하여 사람이 정신적으로 타락한다는 비유적인 의미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함께 파괴된다’라는 뜻의 이 어원은 마치 한 개인의 부패 행위가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부패행위자가 속한 집단과 국가 전체가 ‘함께 파괴된다’는 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어서 소름이 끼친다. 영어의 속담 ‘A rotten apple spoils the barrel(썩은 사과 한 알이 전체 사과를 썩게 한다)’도 같은 맥락의 사고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국가의 멸망은 부른 것은 전쟁이라기보다 부패였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단합을 요구하는데, 부패로 인해 분열이 되면 전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부패는 도덕적 해이로부터 발원한다. 규율과 기강이 느슨해지고 긴장감이 풀리면 도덕적으로도 와해가 된다. 실제로 이번 부패 사건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이로써 향후의 정부 정책이 잘 안 먹히게 만들 공산이 크다. 준법정신에도 큰 타격을 입혀서 법은 오히려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생각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 이는 결국 사회계층 간 갈등과 균열을 초래하여 사회 통합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

발행일 20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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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올해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

[월간경실련 2021년 1,2월호 – 우리들이야기(1)] 올해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경실련 회원 여러분들과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올해는 모두 건강하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를 바란다. 새해 들어 나이를 한 살 먹음과 함께 떡국은 모두 드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각자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결코 섭취하면 안 되는 나쁜 음식의 목록을 알려드리고자 하니, 부디 이 같은 음식들을 최대한 피함으로써 많은 성취와 성장을 이루시기를 바란다. 단, 여기서 말하는 음식은 육체 건강이 아니라 정신 건강에 나쁜 음식들임을 먼저 밝힌다. 즉 실존하는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 세계에 존재하는 가상의 음식들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새해에는 ‘골탕’을 먹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 ‘골탕’이라는 것은 이름을 보면 분명히 탕(湯) 종류인 것 같은데, 그 누구도 먹어보았다는 사람이 없는 정체불명의 매우 이상한 음식이다. 물론 파는 곳도 없다. 올해는 골탕을 먹지 말자. 골탕을 먹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물을 먹는다’는 말도 있는데, 열심히 일하다가 혹은 사람을 믿고 일을 하다가 막판에 ‘물’을 먹는 일이 있으면 안 되겠다. 다만, 좀 다른 이야기이기는 한데, 기회가 되어 ‘외국물’을 먹는 것은 괜찮다. 다른 사람에게서 ‘엿’을 먹는 일도 없어야겠다. 물론 남에게 엿을 먹이는 일도 하면 안 되겠지만. 또한, 시험을 칠 때는 절대 ‘미역국’을 먹으면 안 된다. 다만 생일날에만은 괜찮다. 다음으로 나이를 먹으면 특히 더욱 자주 먹게 되는 고기가 있는데, ‘까마귀 고기’이다. 이것은 파는 데도 없는데 어디서 구하는지 희한하게 자꾸들 먹는다. 너무 자주 먹으면 치매에 아주 안 좋으니 피해야 한다. 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음식이 ‘김칫국’이다. 물론 이 김칫국은 마시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나, 김칫국‘부터’ 마시면 안 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식사를 시작할 때 숟가락으로 김칫국을 떠먹는 경우가 있...

발행일 202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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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아버님’, ‘어머님’, ‘언니’, ‘이모’ - 이상한 호칭의 기원

[월간경실련 2020년 11,12월호 – 우리들이야기(2)] [전문가칼럼] ‘아버님’, ‘어머님’, ‘언니’, ‘이모’ - 이상한 호칭의 기원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이모, 여기 젓가락 좀 갖다 줄래요?” “여기 있어요, 언니.” 식당에서 들은 옆 테이블의 손님과 종업원 사이의 대화인데, 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길래 ‘이모’라고 부른 사람한테 ‘언니’라고 하는가? 물론 막장 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요즘 이런 이상한(?) 호칭들이 난무한다. 예컨대, 중년의 남성이나 여성이 상점이나 병원 같은 곳에 가면 기본적으로 듣는 호칭이 ‘아버님’, ‘어머님’이다. 이런 식의 호칭에 이제는 만성이 되어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어색해 하거나 심지어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왜 이런 호칭이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이런 현상은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말에는 오래전부터, 본래 친족을 가리키는 단어를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인을 가리키는 말로 확장하는 기제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우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러하다. 이들은 본래 조부(祖父)와 조모(祖母)를 가리키는 친족어이지만, 어린아이를 기준으로 볼 때 조부모와 비슷한 연령대에 있는 사람, 즉 노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분명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닌데도 말이다. 영어에서는 친족어로서의 의미, 즉 조부, 조모의 의미로는 grandfather, grandmother라고 하지만 단지 노인을 가리킬 때는 old men, old lady라는 다른 단어를 쓴다. 우리말에 ‘할아버지’가 이렇게 두 가지 뜻이 있다 보니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는데, 예전에 어떤 젊은 학생 통역이 ‘저 할아버지가 물건을 가져갔다’고 하는 말을 ‘the old man’이라고 하지 않고 ‘the grandfather’로 통역하는 것을 보았다. 다음으로 ‘아주머니’, ‘아저씨’가 있다. 이 말들도 본래는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항렬의 친척, 예컨대 ...

발행일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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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삼시 세끼’보다 ‘함께 한 끼’를 하자!

  [월간경실련 2020년 9,10월호 – 우리들이야기(2)] ‘삼시 세끼’보다 ‘함께 한 끼’를 하자!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소위 ‘방콕족’이 되었다.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이 말은 방에 콕 처박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뜻하는 약어이다. 그런데 이보다는 약간 더 활동 범위가 넓은 사람은 ‘동남아족’이다. 이는 동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방콕이건 동남아건 ‘삼시 세끼’를 집에서 먹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다.  그런데 왜 ‘삼시 세끼’라는 말이 생겼을까? 이는 하루에 세 끼를 다 챙겨 먹는다는 뜻으로, 본래 우리 민족이 두 끼를 먹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여 나타난 말로 추정된다.  기록에 보면 과거에 한국인은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었다. 1123년 고려 중기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18세기 후반 조선 후기에 이덕무가 쓴 문집인 『청장관전서』에도 우리 선조들은 두 끼를 먹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물론 여러 끼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게 하는 몇몇 문헌들을 볼 수도 있으나 이들은 간식의 개념들로서 오늘날의 주식의 개념이 아니므로 논외가 된다.    사실 우리말에 식사를 가리키는 단어로 고유어로 된 말은 ‘아침’과 ‘저녁’밖에 없다. ‘점심(點心)’이라는 말은 한자어이다. 이는 점심이 아침과 저녁 식사의 두 끼 체계 이후에 도입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리고 그나마도 처음에는 정식의 식사가 아니었다. 선불교(禪佛敎)에서 ‘마음에 점을 찍는’ 혹은 ‘마음을 점검하는’ 수준으로 먹는 ‘간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점심(點心)’을 북경어에서는 ‘디엔신(diǎn-xin)’이라고 하지만, 중국 남부의 광동어에서는 ‘딤섬(dim-sum)’이라 하는데, 홍콩이나 대만에 가면 흔히 먹을 수 있는, 만두 같이 생긴 간식이다. 지금은 그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지만, 원래는 주로 점심경에...

발행일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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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거리둔 협력’으로

[월간경실련 2020년 7,8월호 - 전문가 칼럼]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거리둔 협력’으로   박만규 아주대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가 멈출 줄 모르고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다행히 지금까지 방역이 가장 잘 된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 요인들은 무엇일까?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우선은 감염원을 끝까지 추적하는 정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포기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할 때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바이러스를 관리할 수 있었다. 또한 코로나19의 출현을 염려해서 진단법을 준비했었고 출현하자마자 바로 키트를 만들었으며 정부는 긴급사용승인 허가를 내주었던 상호 협력, 즉 소위 3T, 즉 Test(진단), Tracing(추적), Timing(타이밍)의 3박자가 모두 잘 맞아떨어졌던 이유도 있었다. 왜 정부와 보건당국과 민간이 서로 협력할 수 있었을까? 이는 평소에는 서로 헐뜯고 싸워도 위기 때는 뭉치는 한민족 특유의 민족성에 기반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 하나를 든다면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손 씻기와 더불어 생활방역의 핵심 중 하나인 마스크 착용의 적극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서양인들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스크 하나는 참 잘 쓰고 다닌다. 그렇다면 왜 서양인들은 마스크 쓰는 것을 싫어할까? 이는 마스크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와 관계가 있다. 우리가 쓰는 ‘마스크’라는 말은 영어의 mask에서 왔다. 우리말에서의 ‘마스크’는 병균이나 먼지 따위를 막기 위하여 입과 코를 가리는 물건이라는 제한된 의미로만 쓰이지만, 본래 영어에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의 일부뿐 아니라 전체를 가리는 물건을 두루 가리킨다. 그러니까 방독면, 검투사용 투구 등까지도 mask가 된다. 이 mask는 프랑스어 masque에서 왔고 이는 중세 라틴어 masca에서 왔다. 그리고 이는 프로방스어(provençal, 남부 프랑스 ...

발행일 2020.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