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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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유란 무엇인가?

이 번 글에서부터 상생적 자유주의에 관한 본격적 논의를 시작하자. 먼저 자유란 무엇인가부터 생각해 보자. 자유의 세 가지 용법 자유(自由)란 현대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평등이나 정의보다도 더 인기 있는 말이다. 이념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대개는, 추구하는 이념과 상관없이, 모두 자유를 달라고 외친다. 공산주의자 중에도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정의나 평등처럼 자유도 우리 모두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친숙한 단어이지만 막상 정의해 보라고 하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말이 나와서 정의하기가 쉽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정의가 어려운 주된 이유는 자유의 의미가 여러 개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용법이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표현은 다를 수 있지만 자유의 일반적 의미는 억압이나 제약이 없는 상태 혹은 그리하여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의 일반적 의미는 비교적 한 가지로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혼란이 발생하는 것은 자유가 사용되는 용법이 다음과 같이 적어도 세 가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① 행동이나 생각을 제약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음: 출입의 자유, 자유로운 영혼, 자유롭게 날다 등. ② 나쁜 것이나 싫은 것으로부터 벗어남 :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무지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 ③ 개인의 당연한 사회적 권리(기본인권)로서의 자유 :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재산 처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지선택의 자유 등. 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옛날부터 있던 단어(개념)이다.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에도 이 단어가 310번 나오고 그 뜻도 ①과 동일하다. 자유로운 정신처럼 형용사로 쓰이거나, 자유롭게 날다처럼 부사로 쓰일 때의 자유의 의미는 모두 이것이다. ...

발행일 2011.04.28.

칼럼
참다운 이성으로 과학실증주의를 극복하자

이 글을 쓰는 나의 입장을 먼저 밝혀 두고자 한다. 가치판단을 배제하는 과학실증주의를 참다운 이성(理性)으로 극복하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먼저 과학실증주의를 비판한 다음 참다운 이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사람의 판단에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두 가지가 있다. 봄 날에 활짝 핀 매화 꽃을 보고 매화꽃임을 아는 것이 사실판단이고 매화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치판단이다. 사실판단의 오류는 객관적으로 판정할 수가 있지만 가치판단은 사람의 취향과 이해관계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르므로 오류를 객관적으로 판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가치판단을 과학의 대상에서 배제하자는 과학실증주의가 20세기 이후 현대 세계에서 사회과학자와 자연과학자를 막론하고 대부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막스 베버(Max Weber)의 유명한 몰가치론(沒價値論)이 과학실증주의의 대표이다. 전공학과에 상관없이 대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과학실증주의가 올바른 과학자의 태도라고 배우고 평생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생각에서 과학자들은 자신의 할 일은 목표를 정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목표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자신을 변명하면서 주어진 과제를 무비판적으로 수행한다. 2차대전 시에 독일 나치정권이나 일본 군국주의 정권에 봉사한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요즘 세상에서도 재벌이나 권력이 시키면 무엇이든 하는 학상(學商)이나 학노(學奴)들이 어느 나라에나 많다.   가치판단의 두 가지   ▲ 막스 베버 ⓒ구글(google.com) 얼핏 생각하면 가치판단을 배제하자는 실증주의는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틀린 주장이다. 나치에 의해 추방되었던 독일의 자유주의 사회경제학자 뢰프케(Wilhelm Röpke, 1889-1966)의 말처럼 "실증주의 자체가 현실 비판을 회피하겠다는 가치판단을 내포하고 있다." 자연...

발행일 2011.04.14.

칼럼
천민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하여

이 시리즈를 쓰는 목적은 현재 세계와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 천민자보주의를 극복하는 데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나는 상생적 자유주의를 제안한다.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는 당장 눈 앞의 돈만 생각하는 천민자본주의가 초래한 대재앙이다. 사고 발생 즉시 바닷물로 냉각시켰더라면 수습되었을 것을 비싼 원자력 발전소가 바닷물로 못 쓰게 되는 것이 아까워서 주저하다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라 한다. 이번의 끔찍한 사고를 보고도 이명박대통령과 오바마대통령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천민자본주의의 눈으로 만사를 결정하는 대통령들이 국가와 인류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세상에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단지 돈벌이를 목적으로 강산을 파괴하고 수많은 동물들을 마구 살륙하고 통제도 못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 방사능을 대량 누출시키고 있다. 천민자본주의는 인간의 윤리만이 아니라 인간의 목숨, 나아가서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작은 별을 무서운 속도로 파괴하여 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우리 인간사회가 계속 진보하여 우리 자식들은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더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에서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면서 살게 되리라고 믿었다. 많은 집들이 매일 끼니를 걱정하여야 하고, 딸들은 중학교만 겨우 졸업한 뒤 공장에서 영양실조의 핏기 없는 얼굴로 밤늦도록 일하여야만 하였으며, 대통령이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멋대로 사람을 체포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군대가 무고한 국민들을 총검으로 살륙하던 불과 30년 전의 군사독재시절의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나는 세계도 우리나라도 비틀거리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낙관적 생각이 최근 크게 흔들려서 우리 자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쁜 사회에서...

발행일 2011.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