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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이 살아야 나라도 산다/정지웅 시민입법위원

칼이 살아야 나라도 산다 정지웅 시민입법위원(법률사무소 정 변호사) 이순신은 임진왜란 7년 동안 123번 군율로 부하를 처벌했고 그중 28번은 목을 베어서 사형에 처했다. 군수, 현감 같은 고위직 관리들이나 초급장교들도 군율을 어기거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붙잡아 와서 곤장을 때렸다. 그의 리더로서의 법 집행은 인간적인 정리(情理)에 이끌리지 않고 법을 그야말로 객관적 실체로 작동시키는 태도를 보인다. (김훈의 「연필로 쓰기」중 '내 마음의 이순신' 참조) 이순신의 칼은 고위직 관리 앞에서도 주저함이 없었다. 망국의 기로에서 칼의 엄격성은 나라를 지켰다. 칼의 객관성이 무너지자 조선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검찰의 '수사권과 공소권'이라는 칼을 독점해 왔으나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또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유독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 왔다. BBK 사건, 벤츠여검사, 조희팔 뇌물 검사, 정운호 게이트, 성추행 검사, 김학의 전직 법무부 차관 등등 다 언급하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버닝썬, 장자연 사건에 이르면 망국(亡國)의 풍경으로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으로 도약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힘없이 방황하고 있다. 싱가포르도 초기에는 부패와 무질서가 난무한 적이 있었지만, 1976년에는 환경부장관이었던 위툰분이 부패 혐의로 4년 6개월을 선고 받았으며, 1986년 국가개발부장관이었던 태 치앙완(Teh Cheang Wan)은 80만 달러 수수의혹으로 조사가 진행되던 중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국가의 존립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 리콴유는 '반부패의 칼'로 나라를 살렸다. 리콴유의 칼은 이순신의 칼처럼 객관적이었고, 엄격했으며, 인간적인 정리(情理)에 이끌리지 않았다. 공수처의 칼은 살아있는 권력, 고위층의 비리를 향하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공수처의 수사대상으로 예정된 정치권에서 '공수처는 기존 검찰의 옥상옥'이라고 하고, '국회의원을 수사대상에서 빼자'고 한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이러한...

발행일 2019.06.18.

칼럼
[시사포커스(1)] 패스트트랙 정국이 던진 화두

[월간경실련 2019년 5,6월호 - 시사포커스(1)] 패스트트랙 정국이 던진 화두 서휘원 정책실 간사 hwseo@ccej.or.kr   패스트트랙 정국   최근 국회는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 등의 내용을 담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추진하는 여야4당과 이를 막으려는 자유한국당 사이의 충돌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달은 지난 4월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 원내대표가 선거법을 비롯한 4개 법안의 패스트트랙에 합의하고, 우여곡절 끝에 여야4당이 합의안을 각 당에서 추인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4월 25일, 자유한국당이 합의안을 담은 의안 발의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를 점거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날인 4월 26일, 전자 발의 시스템으로 의안 발의가 완료되었고, 4월 29일에는 4개 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이 완료되었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은 “좌파 독재, 독재 타도”를 외치며 국회를 점거하고, 다른 의원을 감금하는 등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누구든지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국회법 제165조 위반이었다. 패스트트랙 지정 완료 이후에는 원외 투쟁에 나섰다. 광화문 농성에서 “패스트트랙이 우리 대한민국, 우리 국민, 우리 헌법, 우리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여론을 호도하기도 했다. 국민은 정치의 개혁을 바라지, 정치의 퇴행을 바라지 않고 있음에도, 다시금 이념 공세를 펼치며 개혁의 반대편에 섰다. 이는 “개혁정신을 물리적으로 막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패스트트랙 전선   현재 국회 안팎으로 패스트트랙 전선이 형성되었다. 패스트트랙 전선이 형성된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요인은 촛불의 정신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제20대 국회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순실-박근혜 게이...

발행일 20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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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공수처를 외치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공수처를 외치다! 경실련 서휘원.정택수 간사 지난 촛불의 요구인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많은 대선 후보자들이 공수처 설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계속된 반대로 인해 공수처 설치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오늘(2월 27일) 일산 킨텍스 제1전시관에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경실련을 포함한 공수처 설치촉구공동행동은 자유한국당에 다시 한 번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기 위하여 킨텍스 인근에서 피케팅을 진행했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공수처 설치 촉구를 외치다! 활동가들은 피켓팅이 전당대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먼저 당대표 후보자들이 서 있는 입간판 앞에서 “공수처 가는 길”을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당대표 후보로 나선 모든 후보들이 공수처 설치에 동참해달라는 희망을 담았다. 그리고 건물 앞으로 나와 “다함께 미래로”라는 큰 슬로건이 써진 외벽을 등지고 서서 “다함께 공수처로!”, “기호 공번, 공수처!”를 외쳤다. 공수처로 가는 길, 함께라며 가능합니다. 소심한 피케팅 이후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구호 한 번 제대로 외치지 못하고, 아무도 설득하지 못하고 피케팅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한국당 새 지도부는 고위공직자의 부패근절을 위해 공수처 설치를 촉구해온 국민적 요구를 껴안아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줬으며 좋겠다. 자유한국당도 이제는 대통령과 권력에 의하여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가 왜곡되었던 역사와 단절해 새로운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자유한국당 새 지도부는 자유한국당의 지지층 62%, 보수층의 72%가 지지하는 공수처를 설치하는 결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가기까지… 지난 20년간 시민사회는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전담하여 수사하고 기소하는 공수처 설치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계속된 반대로 인해 공수처 설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공수...

발행일 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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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스 등 끝없는 검찰과 권력의 비리... 공수처가 답

다스 등 끝없는 검찰과 권력의 비리... 공수처가 답 정지웅 경실련 시민입법위원회 위원, 법률사무소 정 변호사 <검사 선서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1344호)을 아시나요.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용기 있는 검사', '따뜻한 검사', '공평한 검사', '바른 검사'. 그 이름을 하나씩 나지막이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미소가 가득 번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오지 않으십니까.모든 검사들은 검사로 임관할 때 정의실현과 인권보호를 다짐하는 검사선서를 한 후 선서문을 가슴에 고이 품고 검사생활을 시작합니다. 실제로 법무부장관은 선서한 검사로 하여금 선서문 2부에 서명날인하게 하여 1부는 개인별 인사기록으로 분류하여 보관하고, 1부는 본인이 소지하게 합니다.한 검사는 이러한 초심을 잃지 않고 민청학련 재심사건에서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에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라며 "그분들과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라고 과거 검찰의 잘못된 법집행을 사죄하며 무죄를 구형했습니다.(그런데 대한민국 검찰은 과거 검찰의 잘못을 사죄하고 공익의 대변자의 역할에 충실한 그 검사에게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했다는 사유로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대한민...

발행일 2018.12.14.

칼럼
[시사포커스(5)] 20대 국회는 무거운 책임감 느끼고, 공수처 설치법 논의해야

[월간경실련 2018년 11,12월호] 20대 국회는 무거운 책임감 느끼고, 공수처 설치법 논의해야 서휘원 정치사법팀 간사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한 고위공직자 비리 민주화 이전에도, 민주화 이후에도 고위공직자 비리가 여전한 걸 보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는 고위공직자 비리인 것 같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대통령 직선제는 이루었지만, 권위주의를 떠받들던 제반 악법, 권력기구 개혁 등은 철저히 이루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5년 10월 19일,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노태우 스스로 밝힌 비자금의 규모만 해도 5천억이나 되었으며, 대부분 음성적인 정치자금으로 사용되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검찰은 ‘짜 맞추기 수사’로 일관해 노태우 비자금 조성총액, 은닉재산을 포함한 재산 규모, 대선 지원 자금을 포함한 사용 내역을 거의 밝혀내지 않았다.이후 문민정권에서도 수많은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터져 나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인 1994년 "부정부패와 관련된 사람이면 누구든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은 돈'의 흐름을 막는 금융실명제를 통해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집권 4년 차에 차남 김현철씨의 '한보그룹 특혜대출 비리 사건'을 막지는 못했다.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라고 다르지 않았다. 집권 이듬해인 1999년 검찰총장, 재벌 등이 연루된 '옷로비 의혹 사건'이 터졌다. 2000년에는 벤처기업가와 청와대,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된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가 터졌고, 2002년에는 김홍일‧김홍업‧김홍걸씨의 비리 사건인 이른바 '3홍 게이트'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2016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이른바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당시 시민들이 촛불을 들게 한 동력도 바로 고위공직자의 비리, 권력형 부패에 대한 분노였다. 평범한 시민들은 고위공...

발행일 2018.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