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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이야기] 약자들의 유쾌한 반란, 그들이 부럽다

약자들의 유쾌한 반란, 그들이 부럽다   글 | 김건호 국책사업감시팀장   레바논   지난 11월15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한국과 레바논의 월드컵 3차 예선.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처럼 승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1:2로 뒤진 채 전반이 끝나갈 무렵, 오랜만에 TV에 리모컨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명색이 월드컵 개최국이자 4강 진출팀이다. 잔디 상태나 레이저 빔을 핑계로 댄 것은 참으로 옹졸한 변명이었다. 그저 간만에 보게 된, 너무나도 무기력한 경기였을 뿐이었다. 이어진 후반전.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해온 중동축구의 대명사, ‘침대축구’가 떠올랐다. 너도나도 기회만 오면 경기장에 쓰러져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예상됐다. 하지만 이날은 아니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레바논 선수들은 독기를 품고 뛰었다. 어떻게든지 이 팀을 한번 제대로 이겨보겠다는 모습이 확연했다. 종료 직전까지 한 골이라도 더 넣으려고 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동했다면 과장일까. 비록 끝까지 우리팀이 승점 1점이라도 챙기기를 원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감탄을 넘는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올해 10월 현재 레바논의 FIFA 랭킹은 146위. 랭킹 31위이자 월드컵 7회 연속 진출에 빛나는 한국과 견주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오랜 내전 속에 제대로 된 프로리그도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다. 이번 경기를 이겼지만 최종예선에 오를지는 마지막 경기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국에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들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날 레바논 선수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가지고 있는 힘을 짜내어 뛰었다. 마침내 울린 경기 종료 휘슬. 선수들은 마치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쥔 마냥 환호했고, 수많은 관중들 역시 자리를 지킨 채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칼레 ‘칼레의 기적’. 축구역사에서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발행일 201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