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토리

필터
칼럼
[전문가 칼럼 ] 양심

[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우리들이야기1] 양심 정지웅 변호사 / 경실련 시민입법위원회 위원 유년 시절 유난히 실험 유사의 놀이를 좋아했다. 야생초들을 뜯어서 물과 함께 병에 넣어 놓고 햇빛에 며칠 동안 노출시켜 두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기도 했고, 개구리를 잡아서 해부하거나 주사를 놓은 적도 있다. 유년기의 나는 개구리, 작은 물고기, 곤충 등 그 생명을 뺏는 일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중학교 들어서면서 법정 스님의 글을 읽고 점점 불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의 의식 형성 과정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많은 역할을 하였다. 어느 순간부터 생명을 죽이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나의 생명의 가치가 지렁이나 물고기의 생명 가치보다 뛰어나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군 시절 계룡산 아래 위치한 부대에는 유난히 지렁이가 많았다. 습기가 많은 밤에 아스팔트 위로 기어 나온 지렁이들은 낮에 햇볕이 비치면 괴로워하고 말라 죽어갔다. 지나가다 눈에 띈 지렁이 중 아직 살아 있는 지렁이는 주워서 습한 음지에 놓아 주곤 했다. 이등병 시절 어느 날의 일이다. 그날은 비가 왔다. 지렁이들이 유난히 많이 콘크리트 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병은 우산을 쓸 수 없기에 비를 맞으면서 지렁이를 한 마리씩 집어서 화단에 올려주고 있었다. 그런 행동을 지나가면서 지켜보던 타 부대 병장들이 저거 완전히 미친놈 아니냐고 비웃으며 지나갔다. 그들이 보기에 나의 행동은 미친놈의 행위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의 양심의 행동이었다. 국가가 부과하는 의무와 충돌하지 않았기에 어떠한 제재를 받지 않았을 뿐, 누가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였으면 나는 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제주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방파제에서 낚시를 했다. 눈먼 고기가 잡혔다. 낚싯바늘에서 괴롭게 파닥거리고 있는 물고기를 손으로 쥐어 보았다. 생명의 박동이 느껴졌다. 나는 감히 그 물고기의 생명을 빼앗을 자격이 없었다. 미안해하며 다시 바다...

발행일 2019.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