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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생명에 우선하는 국익은 있을 수 없다

송병록 (경희대 교수, 경실련 상집위원)   인간 개개인은 이 우주의 중심이다. 내가 존재할 때에만 이 우주도 의미가 있다. 내가 살아서 꽃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꽃의 아름다움도 살아나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도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23일 새벽 홀연히, 이 우주의 ‘하나의’ 중심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영정사진이 되어버린 학사모를 단정히 쓴 김선일씨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금쪽같은 내 새끼”였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지만, 머나먼 이라크 땅에서 피살체로 발견된 김선일씨의 주검은 이제 그를 우리 국민들의 가슴 속에 묻게 되었다. 절대적 절망 속에서 살려달라는 외침에, 아니 살고싶다는 절규에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을까. 정말 안타깝고 비통한 차원을 넘어 분노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매번 사건,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의 무사안일과 무능, 책임전가 등이 지적되었지만, 이번 김선일씨의 피살사건도 정부의 무책임과 안이한 상황판단에 기인하는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만약 AP통신의 보도처럼 피랍 한국인의 신원확인 요청에 대해 한국 정부가 무성의하게 대처했다면 이는 정부의 역할, 나아가 국가의 존재의미 그 자체가 의문시되는 문제이다. 납치범들의 파병결정을 철회하라는 요구조건에 파병원칙에는 절대로 흔들림이 없다는 정부의 강경한 발표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편에서는 미군측의 늑장통보에 어찌 동맹국으로서 그럴 수가 있느냐고 분통을 터트리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동맹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겐 동맹은 없고 오직 세계전략과 세계지배만이 있을 뿐이다. 주한미군의 재배치 계획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렇게 나오는 데에도 우리는 초지일관 미국과의 동맹...

발행일 200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