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공동대표 인터뷰 "관계 회복을 통한 시민운동 조직 만들어가야"

관리자
발행일 2012.06.08. 조회수 1198
스토리

"관계 회복을 통한 시민운동 조직 만들어가야"
조현 공동대표와 경실련의 18년간의 인연, 사람들


 


 


진행 | 노정화 회원홍보팀 팀장


정리 | 안세영 회원홍보팀 간사


 


크기변환_DSC_0221 (6).jpg


 


편안한 웃음으로 만나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주는 인상을 간직한 것만큼 큰 복이 없다. 몸이 불편해 찾은 병원, 따뜻한 인상의 의사선생님이 어디가 아프냐며 위로해주듯 물어보면 이미 아픔의 반쯤은 치유가 되기도 한다. ‘내가 아픈 걸 알아주는구나’, ‘나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할 사람이 있구나’라는 안도감은 환자에게서 긍정과 회복의 에너지를 쏟아내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의사, 우리사회의 병을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조현 공동대표를 만나봤다.



아파트 상가 2층에 위치한 조현 이비인후과는 생각보다 단출했다. 진료대기실의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딱 조현 공동대표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점심시간에 염치 불구하고 요청한 인터뷰에 선뜻 응해준 배려심이 이곳에서도 묻어난다. 포근한 조명아래 소박한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실련과의 긴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경실련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현 시민권익센터)본부장을 지낸 이석형 변호사가 고등학교때부터 오랜 친구였어요. 그 친구가 1995년 처음으로 저한테 경실련 활동을 제의했죠. 당시 의료봉사 이외의 특별한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던 저조차도 경실련에 대해서는 시민운동의 대표주자로 퍽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죠. 때문에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친구는 빠지고 저만 남았네요.(웃음)”


 


의사인 조현 대표가 경실련에서는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운영위원으로 활동한 것이 의아했다. 그는 경실련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정치, 복지 등 사회현안과 문제를 알게 되어 좋았다고 말했다.



“경실련에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볼런티어로 활동하고 있어요. 혹 저 개인의 의견과 다를지라도 각 분야 전문가들이 깊은 고민을 통해 내린 결론이 최선이라는 데 항상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분들이 각 분야 이슈에 의견을 개진하면서 올바른 정책 및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뒤에서 힘을 실어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올해로 3년째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는 그의 생각은 분명했다. 전문가 집단의 판단을 믿고 존중하며 함께 하는 것이 바로 그가 하는 시민운동의 기본원칙. 특히 지난해까지 공동대표로서 경실련을 함께 이끌어왔던 강철규 우석대총장을 통해 ‘경청하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항상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라고 강조했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대표로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입장 편에 설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조현 공동대표는 말한다.



“민원을 통해 대기업이 가맹점에 휘두르는 횡포를 직접 알게 됐죠. 속사정을 들으면서 선진 시민사회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어린 시절 저 역시도 교사인 아버지와 함께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며 어렵게 지냈거든요. 나이가 들고 사정이 나아지다보니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었는데 다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크기변환_DSC_0211.jpg



그가 의사가 된 이유 속에는 아픈 가족의 사연이 숨어있었다. 동생 두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특히 12살 때 한 살인 동생을 품에 앉고 있었는데 갑자기 설사와 구토 증세를 보이더니 숨을 쉬지 않았다. 부엌에 계신 어머니께 급히 알렸지만, 조치를 취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구토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으로 숨을 거둔 것이었어요. 옛날에는 가벼운 감염성 질환을 해결하지 못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일들이 허다했으니까요. 그 이후부터는 항상 소아과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의 전공은 이비인후과. 진로를 바꾸게 된 데에는 또 다른 깊은 인연이 있었다. 국립의료원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첫 번째로 배치된 과가 바로 이비인후과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만난 김충길 박사의 추천으로 이비인후과로 결정하게 되었다고.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의학도에게 유독 많은 정을 베풀며 학문적으로 이끌어준 고마움이 크게 작용했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까지 초등학생인 어린 환자들에게
도 꼬박 존댓말을 쓰는 조현 공동대표 특유의 겸손함과 성실함이 노련한 선학의 눈에 단연 돋보였으리라 짐작된다.


 


이와 같이 그에게는 천직인 의사가 안됐더라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아마 섬마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지 않았을까요?”라고 조금은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대답한다. 실제로 그는 건강보험관련 권위자로, 강의도 많이 맡아 의사들의 선생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듣는 사람이 지루해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단 한 번도 같은 강의를 반복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상대방
에 대한 배려가 몸에 익숙하게 배어있음이 느껴진다.


 


크기변환_DSC_0466.JPG



그런 그가 경실련에 따뜻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시민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 인간관계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실련의 활동 관심이 있어 찾아오는 회원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늘 겸손한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요. 또 열린 자세로 사람을 대하다 보면 결국 마음과 마음통하게 되어있다고 믿거든요. 이러한 소통과 좋은 인간관계가 후원자를 늘어나게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상근활동가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예전에는 70여명이 해오던 운동을 지금은 20여명이 하고 있다”며 “월급과 같이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희생해가며 사회의 진일보를 위해 앞장
서는 상근활동가들의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든든한 뿌리를 만들고, 이에 반한 활동을 지속하면 가지가 뻗어나가면서 영향력을 넓히고 좋은 결실을 맺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며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