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은 왜 그럴까?_김효선 경실련통일협회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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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01.14. 조회수 696
칼럼

북한은 왜 그럴까?
 - 극장국가 북한 이해하기 -


 


김효선 경실련통일협회 인턴 / 한양대 정책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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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라는 나라는 정말 이상하다. 특히 피폐한 경제현실 속에서도 '위대한 조국’이니 ‘강성대국’같은 공허한 구호만 외치는 걸 보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그리고 다시 손자로 권력이 승계되는, 희귀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북한은 경제정책면에서 대단히 실패했음에도 독재에 대한 사회의 조직적인 저항을 받지 않았을까? 혹자는 삼엄한 주민통제, 정신세뇌 등을 통해 이를 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다.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권익현교수와 정병호교수의 저작인 <극장국가 북한>은 바로 그 ‘다른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북한은 김일성의 강력하지만, 시간적인 한계를 지닌 카리스마 권력을 아들에게 승계한 유일무이한 일을 해내었는데, 이는 예술과 문화, 사상과 이론을 동원한 거대한 ‘승계 드라마’를 만드는 일에 국가의 총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드라마’는 김일성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한다. 14살의 김일성은 아버지 김형직에게 권총 두 자루를 받는다. 그 의미는 식민치하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선 무력이 필요하다는 것. 두 권총을 받고 김일성은 혁명가로서의 길을 내딛게 된다. 1930년대 김일성은 만주 항일 빨치산을 이끈다. 여러 혁혁한 무공을 쌓고, 일제의 수탈로 신음하고 인민들에게 구원의 빛이 된다. 특히 부모 잃은 고아들을 보듬어 안았고, 이들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었다. 결국 그의 위대한 영도 덕분에 조선민족은 역사상 처음으로 강한 국가를 갖게 되었다. 조선민족은 그의 영도를 찬양하였고,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 및 주요 인사들도 그의 탁월함에 감명한다.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때 김일성은 몸소 참전하여 인민군대를 이끈다. 그때 열 살 된 김정일이 그의 막사로 찾아온다. 김일성은 두 권총 중 하나를 아들에게 주며  총대로서 시작한 조선혁명을 총대로서 유지해 나가라는 말을 한다.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인민과 온세상은 슬픔에 잠기지만, 평소 아버지를 효성으로 모시며 모범이 되어온 김정일이 인민들을 다독이며 이끈다. 곧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미제의 책동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지만 과거 김일성의 빨치산 정신을 되새기며 이 위기를 이겨낸다.


 


북한의 지도층은 이 이야기를 최대한 극적으로 주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노력이란 북한을 공간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이 드라마를 위한 극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먼저 공간적인 극장으로 만주빨치산 대원들의 묘지인 ‘혁명렬사릉’, 세계 여러나라의 지도자들이 ‘흠모의 마음으로 바친’ 선물들을 모아놓은 ‘국제친선전람관’, 김일성의 예전 집무실로서 지금은 방부처리된 그가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이 있다. 이 공간들은 모두 드라마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혁명렬사릉에는 김일성과 그를 위해 목숨이 아깝지 않았던 빨치산들의 이야기가 가족적으로 전개된다. 국제친선전람관에서는 세계가 우러러보는 인물을 자기네들이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선물의 경우 그들이 김일성에서 ‘바친’ 것으로 되어있다. 마지막으로 금수산태양궁전에선 평생을 인민들을 위해 살다 죽은 지도자의 헌신을 드러내고, 그가 결코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를 시각화하기위해 그의 시체를 방부처리하여 보존하고 그의 집무실을 궁전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공간적 극장들은 김일성이 자애롭고 위대한 지도자이고 언제나 인민 곁에 있다는 드라마를 위해 각 파트를 맡고 있다.


 


문화적인 극장의 경우, 70년대의 연극, 영화 작품인 <피바다>와 <꽃 파는 처녀>, 그리고 2000년대부터 시작된 집단체조공연인 <아리랑>이 대표적이다. <피바다>와 <꽃 파는 처녀>는 식민치하 민족의 힘겨운 망명생활 중에 가족을 잃은 여자 주인공이 항일 빨치산에서 가족적인 유대와 구원을 발견하고 그곳에 헌신한다는 내용이다. 이 가족적 유대와 구원의 이야기는 김일성의 행적과 위대함을 드러내고 상징한다. 10만여명의 인원이 동원되는 집단체조 <아리랑>은 <피바다>와 <꽃 파는 처녀>를 비롯한 여러 혁명 예술들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1시간 30여분에 달하는 공연 시간 내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가혹한 식민지를 타파하고 조선민족에게 위대한 조국을 선물한 건 김일성이고 그걸 유지 발전시킨 건 김정일이니 조선인민은 이들을 결사옹위하자 이다.


 


이러한 극장들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북한의 지도부는 국가의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냐는 역설적으로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보면 알 수 있다. ‘극장’에 치중한 결과로 빚어진 비극이 역으로 얼마나 ‘극장’에 치중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표면상 이 비극의 원인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에 따른 국제분업체계 붕괴와 자연재해에 따른 식량생산저조로, 어쩔 수 없던 비극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고난의 행군’은 사전에 감지가 되었던 것이고 미약하나마 대응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비극이 표면화되고 심화되던 90년대에 죽은 김일성에 대한 대대적인 기념물 조성사업(금수산 혁명궁전, 전국의 영생비, 각종 퍼레이드와 공연 등)에 오히려 박차를 가하여 비극을 심화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못 성공적이었다. 경제적으로 실패한 당국에 대해 사회의 저항은 전무하였고 새로운 지도자 김정일의 승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아사자를 낳았던 비극 속에서도 혈연 세습을 이루어낸 것은 북한의 지도부가 수십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한 ‘드라마’와 ‘극장’ 덕분이었다. 그 이야기는 치밀한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고 김일성의 위대함을 극적으로 과시하고, 김정일로의 승계를 필연적인 것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주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북한은 공간적, 문화적 ‘극장’에 치중하였다. 그 결과는 오늘날 그 손자에게까지 온전히 이어질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 드라마가 어쨌든 북한 주민들의 인식토대이고, 북한의 대외적 발언과 행위의 발판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을 대하는 것과 관련해서 무엇이 그들에게 가치 있는 것인지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리설주가 포르노를 찍었다는 발언이 북한 당국과 북한 주민에게 주는 충격은 부모님을 욕하는 것과 같기에, 남북관계에 정말 무용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이해 못할 것이지만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선 그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그 ‘드라마’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이 ‘어리석다’느니 ‘전근대적이다’느니 같은 무용한 비판보다는 좀더 ‘쓸모있는’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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