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미 FTA와 虛風통계

관리자
발행일 2006.06.05. 조회수 537
칼럼

김성훈 경실련 공동대표 (상지대 총장)


오늘 워싱턴 디시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첫 회의가 시작된다. 이제까지의 한ㆍ칠레, 한ㆍ싱가포르 FTA보다도 그 성격이나 규모가 훨씬 광범위하고 큰 협상이다. 각종 상품과 서비스의 국경간 자유로운 무관세 무역 이외에도 양국간 투자와 경제ㆍ문화정책, 특히 교육ㆍ의료 분야 등 공공사회제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한미 FTA는 경제ㆍ문화ㆍ사회 전반에 걸친 대변혁을 예고한다.


따라서 그로 인해 예상되는 부문별 총 손실과 이익, 상대국의 요구사항, 대응 전략, 그리고 우리 측의 요구사항과 최후까지 지켜내야 할 마지노선 등을 사전에 충분히 조사ㆍ연구하고 분석했어야 했다. 이해당사자들과의 허심탄회한 협의와 의견 수렴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전격적으로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공청회 개최마저 마지막 날까지 미루다가 당일치기 시도가 무산되자 ‘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하는 난센스가 이른바 한미 FTA 협상의 첫번째 잘못 껴진 단추이다. 그러니 연이은 정부 발표들이 계속 잘못 끼워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협상 결과 단추는 어디에다 어떻게 끼워맞출지 그 끝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한미 FTA를 찬성하면 라이트(우파), 반대하면 레프트(좌파)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미국과의 FTA 협상을 도중에 그만둔 스위스ㆍ카타르ㆍ아랍에미리트, 그리고 남미 35개국의 사람들이 모두 좌파라는 말이 된다.


더욱 가관(可觀)은 노무현 정권을 태생적으로 미워해오던 세력들이 이번에는 쌍수를 들고 현 정부를 옹호하며 대리전까지 자청하고 있다. 한미 FTA의 폭발성을 고변하는 우려 섞인 대안성 충고에 대해서조차 말꼬리를 잡아 공격하는 언어들이 청와대 홍보수석의 물타기식 반박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 원인은 여러 갈래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전제가 다름 아닌 “국민경제의 무역의존도가 70%를 넘어 수출해 먹고사는 나라에서 무관세 무조건의 개방은 필수”라는 과신이다. ‘수입 개방’에도 여러 방식과 수준과 조건이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이 우루과이라운드(UR)ㆍFTAㆍ자유무역협정(WTO) 등 각종 협상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국으로부터 얻어내고 지켜내는 개방협상 방식을 벤치마킹해보면 ‘무조건 개방’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이내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역의존도 70.3%(2004년)라는 정부 통계에 대한 과장된 해석이 아주 많은 오해와 오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수출입 무역액이 국내총생산액(GDP)에 미치는 비중을 무역의존도로 표시하고 있는데 수출입액은 최종생산물가치인 반면 GDP는 최종생산물가치에서 중간투입재가치를 뺀 부가가치(Value added) 개념이다. 따라서 무역의존도 통계는 엄밀히 말해 부풀려진 수치이다.


무역의존도에 포함된 수입액 역시 외국에서 생산된 최종생산물가치이므로 국내총생산액에는 하등 기여하는 바가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무역의존도 통계는 단순히 거시적 경제 경향치를 보여주는 수치일 뿐, 국민경제에의 기여도를 나타내는 통계가 되지 못한다.


농협 조사부장 신기엽 박사는 ‘무역의존도의 올바른 이해’라는 글(2006.4.26)에서 진짜 순부가가치 개념으로만 시산해본 수출산업이 국내총생산액에 기여한 국민경제의존도는 70.3%가 아니라 8.9%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즉 2004년 우리나라 총수출액은 2,538억달러이며 부가가치 창출액은 약 607억달러로서 국내총생산 6,801억달러의 8.9%에 불과하다. 자동차 수출의 경우 실제 부가가치는 63억달러로서 GDP의 0.9%이다.


반도체 및 전자부품의 총수출액은 343억달러이지만 부가가치 생산액은 109억달러로 GDP 기여도가 1.6%이다. 반면 농업 부문이 국내총생산에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은 3.2%이다. 농업 관련 산업의 부가가치를 합한 광의의 농업 분야 부가가치는 GDP의 13%나 된다. 원화 부가가치로 환산한 국내총생산액에 대한 순부가가치 기여액은 자동차 수출이 약 6조원, 반도체 및 전자부품 수출이 약 11조원, 농업 부문의 부가가치는 22조원이다.


수출만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살길이라는 믿음의 근거에는 이렇듯 부풀려 알려진 정부 통계의 허실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리하여 GDP의 3.2%를 차지하는 농업 부문의 몰락을 당연시하는 허풍이 우리 학계와 경제계, 언론계에 회자되고 한미 FTA의 진실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 이 글은 서울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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