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영국연수기(1) - 캠브리지에 첫발을 내딛다

관리자
발행일 2005.11.24. 조회수 2118
스토리


* 고계현 실장(前 정책실장, 커뮤니케이션국장)은 지난 10월 31일, NGO management를 공부하기 위해 1년간의 일정으로 영국 캠브리지 대학으로 연수를 떠났습니다. 무사히 그곳에 도착한 고계현 실장이 경실련 사무국으로 첫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앞으로 계속될 '좌충우돌 영국연수기'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고계현 입니다.
모두 건강하게 건투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곳 캠브리지에 온지 딱 2주일이 되었네요. 출발 막판에 본래 계획들이 수정되면서 정신없이 보내다가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출발하여 못내 아쉽고 미안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1년이란 시간이 길수도 있지만 번개와도 같기에 다시 뵈올때 벌주(?)라도 살 것을 약속드리며, 서운함이 있다면 그냥 크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지난 2주간의 혹독한(?) 시간을 넘기고 잘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학교등록도 끝내고 이틀전에 인터넷과 전화, TV가 개통되고 은행계좌까지 열었으니,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은 기본적으로 확보한 셈입니다.

사실 저는 여기 온 첫 날부터 황당한 경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캠브리지대학측으로 부터 안내받을 때에는 현재 제가 있는 캠브리지대학 기숙사가 기본 생활용품이 갖춰져 있는 Furnished 숙소로 소개 받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그냥 몸만 왔습니다.

제가 여기 숙소에 처음 도착한 시간이 런던 히드로 공항에 11월 1일 오후2시에 도착하여 이래저래 수속 받고, 고속버스 기다리고 타고 하니 저녁 7시쯤이었습니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니, 달랑 책상과 침대, 소파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침대도 매트리스만 있구요, 난방도 전기라지에터 뿐이었습니다. 청소도 전혀 안되어 있구요. 지금 여기 날씨가 밤에는 한국겨울 날씨 처럼 아주 차갑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냥 있기에는 동사(?)하기에 딱 알맞아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습니다.

숙소 사무실 사람만 있었다면 어떻게 이불이라도 달라고 하겠지만, 그럴 상황도 안되었습니다. 키를 주기 위해 기다리던 영국인 직원은 나때문에 자기는 퇴근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아주 기분 나쁜 표정으로 키만 주고 달아나듯 가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일단은 숙소를 나와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사람도 없고, 사방은 깜깜할 뿐이었습니다. 숙소 바로 앞에 캠브리지 대학의 카벤디쉬 연구소가 있지만 문은 다 잠기고 공중전화도 없었습니다. 차가 다니는 큰길을 걸어도 또 걸어도 허허들판뿐 공중전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왠 숲은 이렇게 많아 조금이라도 적은길로 가면 귀신이 꼭 나올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거의 1시간 이상을 헤맨 끝에 드디어 전화를 찾았지요. 한국에서 출발하기전 미리 소개받은 이곳 한인교회 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지요. 다행히 목사님이 전화를 받아 사정얘기를 하니, 이불을 가지고 오겠다면서 숙소에서 기다리랍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숙소로 1시간을 다시 겨우 헤매며,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목사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숙소에 이불을 두고 먹을 것를 사야하니 대형몰로 가자면서 차를 타고 Tesco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사서 돌아오니 거의 자정이 되었더라구요.

첫날밤의 위기상황은 목사님의 도움으로 넘겼지만 그날밤은 정말이지 외롭고 추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10시에 숙소사무실 Head가 숙소 계약때문에 왔더라구요. 간단하게 숙소 주변을 설명해 주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안되는 영어지만 제가 그랬지요. 하나의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당신들은 이 숙소가 Furnished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졌지요.
영어표현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시지요. 그냥 되는대로 했습니다. 기억도 안납니다. 더럽게 심하게 인상을 쓰면서 그냥 되는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들은 full furnished라고 한적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맞습니다. 이들은 full furnished라고 한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full이 있는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그래도 제가 속은 것 같아 내심 불쾌했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기숙사는 시내에서 1시간이상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외곽에 좀 떨어져 있지요. 많은 칼리지들이 있고, 수업들이 진행되는 시내중심에서 벗어난 캠브리지대학 West 캠퍼스 안에 있습니다.

주변은 황량(?)합니다. 온통 풀밭입니다. 좋게 이야기 하면 푸른 들판이라고 해야 하나요. 말들도 있구요. 밤에는 바람소리가 아주 심합니다. 그래서인지 처음 멋모르고 이곳 숙소로 왔던 사람들도 교통 등의 문제로 조금 있다가 시내로 이사를 가는 모양입니다.

한국에서 안식년 맞아 오신 교수님들도 이곳에 왔다가 대부분 이사를 갔다고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기숙사 앞으로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다니는데 1시간에 한대꼴로 있구요, 기분나쁘면 어쩔때는 2시간 가까이 한대꼴로 오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 같았으면 난리나는 상황인데도 인내심 좋은 이곳 영국사람들은 잘도 참고 기다린다고 하네요.

버스비도 비싸 편도로 한번 타면 1.6파운드 합니다. 우리돈으로 3천원이 조금 넘지요. 왕복이나 일주일권이나 한달권을 끊으면 조금 싸지만 그래도 비싼것은 사실 입니다. 
 
성질 급한 저는 제가 속한 캠브리지 대학의 Wolfson College까지 걸어 다닙니다. 많이 힘들지요. 운동삼아 걷는데 솔직히 시간을 많이 빼았기는 것 같습니다. 걸어 왕복으로 2시간 넘게 소요되니깐 말입니다.

여기는 해가 짧아 낮 2시간이면 황금같은 시간입니다. 여기 학생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하긴 할텐데 문제네요.

더욱 큰 문제는 식사문제인데요. college 식당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4파운드, 8천원)에 밥을 주는데, 말씀드린대로  숙소하고 많이 떨어져 거의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 먹으려고 왔다갔다 하면 진짜 하루를 걷기운동하고, 밥만 먹다 보내는 꼴이 됩니다.

강의도 들어야 하고, 도서관도 가면, 밥은 찾아 먹기 힘든데 참 문제입니다. 다른데서 밥을 해결하려면 너무 비싸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제일 싼것이  맥도날드 햄버거인데 한국보다 약간 비싸 이것도 가격은 3~5 파운드 정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목사님에게 부탁하여 Tesco에서 쌀 조금하고 우유, 식빵, 달걀, 감자 사다가 먹고 있습니다. 이것들도 아주 비싸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다 이곳 숙소는 주방이 모두 전기입니다. 라지에터도 가스가 아니라 전기구요, 오븐도 전기입니다. 그러니 밥하려고 이것들을 쓰는 것도 겁납니다. 영국이 물가가 비싸다고 하는데 정말 실감합니다.
 
날씨도 아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하루에 수십번도 더 바뀝니다. 비왔다가, 바람불었다가, 햇볕나왔다가, 깜깜해졌다가 요상스럽기만 합니다. 더구나 오후4시면 완전히 해가 저버립니다. 그렇니깐 밤이 아주 깁니다. 이 긴긴 밤 시간을 영국사람들은 뭘하며 보내는지 참 궁금합니다. 그래도 인구는 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의식주 문제와 환경이 불편하여 솔직히 지금 심정은 제로입니다. 가끔 열받게 하는일도 발생하여 짜증도 납니다. 여기는 보니깐 물가가 비싸 일요일 새벽에 시내 외곽 대형주차장에서 게라지 세일이 있습니다. 자기차에다 팔 중고물건을 가져다 파는 것이지요.

한번 갔는데 규모가 엄청큽니다. 빵굽는 토스트하고, TV, 전화기 등이 필요하여 어렵게 부탁하여 목사님과 같이 갔습니다. 토스트는 2파운드, 텔레비젼은 28파운드, 전화기 4파운드 주고 샀습니다. 정말 싸지요. 그런데 숙소에 와서 작동시켜보니, 토스트와 TV리모컨도 고장이더라구요. 짜증나지요.
 
이런 상황에 갈수록 말때문에 황당한 경험을 합니다. 영어를 위해 싼 tutor를 구할려고 하는데 이넘들이 시간 당 20(4만원)~30(6만원)파운드를 달라고 하여 이것도 주저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복사할 것이 있어 , 칼리지의 안내코너에 가서 복사장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요(excuse me, where is the copy site?). 그랬더니 안내인이 할아버지인데 몇번 황당한 표정으로 what, what 한 다음, 알았다는 듯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건물 지하로 가서 왼쪽 코너에 있으니 가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지하로 가서 왼쪽 코너로 갔지요. 조그마한 룸 같았는데 다가가면서 들으니, 윙소리(복사기 소리)도 나고 해서 확신에 차서 문을 열었지요. 그런데 커피(coffee) 자판기 코너였어요. 저의 copy 발음을 coffee 발음으로 알았들었던 모양입니다. 아주 황당하고 비극적이더라구요. 다시 가서 그 할아버지에게 열심히 말했지만 못알아듣더라구요.

그랬더니 지나가던 인도 여학생이 저한테 cup of a coffee를 원하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아니다, 나는 copy를 원한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한참을 생각하더니 공책을 펴면서 복사하는 흉내를 내더라구요. 그래서 무조건 OK, OK. 웃기는 일일수 있지만 저한테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요.

이번달까지는 적응기로 두고 다음달부터는 목적대로 생활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수양도 쌓구요, NGO Management 관련 서적도 정리하구요, 관련 강의도 체계적으로 들으면서 영어공부도 개을리 하지 않을 생각합니다. 어렵게 온 만큼 의미있게 보내려 노력하렵니다.
 
사람이 위대한것은 아마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어떤 동물보다도 탁월하기 때문일 겁니다. 변화된 환경에서 의미있는 것을 찾아 열심히 지내보렵니다.

고계현(前 정책실장, 前커뮤니케이션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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