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에서 과학기술 운동을 한다(?)

관리자
발행일 2009.11.06. 조회수 2036
칼럼


경실련에서 과학기술 운동을 한다(?)


 



황이남(경실련 중앙위원회 의장)


 1994년 봄, 나는 미원(현 대상)의 임원으로서 회사의 미래를 개척하는 중앙연구소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었기에 시민운동에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만은 않았다. 더욱이 평생을 공장과 연구소에서 기술자로 살아 온 나는 시민운동을 하는 경실련이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하고 무슨 일을 하는 지 궁금했다. 그 당시 나에게 경실련운동과 관련하여 접촉해 온 사람은 전 과학기술위원장을 맡았던 양지원박사(KAIST교수)로서 기술판사제도 도입과 특허법원 설립에 관한 과학기술계의 요청이 뜨거워지면서 경실련이 중재자의 입장이 되어 문제를 풀려고 하는 데, 그 분야의 전문가가 없던 차에 재야변리사로서 경실련에 대한 나의 자문 형태의 활동은 전문성과 책임감에 목말라 했다.


그 당시 경실련은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하여 내가 재야변리사이므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비교적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적임자로 생각되었는지 나에게 경실련회원으로 가입해 달라는 요구를 받아 들여 그 때부터 경실련활동을 하게 되었다. ‘기술판사제도 도입과 특허법원 설립’에 관하여 수차에 걸쳐 경실련이 공청회를 주관했고, 국내 과학기술계 및 대법원 등과 협의를 거쳐 경실련의 최종 입장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 후 정부측에서 특허청과 대법원이 협의를 거쳐 기술판사제도는 유보되고 ‘특허법원’ 만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는 시민운동을 처음 하는 나로서는 큰 보람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나는 회사생활 하면서 경실련 과학기술위원회 활동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의 일은 자원봉사자들과 상근자들의 협조를 받아 수행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부정부패고발본부를 통해 과학기술분야의 민원도 접수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자동차브레이크시스템(ABS)성능’에 대한 진정사건의 경우는 자동차주행시험장에서 ABS 성능을 직접 확인하고 그 결과가 방송에 보도가 되기도 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부정부패추방본부와 관련하여 경실련의 유사 이래 가장 도덕성을 위협받았던 사건 중에 박모 의사가 제보한 전직 대통령의 아들에 관련된 비리 개입 사건을 제보 받고 이를 곧 바로 언론사에 공개하지 못한 잘못을 저질러 경실련의 도덕성과 명예가 실추되어 사무총장과 관련 실무 책임자가 사퇴하는 일이 생겼다. 그 후로 정부 및 공공기관의 투명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부정부패의 폭로 창구가 다양화되어 경실련부정부패추방본부는 시민권익을 보호하는 기구로 변화하였다.



 과학기술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사업 중에 ‘음식쓰레기 처리에 관한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위하여 환경부, 서울시, 학계 등과 함께 토론을 했는데, 음식쓰레기를 발효시켜 사료나 비료로 재활용하는 방안이 크게 주목받았으나, 음식쓰레기 중에 염분이 과다하여 실용화에 많은 제한을 받았으나, 지자체에서 음식쓰레기의 재활용사례가 크게 주목을 받았다.



한편 매년 여름만 되면 식중독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학교급식개선 방안’으로 교육부, 초중고교 교장, 보건당국 등과 토론을 벌였는데, 학교급식도 전문성을 갖추려면 식품위생법상의 적용을 받아야만 하는 데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수많은 학교급식의 관리감독권한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학교급식은 별도의 법률로 관리하게 되었지만, 이것이야 말로 대표적인 부처이기주의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 후로 굵직한 사건으로 노로바이러스를 비롯한 식중독사고가 끊임없이 터지고 있는 데, 학교급식관리를 식품위생법상의 관리감독을 받도록 하여 관리수준을 한 단계 높여 식중독사고의 재발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IMT2000사업자선정’에 대한 공정성과 투명성 및 객관성을 높이기 위하여 구 정보통신부, 한국통신공사(KT), 관계기관이 모여 토론회를 가졌다. 그 후 정부는 동사업자를 선정함에 있어서 전문성을 토대로 다수의 업체를 공정하게 선정하였다고 발표하였으나, 오늘날 서비스하고 있는 업체수가 극소수 업체로 조정이 이루어진 것을 보면 전문성 보다는 정치적으로 결정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과학기술계?과제



 이명박정부 들어서 과학기술부가 폐지되고, 과학기술 정책부문이 교육부와 통합됨으로써 국가 행정 전반에서 과학기술관련 정책 수립 및 조정 능력은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 정부에서는 과학기술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과학과 기술의 연구와  집행기능을 분리시켜 과학진흥을 위한 연구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전담하고 기술개발은 지식경제부에서 전담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을 분리하여 운영하게 되면 시너지효과가 떨어지게 되며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단기적인 연구과제에 매달리기 때문에 중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기술개발이 이루어지기 힘든 체계이므로 원천기술개발이나 미래산업을 책임지고 이끌어 갈 ‘과학기술 사령탑의 부활’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문제의 핵심은 이과 지망생들이 (한)의대, 치대, 약대 등 수입이 좋은 분야로 몰리며 공대나 자연대의 진출을 기피하여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장차 국가 과학기술 역량이 저하되고 국가경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야기하므로 ‘이공계 기피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공계 인력이 우대받으며 긍지를 갖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이 만큼이라도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 것은 이공계인들이 산업현장에서 기술개발하고 생산하여 제품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기능올림픽 우승자들이 푸대접’ 받아 이들이 더 좋은 대우를 보장받기 위하여 대학진학을 하는 사례를 보면서 이공계 기피현상 타개를 위한 범 정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약력>
전 경실련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전 상집부위원장
전 중앙위부의장
현 아시아나 국제특허 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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