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를 위한 둘의 약속_최범산 항일유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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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5.06. 조회수 675
칼럼

하나를 위한 둘의 약속


                              


  


최 범 산 항일유적연구소


 


 


  1.백두산 설경.JPG


<백두산 설경>



우리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불리는 백두산(白頭山)은 높이 2,750m로 북위 41˚01´, 동경 128˚05´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백두산은 개마산, 불함산, 태백산 등으로 불렸으며, 예로부터 한민족의 조종산(祖宗山), 성산(聖山)으로 숭배하였고, 국조단군신화에서 천제의 후손 단군(檀君)이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세웠던 때부터 백성들이 신성시하였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만주족도 영응산(靈應山)이라 하여 매년 제사를 지냈으며, 청나라 때에는 백두산을 자신들의 조상인 애신각라(愛新覺羅)의 발상지라 하여 숭배하고 신성시하였다.


 


거대한 산줄기가 북동에서 서남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맥(白頭山脈)의 최고봉은 장군봉(將軍峰)으로 일제시대에 해발 2,744m로 측량되었으나 1980년 북한에 의하여 다시 측량되어 2,750m로 확인되었다. 백두산맥에는 2,500m 이상 봉우리가 16개로 망천후(2,712m) 백암봉(2741m) 쌍무지개봉(2,626m), 청석봉(2,662m), 백운봉(2,691m), 차일봉(2,596m) 등이 있다.



백두산 천지(天池)는 용왕담(龍王潭)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해발 2190m에 위치하고 평균 수심 213m 최대수심 384m 둘레는 14.4km이다. 천지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두만강, 서쪽으로는 압록강, 북쪽으로는 송화강의 원류인 이도백하가 천지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있어 만주평야와 한반도 북부지방의 젖줄이 되고 있다. 또한 백두산에서 금강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반도에서 가장 장대한 산줄기로 한반도의 모든 산맥들이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뻗어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북한 온성군과 중국 도문시의 국경.JPG   
<북한 온성군과 중국 도문시의 국경(두만강)>


 


2010년 여름 두만강지역 북·중 국경을 답사하고 있을 때였다. 중국 길림성 훈춘시와 북한 나진선봉을 잇는 두만강 국경다리에 화물을 가득 실은 대형화물차들이 오고가고 있었고, 나선지구 개발공사를 진행하는 공사차량과 중장비들이 바쁘게 들락거리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 이후 중국과 북한지역이 연결된 두만강 다리마다 화물차량의 통행이 부쩍 늘어났다는 조선족 무역상의 말대로 북·중무역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 (남북교류협력과 관련된 인적․물적 교류의 잠정적인 중단)가 내려진 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0년 5월부터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과 경협을 더욱 강화했고, 2012년 나진선봉지역, 황금평, 위화도를 중국과 공동개발하기 위한 경협위원회를 발족시키며 북·중 경협과 우호증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중국정부도 동부연안에 비하여 낙후된 동북 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경제 발전을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기에, 북한과의 경제교류협력을 통해 상호 의존성을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북·중 간 경협을 공고히 하고, 동북지방 경제발전을 추진하기로 했던 것이다. 5.24조치로  남북 간 경협과 교류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남북한 교류중단이 장기화되는 상황이 계속 될수록 북한은 중국정부와 더 강력한 경협 및 교류협력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두만강.JPG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두만강>


 


금강산 사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이후 남북한 간의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되었고,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류가 거의 멈춰버린 남북의 대치상황과는 천양지차의 모습을 보이는 곳이 북·중 국경지역이었다. 남북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서도 두만강, 압록강 지역은 평온한 모습이었으며, 군사적 긴장이나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북·중교역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북·중 국경지역 답사를 하는 동안 남북분단, 민족분열과 대립과 갈등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북·중간의 평화교류 관계가 문득 낯설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한민족의 피를 나눈 동족이 살고 있는 북한땅을 보기 위해 남의 나라, 남의 땅으로 수천리 길을 돌아와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남북분단의 비극, 동족대립을 더욱 가슴 저리게 했다.



북·중 국경지역을 답사한 다음날 함경북도 온성군이 손에 잡힐 듯 바라다 보이는 두만강변 국경도시 도문(圖們)에서 두만강 줄기를 따라 백두산으로 출발하였다. 남북한 긴장관계가 날로 격화되고 있는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북·중간 우호증진과 교류협력의 길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얼굴이 화끈거리고 숨이 턱턱 막혀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에 올라 답답한 가슴을 털어놓고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염원을 간절하게 빌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수천리 길을 돌아 백두산을 오르는 모든 이들의 심정이 같으리라.


 


 4. 봉오동 전투 유적, 두만강 삼둔자.JPG


<봉오동 전투 유적, 두만강 삼둔자>


 


도문에서 두만강을 따라 서쪽으로 달려가다 보면 대한독립군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가 시작되었던 삼둔자(三屯子) 마을을 만날 수 있으며, 일제치하 왜놈들의 탄압과 수탈, 국권상실의 치욕적인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 두만강을 건너온 우리민족이 피땀을 흘려 개간하여 정착하였던 간도(間島), 조국광복을 위해 총칼을 잡았던 애국지사들의 피와 눈물이 서린 북간도를 답사하며 국권상실의 암울한 시대상황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조국광복을 위해 일본제국과 싸웠던 애국선열들의 뜨거운 조국애와 민족애가 와락 가슴을 파고든다. 그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은 광복의 기쁨도 잠시 열강들에 의해 남북분단이 되었고, 민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해야 했고, 정전협정 후 60년 동안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남북현실을 바라보고 있을 순국선열들을 생각하니 부끄럽고 송구스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어도 갈 수 없는 땅, 동족이 살고 있어도 마음놓고 내나라 내땅이라 부를 수조차 없는 땅,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허위허위 살아가는 땅을 바라보고 있는 필자의 가슴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시려왔다.



북한의 회령시가 바라보이는 삼합진에서 용정의 명동촌 윤동주 생가, 용정 용두레 우물터, 선구자의 고향 일송정을 답사하는 동안에도 필자의 남북관계가 긴장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아파서 항일유적조차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5.독립투사들의 성지, 선구자의 고향 용정의 일송정.JPG


<독립투사들의 성지, 선구자의 고향 용정의 일송정>



수천 리 타국, 만주에서 온갖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조국광복을 위해 싸웠던 독립투쟁의 현장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숨져간 영령들 앞에 설 때마다 친일파들의 건재, 남북분단의 비극, 민족대립과 갈등,  반통일 세력의 극우화 등 내우외환의 현실이 더욱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눈보라 치는 광야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순국선열들이 남북대립과 갈등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조국의 현실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일본이 아베내각 출범 후 일제치하 탄압과 수탈을 반성하고 사죄하기커녕 오히려 침략을 정당화하며 우경화로 치닫고 있고, 독도망언, 위안부 망언 등을 일삼으며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왜인들의 작태를 보며 얼마나 가슴을 치며 분노하고 있을까.


 
1920년 항일독립전쟁의 역사상 최대의 승전을 이룩했던 청산리 전투, 고동하 전투, 서로군정서의 내두산 유적을 답사할 때는 순국선열의 영령 앞에 너무나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백두산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필자의 머릿속에는 남북 대립과 갈등, 민족분열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민족통일의 시대를 열지 못한다면, 외세의 침략과 간섭, 민족분열, 민족상잔의 비극이 또다시 초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6. 백두산 가는길.JPG  


<백두산 가는 길>


 


북한이 2012년 12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2013년 2월에 3차 핵실험에 이어 연일 계속 되는 전쟁위협, 개성공단 가동중단 등 북한의 공세로 남북한 관계가 경색국면을 넘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1991년 12월 13일 남북의 총리는 민족간 대결과 불신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족의 평화통일의 염원을 안고, 남북교류와 협력, 평화정착을 위하여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남북분단 후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으로 인해 민족적 이질화가 심화되고, 남북이 상호 불신 반목하여 온 대립적인 상황에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군사적으로 침범하거나 파괴 전복하지 않으며, 교류협력을 통해 민족동질성을 회복함으로써 단계적으로 통일을 이룩해 나가자는 합의를 국내외에 천명한 남북공동의 약속이었다. 분단 46년만에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하나(통일)를 위한 둘(남북한)의 첫 번째 약속이었다.


 
그후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이 이어졌고, 남북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남북화해협력과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모든 결과는 남북간의 대화와 교류를 통한 민족통일을 이루기 위한 단계적 과정, 즉 남북한 통일프로세스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 중단,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개성공단 중단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도발로 인하여 또다시 남북간 긴장국면이 조성되었고,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가 내려진 후부터 남북한 간 인도적 지원 및 경협이 사실상 올스톱 되면서 남북한간의 교류와 협력이 완전히 끊어진 상황이 되고 말았다.


 


7. 두만강 너머 북한 회령시 전경.JPG 
 <두만강 너머 북한 회령시 전경>


 


현재 북한은 고난의 행군시절에 버금가는 식량난에 봉착했다고 외신들이 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국과 몽골에게 식량지원을 긴급 요청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세계식량계획(WFP)도 북한의 식량부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박근혜 정부는 남북한 긴장관계를 내세워 아직 5.24조치를 해제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의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맞불로 개성공단 철수라는 강경카드를 꺼낸 상황이다.


 
북한이 식량난으로 인해 또다시 대량 기근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경우 북한내의 사회불안이 고조되어 대규모 탈북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남북간 대립이 심화되면 북·중 간 경협이 더욱 활성화 될 것이고,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어 남북관계 개선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는 상황이 심히 우려된다. 남북경협이나 교류협력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러한 북한의 식량난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8. 북한의 해산시.JPG  


<북한의 혜산시>



2013년은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세계역사에서 이토록 오랜 세월을 정전상황으로 지냈던 국가와 민족을 찾을 수가 없다. 오늘까지 이어져 온 분단 상황으로 끊임없는 남북대립과 갈등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이 나라 후손들에게 민족대립의 악순환의 역사를 끝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박근혜 정부가 내건 남북관계 정책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고 한다. 아직도 남북한이 서로를 불신하고 있기에 더 신뢰를 쌓아야 정상적인 남북관계가 가능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민족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60여년 세월을 분단국, 분단민족으로 살아왔기에 때로는 서로 헐뜯고 위협하고 대립하고 부딪쳤고, 때로는 서로를 연구하고 때로는 서로 교류협력하며 지내왔다.


 
남북한 간에 무엇을 더 알아야, 무엇을 더 살펴봐야, 무엇을 더 겪어봐야, 얼마나 더 세월을 보내야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일까. 남북한이 더 신뢰를 쌓아야 비로소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추진할 수 있고 그 다음에야 남북교류협력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 3000이란 대북정책을 내걸고 북한을 굴복시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아보려는 것과 별반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정책은 결국에 실패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끝내 북한의 비핵도, 개방도, 3000도 이루지 못하고 임기를 끝내야 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9. 화룡시에서 본 백두산.JPG  


<중국 화룡시 선봉에서 바라본 백두산>



형제간에 끊임없는 다툼으로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어 끝내 의절하고 사는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상대방의 언행으로 인해 감정이 몹시 상해 있어 서로를 찾아가 만날 생각이 없었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갈 생각조차 없었다. 그들은 이웃에 사는 아저씨를 찾아가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형제의 잘못만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다가 형제의 불화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는 동네사람들의 비난이 있을 때나 형제간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으면 서로 만나는 시늉만 했다. 그리고 건성으로 이웃집 아저씨에게 형제간의 화해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의 대화를 통한 화해만이 진정한 형제애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또한 이웃집 아저씨는 자신의 가정사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고 바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의절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남북한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정부의 외교관이나 특사가 중국으로 달려가고, 미국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그동안 많이 보아왔다. 언제까지 남북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인가. 미국이나 중국의 지도자들은 제 나라의 국익을 챙기느라 바쁘고, 저희 국민들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이끌어가기도 버겁고 힘겹다. 남의 나라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대립과 갈등으로 지내는 남의 나라 일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남북한 긴장관계든 화해협력이든 자신들의 나라에 불이익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10. 압록강에서 바라본 신의주.JPG  


<압록강에서 바라본 신의주 모습>


 
우리민족이 36년 동안 일본의 잔악한 억압과 수탈을 겪었지만 일본을 용서하고 국교를 맺어 상호교류협력의 시대를 열었고, 6.25전쟁 때 우리에게 수많은 피해를 입혔던 중국과도 1992년 교류협력의 시대를 연 후 중국이 우리의 최대수출국이 되었고, 최근에는 가장 많은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피를 나눈 형제요, 동족인 북한과는 대립과 갈등, 적대적 관계를 60여년이나 지속하며 세계평화를 저해하는 분단국, 정전국가로 남아 있다. 우리가 경제규모 세계 10위를 달성하고 한류열풍이 전 세계를 열광시킨다 해도 남북분단의 민족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야 하며 남북분단으로 인한 대립과 갈등에서 오는 국민들의 불안, 이산가족문제, 군비증강과 군사비 지출 등 분단리스크를 계속 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11. 천지.JPG  
<한민족이 하나 되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모습>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장 야심차게 내건 경제정책의 핵심이 창조경제라고 한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해 창조경제를 통한 경제발전이 국정 목표의 중심이 될 수 있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은 국민복지와 풍요로운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또다시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게 되면 아무리 좋은 창조경제라 해도 발목이 잡힐 수 있을 것이고, 남북 긴장관계에 따른 리스크로 또다시 경제발전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국정현안은 남북관계의 개선, 평화정착을 위한 강력하고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 즉 ‘창조남북시대’를 펼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위기를 맞은 처한 작금의 현실이 오히려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간 과거에 일일이 억매이지 말고 대승적 차원에서, 평화정착과 통일의 대의(大義)를 최고 가치로 삼아 남북한 관계를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창조남북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지도자도 하지 못했던, 생각지도 못했던, 역사에 길이 남을 ‘창조남북시대’를 열어서 지난 60년 동안 한반도를 옥죄던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한다.



그러나 만남이 없으면 대화도 없고, 대화가 없으면 신뢰도 없다. 또한 대한민족의 진정성을 가지고 가슴을 터놓고 머리를 맞대지 않는다면 결코 남북평화를 이룰 수 없고, 남북통일도 성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남북국민들과 정치지도자들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서는 시대가 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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