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다] 네 계획대로 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네 계획대로 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단기봉사팀으로 문전성시인 몽골의 여름과 봉사 프로그램에 대한 고찰
▲ 몽골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포토샵' 수업
몽골에 머물면서 자주 거닌 길이 있다. 울란바타르 도심 서쪽외곽에 위치한 ‘차이’라는 빈민촌에 자리한 ‘한-몽 문화교육센터’로 향하는 오르막이다. 몽골의 여느 길처럼 이 역시 잘 닦여진 길이 아니라 차를 타고 오르내릴 땐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혹여 차가 상하지 않을까 기사의 눈치를 살펴야한다. 처음 이 길을 오르던 때가 떠오른다. 시월이지만 이미 영하 10도를 상회하는 추위 속에서 두근반 세근반 기대와 설렘에 부풀어 센터부지에 들어섰다. 하지만 러시아 군대가 쓰던 황폐한 건물 마당에는 생활쓰레기와 짐승이 남긴 오물만 잔뜩 쌓여있었다. 악취에 미간을 저절로 찌푸렸지만, 지나가는 어린 아이에게만큼은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이는 무뚝뚝한 눈길로 잠시 응시하더니 발걸음을 재촉하며 사라졌다. 지역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외국들의 잦은 방문이 성가신 듯 ‘어디 한번 해보시지’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홉 달이 겨울인 몽골에서 각각 한 달씩밖에 되지 않는 봄, 여름, 가을에는 ‘귀중한’ 계절을 만끽하려고 걸어서 센터로 출퇴근하곤 했다. 따스한 햇살이 드넓은 초원을 감싸고 포근한 바람이 살갗을 간질이던 어느 날이었다. 센터로 향할 때 어김없이 마주하게 되는 오르막. 어느덧 익숙해진 가게집 아주머니가 햇살만큼 푸근한 말투로 인사를 건넨다. 뒤에서는 예쁜 리본으로 한껏 머리를 장식한 아이들이 “박샤~(선생니임~)”하며 헐레벌떡 뛰어온다. 그날 학교에서 만든 종이꽃을 떠들썩하게 자랑하더니 인심 쓰듯 내밀며 선생님 주는 거라고 뿌듯한 미소를 머금는다. 추운 날씨만큼 얼어붙어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계절이 지나 나에게도 열리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봉사 과부하에 빠진 몽골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이하 대사협)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5년간 ‘대학 자체개발 해외봉사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통해 진행된 대학생 해외봉사 건수는 총 227건이었으며 이중 가장 많은 53건이 몽골에 몰렸다. 몽골은 여름이 덥지 않고 건조해 풍토병도 없으며 항공편도 질 갖추어져 ‘봉사 선호지역’이라는 것이 대사협측 설명이다. 따라서 7, 8월에는 대학생 봉사팀은 물론, 중·고등학생 봉사팀, 직장인 봉사팀, 교회에서 파견한 단기 선교팀까지 수많은 한국의 단체들이 몽골을 찾는다. 이 시기 칭기스공항은 베이지색 벙거지모자에 작업조끼를 입은 한국인 봉사단원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하지만 ‘봉사 선호지역’ 몽골은, 사실상 ‘봉사 과부하상태’이다.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체험’ 혹은 ‘스펙’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그 자체로 자신들을 위한 활동은 될 수 있으나 현지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선 여름마다 치솟는 생활물가로 서민들의 생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봉사팀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울란바타르에서는 식료품비, 교통비, 주거 렌트비 등이 해마다 가파르게 상승한다. 하지만 ‘성수기’를 지나 특별한 소득이 떨어진 긴 겨울 동안에도 한 번 오른 물가는 쉽게 가라앉지 않아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단기간 내에 가능한 봉사 프로그램은 으로 한정적이어서 각 팀들마다 진행하는 봉사활동은 모두 비슷할 수밖에 없다. 봉사활동이 필요한 곳에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어야하지만 이동이 편리하고 편의시설이 갖춰진 울란바타르 인근에는 봉사팀이 몰리고, 정작 손길이 필요한 외곽지역은 관심 밖이 되어버린다. 새로운 봉사 지역 및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지만 이 또한 인력과 시간이 모자라 같은 활동만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 벽화그리기는 해외봉사팀이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봉사팀이 손쉽게 할 수 있는 페인트칠 등의 환경미화 활동을 선호하다 보니, 봉사팀이 방문할 때마다 센터 내외부에 벽화를 그렸고 결과적으로 1년을 넘기는 벽화가 거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벽화에 사용하는 페인트도 현지 수준에 맞춰 구입하다보니 친환경적인 소재와는 거리가 멀어 아이들의 건강에도 좋지가 않다. 결국 ‘봉사를 위한 봉사활동’은 효율성이 떨어짐은 물론, 소모적인 활동으로 전락해 버렸다.
받는 데 익숙해진 현지 아이들
"Shut up & Listen!"
▲ 울란바타르 차이즈 지역에 세운 한-몽 문화교육센터 입구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이지만, 현지에서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쳐올 때면 ‘난 이 사람들을 위해 이런 희생을 겪고 있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뭐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두 번이나 도난당한 디지털카메라하며, 관공서에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일, 수리비를 챙긴 기술자가 연락두절돼 두 달 동안 냉장고 없이 살던 일, 곧 나온다던 온수가 평균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당최 나올 생각을 않던 일 등 이 지면을 다 할애해도 모자라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누가 오라고 했나? 네가 원해서 왔잖아’였다. 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면 곁을 지키던 말썽꾸러기 몽골 아이들이 귀신같이 알고 거짓말처럼 천사 같이 행동하며 지친 심신을 위로해준다. 현지에서의 작업이 본인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해서, 투정부릴 필요 없다. 돌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곳에 있는 동안에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이다.
시월인 지금 몽골은 다시 영하의 추위가 찾아오고 첫눈도 오래전에 내렸을 것이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넓은 초원에서 내가 부르짖는 목소리는 그저 공허하게만 들린다. 몽골에서 입보다는 귀가 더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나보다.
글·사진 _ 안세영 회원홍보팀 간사 sy@ccej.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