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긴,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준 경실련

관리자
발행일 2009.11.17. 조회수 537
칼럼

 


짧지만 긴,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준 경실련



조창현(전 경실련 공동대표)


나는 솔직히 시민단체의 활동을 그다지 탐탁하지 않게 생각해 온 학자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나의 학문적 이해와 사회적 경험으로 볼 때 시민사회가 말로는 ‘시민을 대표한다’ 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들의 생각과 이익만을 대표하는 조직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된 밑바닥 사람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시민단체는 사실상 매우 드물고 시민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대개는)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실은 오래 전에 아산재단이 주최하는 학술대회에서 그런 논조의 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같은 교회를 다니던 당시 경실련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의 권유로 경실련 지방자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의 책임을 맡으면서 시작한 나와 경실련과의 인연은 짧았으나 퍽 유익하고 많은 것을 체험하고 배운 기간이었다.


 


다른 시민단체와 마찬가지로 나는 정부정책에 대해서 분석과 비판을 하고 정책대안을 개발하기 위해서 각종 연구모임을 주선하여 최종안을 확정도출하고 때로는 다른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거리시위를 나가거나 항의차 관계기관을 방문하는 등 일주일이면 몇 차례씩 종로5가 사무실을 찾았다.

경실련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경실련의 정책을 언론을 통해서 정책당국과 국민에게 알리는 일이었고 나의 임무는 대부분 당시 정부와 여당이 발표하거나 언론에서 논의되고 있던 지방자치의 여러 쟁점에 대한 경실련의 입장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위험한 사건이 벌어졌다. 즉, 나의 의도와 언론의 전달이 제 각각이어서 엉뚱한 결론이 날 뻔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지방자치구역개편에 대한 나의 일반론적 견해가 예정된 지방자치선거를 연기하면서 까지 구역개편을 먼저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당시 나의 입장은 법률에 규정된(1995년 이내)대로 지방자치단체장선거의 조속한 실시 이상의 더 중요한 지방자치의 쟁점은 없다고 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내가 마치 자치구역개편을 먼저하고 선거는 그 다음에 해도 된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이다. 따라서 많은 학계, 정계, 언론계의 인사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한참 동안 받아야 했고 이를 해명 하느라 신문사를 방문해서 해명기사를 내주도록 사정해야만 했다.

그때 나의 진정성을 믿고 해명성 기사를 내준 분이 지금은 야당의 중진으로 활약하고 있는 당시 동아일보 이낙연 차장이었다. 솔직히 당시 정부로서는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안 하거나 적어도 연기 할 수 있으면 하던 참이었는데 내가 경실련의 이름으로 자치구역개편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오자 ‘고소원이로되 불감청이라’는 옛 말 그대로 정부와 여당이 이것을 악용한 것으로 나중에 판명되었다.

즉, 당시 청와대의 모 수석이 나의 기자회견을 인용하면서 기자들에게 자치구역개편의 필요성을 설명하자 언론이 그의 의도대로 나의 회견내용을 확대해석한 것이다. 내가 언급한 자치구역개편의 필요성은 부분적(또는 국지적) 자치구역 통합을 강조한 것이다.

즉, ‘꼭 통폐합이 필요한 지역은 선거 전에 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지방자치단체장선거가 실시되고 단체장이 당선되고 나면 기득권이 생겨 통폐합이 어렵기 때문이다’라는 일반론을 편 것이며 특히 당시 지나친 세분화로 주민의 편의가 오히려 줄어든 구 시흥군에 속한 당시의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의 재통합을 예로 든 것  뿐이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다시 자치구역개편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이것이 내년 지방선거를 채 일 년도 안 남긴 이 시점에서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지켜 볼 일이다.    


이 에피소드는 얼마가지 않아 물러갔으나 이 일을 통해 나는 또 하나의 비싼 경험을 하게 되었다. 즉,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한번 언론에 잘 못 투영되면 만회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는 교훈 말이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자기들의 편집기획((?)이 이미 서 있고 그 틀 속에 내가 전달하려는 정보를 자기 목적에 맞게 거두절미하고 편집하는 또 하나의  집단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 이후 나의 초기의 천진난만한 언론관은 그 때부터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실련의 지방자치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시작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경실련 자문위원, 고문,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공동대표로 봉사하던 시절에 일어난 경실련운영과 관계된 사건 한두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경실련은 초창기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국민적 지지와 인기를 누렸다. 그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는 초인적 스테미너와 열정으로 모든 경실련 업무에 임했고 한 여론 조사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가 취임한지 몇 해가 지나지 않아서 그를 퇴출시키려는 내부 움직임이 있었다. 명분은 한 사람이 너무 오래 동안 언론의 집중을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같았다.

당시 상임집행위원회에서 그의 임기가 끝나는 대로 ‘사퇴해야한다’는 다수와 나를 비롯한 소수는 시민단체는 다른 조직과는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상당한 기간 동안 일을 해야 조직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논리로 그의 교체를 반대했다. 나는 미국의 소비자운동의 선구자 랄프 네이더(Ralph Nader)의 예를 들면서 서 목사의 유임을 주장했으나 그의 유임을 막는 다수를 이길 수는 없었다. 특히 지금까지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그의 유임을 막는 상집위원들이 모두 그와 가까운 친구들로서 경실련창립멤버였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있다. 이번에는 유종성 사무총장의 중도 사퇴와 그 후임 문제로 경실련이 두 쪽이 난 적이 있다. 내가 공동대표로 있는 동안에 경실련이 분열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분열을 막으려고 밤을 꼬박 새우는 등 애쓰다가 혼이 났다.

지금은 모두 사회 각층에서 저명인사로 활약하는 분들이어서 그들의 성함은 여기 적지 않기로 하나 적법한 선거로 선출된 사무총장의 임기도중 선명성을 이유로 사퇴시키더니 이번에는 자기들이 밀던 인사가 사무총장경선에서 탈락하자 경실련을 쪼개서 다른 시민단체를 새로 만들어 나간 적이 있다.

그중 일부는 나중에 다시 들어왔으나 당시로선 분명 경실련을 분열시킨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명분은 두 번 다 사무총장의 선명성과 정체성에 대한 강한 집착이었고 이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결국 명분과 사실이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은 이익단체가 아닌 시민사회에서도 우리사회의 병폐인 ‘우리 편과  남의 편과의 싸움’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나는 이 문제가 일단락되고 또 2000년 가을 정부혁신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는 것을 계기로 해서 경실련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다.


 


내가 경실련에 바라기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념과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서 우리사회의 현안 문제를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항상 옳다는 오만과 착각을 버려야한다.

또 하나는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발표하기 전에 많고 정교한 조사연구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토론모임이 아닌 현실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민들의 결사체인 이상 공허한 명분과 막연한 명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실현가능한(feasible) 대안을 도출하기위해서 협상과 타협을 과감하게 시도해야한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말의 잔치’가 아니라 문제의 해결이라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바람직한 미래는 약자와 강자가 함께 어울리는 국민통합과 공존공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실련의 건전하고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약력>
전 경실련 지방자치 위원장
    경실련 공동대표
현 한양대 석좌교수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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