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미 FTA의 先行 조건 (김성훈)

관리자
발행일 2006.04.21. 조회수 573
칼럼

○만화와 같은 기묘한 앙상블


정부가 전격적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선언한 이후 정부의 협상 추진방식과 협상 태도를 둘러싼 저항적 갈등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노무현정권과 앙숙관계 이었던 보수언론들은 오히려 노정권을 편드는지 또는 미국편을 드는지 한․미FTA의 가공할 파괴력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판단은 유보한채 문제를 단순화시켜 친미냐 북미냐의 이분법적 편가르기에 신명이 나있다. 보수언론과 노무현정부가 손을 잡는 만화와 같은 희한한 앙상블이 목전에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한미FTA 문제의 본질은 친노냐, 반노냐 또는 나아가서 개방이냐, 개방 반대냐 더더구나 친미냐 반미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국민의 삶의 패러다임과 우리 경제 문화 교육 의료 법률 등 모든 부문의 틀이 미국의 이해에 맞춰 바뀌어질 경우의 득실과 감당여부가 문제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비슷한 성격의 WTO 다자간 협상인 DDA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불쑥 뛰어든 한미FTA를 만사불문하고 추진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동기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국가적 손익 명백히 밝히길


정부는 지난해까지 중장기 과제로 분류되어 있던 한․미FTA를 갑자기 앞당겨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청회가 파행으로 무산된 당일, 협상개시를 선언했다. 또한 각계의 의견수렴도 없이 스크린쿼터 축소, 쇠고기 수입재개, 자동차배출가스 기준 완화, 수입 의약품값 인하 중단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협상도 해보지 않고 미리 양보했다.


한․미FTA가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조사 연구도 미흡하다. 대외경제연구원이 그나마 발표했던 분석자료는 한 달만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4~5배나 부풀려 다시 발표하였다. 무역흑자 감소와 대량실업 발생 효과 등에 대해서는 수정발표 과정에서 축소되고 실종되었다.


무역수지 전망 등 긍정적 효과추정 발표 자체가 상부의 지시로 은폐·조작됐다는 의혹마저 있다. 이외에도 한․미FTA 추진과정에서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여론수렴 과정은 생략되고 주요자료는 철저히 통제되어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공론화가 저지되고 있다.


미국 TPA(신속무역처리법) 일정에 맞추어 내년 3월까지 타결을 서둘러야 하는 아쉬운 쪽은 미국인데도 오히려 우리정부가 무언가에 쫓기는 듯 무리하게 협상추진을 밀어부치는 본말이 전도된 기묘한 모습은 더욱 국민적 불신과 의혹을 심화시키고 있다.


대통령이 ‘국내 이해단체의 저항 때문에 한․미FTA가 중단되는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배경도 납득이 잘 아니된다. 한 연구기관의 여론조사결과 국민의 75.6%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은 절차상의 정당성 결여와 협상 전 양보 그리고 협상에 따른 손익계산서의 불투명성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노무현대통령과 통상협상 책임자는 국민들에게 한․미FTA 타결에 따른 국가적 손실(폐해)과 이익이 무엇인지 명백히 밝혀 주기 바란다.



○통상절차법 제정 서둘러야


정부가 졸속협상·밀실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한․미FTA와 같은 국가적 중대사에 대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권한과 역할이 무시되고 협상과정에 있어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장치조차 없어 한․미FTA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불신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 통상교섭의 절차, 기구는 민간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및 협의체제가 부재하고 이렇다할 국회의 사전, 사후의 동의절차도 없다. 어떻게 해서든 양국 대표간의 합의 서명 후 국회비준만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모든 협상권한은 외교통상부 산하의 통상교섭본부에 집중되어 있어 설사 협상을 잘못하였다 하더라도 일단 서명이 끝났음으로 국회가 비준을 하지 않으면 대외적으로 국가신인도를 추락시킨다고 비난받고, 비준을 해주면 그 잘못된 협상안에 대하여 국회가 책임을 진다.


따라서 진정 국익을 위한 통상협상을 하려한다면 통상교섭과 관련한 국회의 권한과 역할을 대폭 강화하고, 행정부 내에서도 협상권한을 상당부분 해당부처로 분산하는 조직과 역할의 개편이 필요하다.


최소한 국무총리 산하의 통상위원회 구성과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보장 및 국회의 사전ㆍ사후동의 절차를 골자로 하는 ‘통상절차법’의 입법화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회에 주어진 정부의 감독, 통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이해관계의 조정을 통해 사전 피해대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한․미FTA에서 반드시 얻어내야 할 것과 최후까지 마지노선으로 지켜야 할 것을 협상개시 전에 대내외에 공표하고 협상도중에라도 이를 지켜내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협상의 지속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한․미FTA의 상대국인 미국은 협상개시에 앞서 국회의 승인을 얻고 국회가 정해준 틀과 조건 안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관련기관마다 사전에 충분한 조사연구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을 통하여 자국의 요구사항과 입장을 대내외에 속속 밝히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무조사, 무대책, 졸속추진·밀실행정과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과정 생략, 최소한의 국회간섭 배제 등이 상습화 되어있다.



○지켜야 할 마지노선부터 밝혀야


지금이라도 정부는 한미 FTA에서 우리가 요구해야 할 사항들과 협상과정에서 끝까지 견지해야 할 마지노선을 국민들에게 밝혀야 한다.


호혜평등의 원칙에 따라 추진되는 FTA에서 요구사항과 지켜야 할 사항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협상력을 높이고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조치다. 한․미FTA 협상과 관련하여 ‘현저히 국익이 균형을 이루지 않고 불리해지는 상황에서 협상을 타결할 수는 없다’ 식의 추상적인 답변은 소용이 없다.


국민들은 최소 남미 경제공동체(35개국)와 스위스가 미국과의 FTA 추진을 포기 또는 결렬 선언하기에 앞서 미리 제시하였던 수준의 우리정부의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요구조건과 마지노선을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한․미 FTA에서 예상되는 손익계산서와 우리가 얻어내고자 하는 요구사항 리스트 그리고 끝까지 지켜낼 마지노선을 대내외에 공표하고 협상진행과정에서 이같은 요소들이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라도 한미FTA 추진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김성훈 경실련 공동대표(상지대 총장)

첨부파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