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가 주목하는 이슈] 휘트니와 에이미

관리자
발행일 2023.02.03. 조회수 34564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3년 1,2월호-우리들이야기(2)활동가가 주목하는 이슈]

휘트니와 에이미


정택수 경제정책국 부장


대중문화계에서는 수많은 스타들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곤 한다. 그중에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 사람도 많지만 몰락 끝에 세상을 등진 이들도 적지 않다. 이번 글에서는 다른 듯 닮은 삶을 살다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두 가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가수는 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 중 하나인 휘트니 휴스턴이다. 휘트니는 1963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휘트니의 어머니는 아레사 프랭클린 같은 전설적인 가수들의 백보컬을 맡기도 했지만 솔로가수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휘트니를 교육시키는데 모든 것을 걸다시피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철저한 관리도 휘트니의 어린 시절을 완벽하게 지켜주지는 못했다. 휘트니는 흑인치고는 밝은 피부색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곤 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가족으로부터 발생했다. 부모는 외도를 저지르다 결국 이혼을 했다. 오빠들은 어린시절부터 마약을 했는데, 휘트니가 관심을 보이자 마약을 생일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조차 부부의 이혼 사실을 모를 정도로 이들 가족은 겉보기에 완벽한 모습을 유지했다.


휘트니는 예쁜 외모 덕에 모델로도 활동하다가 마침내 대형제작사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 역대 최고의 데뷔앨범 중 하나로 손꼽히는 Whitney Houston은 1985년 발매됐다. 이후 발매된 앨범들도 모두 메가히트를 기록하며 엄청난 부를 휘트니에게 안겨줬다. 휘트니는 가족들을 모두 자신의 스탭으로 채용했다. 휘트니의 가수활동은 말 그대로 가족사업이 되었다. 휘트니는 R&B나 소울보다 팝에 치중한 음악색깔로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비꼬아 ‘화이트 휘트니’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 ‘소울트레인 뮤직어워드’라는 흑인음악 시상식에서는 관객들이 휘트니를 향해 야유를 퍼붓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소울트레인 뮤직어워드는 휘트니에게 큰 상처를 주었지만 운명적인 남자를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바로 바비 브라운을 만난 것이다. 곱디곱게 자란 휘트니와 달리 바비는 철저한 뒷골목 출신이자 음악계의 악동이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휘트니가 먼저 바비에게 대시하여 연인사이가 됐다. 얼마 뒤 결혼한 두 사람 사이에서는 예쁜 딸 크리시가 태어났다. 이 무렵 휘트니의 경력에도 절정의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영화 보디가드가 개봉한 것이다. 영화도 전 세계적으로 히트했지만 OST는 전 세계적으로 4천만장이 넘게 팔리며 기네스북에도 등재가 됐다.


최고의 가수이면서 배우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리던 휘트니는 단란한 가족을 꾸리면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내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휘트니의 마약중독은 날로 심화되어 크리시의 기억 속 부모의 모습은 늘 약에 취한 상태였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에는 깡마른 모습으로 등장하여 관객 모두가 경악했다. 휘트니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수근거림을 해명하고자 방송 인터뷰에 나섰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마약중독을 시인하며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휘트니가 망가져 가고 있는데도 가족 누구도 쓴소리를 하지 않았다. 휘트니를 통해 돈과 권력을 얻으려 애쓸 뿐이었다. 가족들이 스텝으로 일하다 보니 해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바비는 휘트니의 인기를 몹시 질투했다. 가정폭력을 일삼았으며 직원들을 성추행하고 벽에 악마그림을 그리는 등 기행을 저질렀다. 돈에 눈이 먼 아버지까지 가세하여 휘트니의 제작사 계약금 중 자기 몫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오랜 친구인 로빈만이 휘트니 편에 서서 일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둘이 워낙 절친한 나머지 휘트니와 동성애 관계가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 가족들은 로빈을 극도로 경계했는데 이는 점차 휘트니에 대한 주도권 싸움으로 확대되었다. 바비와 가족들의 계속된 공격에 지친 로빈은 바비와 자신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휘트니에게 통보한다. 이에 휘트니는 로빈을 해고하고 가족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고 만다.


휘트니는 친구를 버리면서까지 가족을 지키려 했지만 바비와의 결혼생활은 14년 만에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재정상태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재활원에 들어가려 해도 돈이 없어 들어갈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투어를 강행했지만 휘트니의 목소리는 끔찍한 수준으로 망가져 있었다. 휘트니는 결국 2012년 2월 48세의 나이로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마약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휘트니의 비극은 본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3년 뒤인 2015년 2월 휘트니의 딸 크리시도 혼수상태로 욕조에서 발견됐다. 마약중독으로 인해 뇌사상태에 빠져있었다. 크리시는 몇 개월 버티지 못하고 불과 2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휘트니만큼 비극적인 삶을 산, 2000년대를 상징하는 가수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미는 1983년 영국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에이미가 18개월일 때부터 회사동료와 외도를 시작했고 8~9년 뒤 이혼했다. 어머니는 가장역할을 맡아야 했지만 유별난 성격의 에이미를 감당하기에 무기력할 뿐이었다. 에이미는 어머니보다 할머니에게 의지하여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이혼은 에이미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문신과 피어싱을 하고 남자들과 어울려 다녔다. 남자친구가 왜 이렇게 문란하게 사냐고 묻자 부모님의 이혼 때문이라고 답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식이장애와 우울증에도 시달려 약물에 의존했다. 약 기운 때문에 무기력감에 시달렸지만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할 때면 겨우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권유로 예술학교에 진학했지만 문제아로 찍혀 퇴학 당하고 말았다. 에이미는 성공에는 관심없이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계속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남자친구가 데모테잎을 여러 제작사에 뿌려주었고 마침내 가수로서 데뷔 기회를 잡았다. 데뷔앨범은 많이 판매되지 않았지만 평론가들 사이에선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불과 스무 살의 나이였지만 세상사에 통달한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빌리 할리데이 같은 재즈 거장을 연상케 했다.


에이미는 계약금으로 런던에 집을 매입하여 가장 친한 친구와 살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활동을 중단하고 런던 캠든 지역으로 이사했다. 어느 날 지역의 한 클럽에서 에이미는 블레이크라는 남자를 만났다. 블레이크는 마약, 파티, 여자에 빠져 사는 소위 나쁜남자였다. 에이미와 블레이크는 각자 만나는 사람이 있었지만 이내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블레이크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며 에이미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에이미는 복수를 위해 블레이크의 친구와 바람을 피웠다.


두 사람의 헤어짐과 만남이 거듭되는 과정 속에 에이미의 삶은 술과 마약으로 피폐해져 갔다. 소속사와 친구들은 에이미를 재활원에 보내려고 온갖 애를 썼다. 오랜 설득 끝에 입소를 결정하고 준비까지 마쳤지만 이번에는 갑자기 아버지에게 매달리며 재활원 입소를 결정해달라고 애원했다. 아버지가 입소를 취소해 버리는 바람에 에이미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재활원에 들어갈 뻔했던 경험은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인 Rehab(재활원)에 고스란히 담겼다.
“사람들은 나를 재활원에 보내려 했지만 나는 노! 노! 노! 라고 말했지”


2006년 발매된 2집 Back to Black은 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에이미가 성공하자 블레이크가 돌아왔고 두 사람은 이내 결혼했다. 블레이크와의 결혼생활이 시작되면서 에이미는 마약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에이미는 건강에 이상을 느끼고 재활을 하려고 했지만 블레이크는 에이미가 회복되면 자신이 소외될까봐 두려워했다. 두 사람은 분리되어야 했지만 기어코 같은 재활원에 들어가는 바람에 치료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미는 사랑하는 남자와 그와 함께 약을 해야 하는 상황 사이에서 방황했다. 에이미와 블레이크는 폭력혐의로 경찰서를 드나들었는데 결국 블레이크가 감옥에 구속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에이미의 음악성이 인정받아 그래미 어워드에 초청을 받았다. 약물문제로 미국 입국비자가 나오지 않자 궁여지책으로 위성 중계를 통해 그래미에 참석할 수 있었다. 결과는 그래미 주요 5개 부문 수상.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거둔 놀라운 성과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에이미를 향한 언론의 관심은 폭발적으로 커져 버렸다. 파파라치들은 에이미가 나타나면 길을 막고 자극했다.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은 선정적인 제목이 달린 채 기사화 됐다. 심지어 에미넴도 가세하여 에이미와 블레이크를 저격하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에이미가 휴식을 위해 시골로 내려가자 언론사들은 호텔을 도청하여 친구들과의 대화를 기사로 실었다. 아버지는 느닷없이 카메라맨들을 데리고 나타나선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을 강요했다.


블레이크와의 결혼생활은 불과 2년 만에 끝이 났다. 2011년경에는 마약을 완전히 끊지만 술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오랜 폭음과 섭식장애는 그녀의 몸을 심각한 상태로 망가뜨렸다. 에이미 스스로도 27살*이 되면 죽음을 맞게 될 것 같다는 공포감을 호소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상태는 아랑곳없이 유럽투어가 강행됐다. 첫 번째 공연지인 세르비아에서 에이미는 술에 만취한 상태로 무대에 올랐고 공연은 완전히 망해버렸다. 결국 투어는 취소되었고 일주일이 지난 2011년 7월 23일, 에이미는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인은 급성 알코올 중독이었다. 그녀의 나이 27살이었다.


휘트니와 에이미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들이 자기관리에 실패한 점은 분명 아쉬운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남편이 몰락을 더욱 부추겼다는 사실은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우연치 않게도 비슷한 시기 휘트니와 에이미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각각 개봉했다. 두 사람의 삶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영화 휘트니(2018)와 에이미(2015)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에 휘트니와 에이미의 음악을 일청해 보실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 지미 핸드릭스, 짐모리슨, 재니스 조플린, 커트 코베인 등 여러 뮤지션들이 27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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