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통일을 디자인 하라!!_전영선 건국대 HK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관리자
발행일 2013.11.26. 조회수 1150
칼럼

100%의 목표 0%의 준비,


통일을 디자인 하라!!


 


전영선 건국대 HK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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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디자이너.



2012년부터 쓰기 시작한 새로운 직업이다.



통일을 하는 과정과 통일 이후의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다. 만든 직업이다. 2014년에는 통일디자인센터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사이버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에서 통일은 언젠가부터 하나의 거대한 목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되길래 그렇게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통일의 비전은 찬란하다. 통일이 되면 먼저 선진국이 된다. 적어도 선진국이 되는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게 된다.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이 가능해 지고, 분배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와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누리게 된다. 정부에서 목표로 세운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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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정말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통일이 되지 않으면 우리 목표는 달성되지 않는 것일까? 통일이 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목표이기에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될까? 육로를 따라 백두산까지 수학여행을 가거나 묘향산으로 MT를 갈 것이고, 이산가족들은 헤어졌던 가족들은 수시로 안부를 전할 것이며,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아 남으로 북으로 그야말로 민족대이동이 일어날 것이다. 할머니는 그리운 고향을 찾아 여생을 친지들과 보내게 될 것이다. 남북의 대학들은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 방문도 할 것이고, 대학생들은 단체미팅도 할 것이다. 낯설기만 하지만 북한 예술단의 멋진 공연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뭐 없을까? 아하! 남남북녀라는데, 남쪽의 세련된 남성과 활발하고 고운 북쪽 여성이 만나 가정을 꾸리는 통일가정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통일이라고 하면 이런 것들을 상상하게 된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까? 남측 학생들은 묘향산이나 백두산으로 수학여행도 가고, MT를 가는데, 북측 학생들도 제주도로 지리산으로 수학여행을 오게 될까? 당차고 활발한 북측 여성과 마음씨 곱고 세련된 남측 남성이 꾸리는 통일 가정은 행복할까?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통일동이’라는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그 아이는 엄마, 아빠의 말을 듣고,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어떤 가르침을 배우면서 자랄까? 또 지나간 통일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배우게 될까?


 


북한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북한의 방송이나 영화, 노래가 북한 안방을 점령할 것이다. 지루하고 딱딱한 북한 드라마보다는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을 갖춘 감칠맛 나고 세련된 남한의 드라마나 노래가 단연 인기일 것이다. 대중성에 민감하고 숱한 기획사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아 세계인의 환호를 받은 남한의 대붕문화를 정치성과 교양으로 일관하는 교과서 같은 북한 문화가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내로라는 일류배우들이 출연하고, 북한 최고의 연출가가 연출한 드라마도 5%대의 시청률로 출발하여 ‘칼라바 시청률’을 기록하고 참담하게 막을 내렸다. 시청자들은 <사육신>의 느린 사건 전개를 답답해했고, 배우들의 연기를 부담스러워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다나니까 영 재미없어 못 보겠다”는 대답이 공통으로 나왔다.



북한 최고의 히트소설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홍석중의 <황진이>이도 남한에서 출판되었다. 북한작품으로는 최초로 남한의 문학상까지 받았지만 실망스러운 판매 실적을 남겼다. <황진이>의 작품성을 믿고 겁(?) 없이 영화를 제작했던 투자사는 엄청난 손해를 감당해야 했다. 송혜교, 유지태라는 유명배우를 캐스팅하고, 금강산 현지 촬영으로 매스컴의 관심을 모았지만 관객을 불러 모으지는 못했다. 텔레비전에서 패션쇼를 하듯 화려한 한복을 입고 춤 솜씨를 뽐내는 예기 ‘황진이’가 익숙한 관객들에게 시대의 고통과 울분을 노래하는 황진이는 ‘황진이’ 답지 않아 보았던 모양이다.


 
<사육신>(원작 삭풍), <서산대사>, <안룡복>, <주몽>, <소설 훈민정음> 등의 역사소설도 남한에서 출판되었다. 남북 사이에는 성공적인 협력사업으로 주목받았지만 사회적 반향은 시들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 지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재일조청련가극단의 연주와 노래를 출시한 음반 사업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나만 북한의 생활가요를 편곡하여 JK김동욱, 마야 등이 부른 음반 <동인> 정도가 그럭저럭 바닥을 면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통일이 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까. 북측에서 만든 영화나 드라마, 노래, 소설을 수입해서 출판할 간 큰 사업자가 있을까. 북한의 영화배우나 감독, 연출가, 가수, 작가들은 일찌감치 다른 직업을 찾아보거나 실업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남한의 대중문화는 빠르게 북한 문화를 교체해 나갈 것이다. 북한 청소년들은 남한 아이돌을 흉내내고, 엄마들은 드라마에 빠질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게 문화가 흘러 갈 것이다. 한류라는 말 대신 ‘남류’라는 말이 생길 것이다.


 
어떤 문화상품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를 모을까? 칸영화제에서 한국의 이름을 빛낸 영화, 아니면 한류열품을 이끈 드라마, 아이들이 환호하는 K-POP? 물론 이런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는 매우 높을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3류 성인물은 아닐까? 원래 좋은 것보다는 손쉽고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것부터 받아들일 것이다.


 
통일 과정에서 남북문화의 차이와 환경을 고려하여 문화교류의 여과장치를 한다고 해도, 불법 성인물이나 포르물이 급속하게 확산되지는 않을까? 우리가 일본 문화를 개방할 때를 떠 올려보자. 긍정적이고 좋은 문화보다 값싸고 감각적인 것들이 쉽게 퍼진다.


 
‘왕따’며, ‘원조교제’라는 말들이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북한의 혁명영화가 차지하던 영화관에는 남측의 액션영화나 애로영화가 걸릴 것이며, 제국주의 황색바람으로 터부시 되던 헐리우드 영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모을 것이다. 저작선집이나 저작집을 비롯하여 정치이념서가 자리를 차지하던 도서관 서가에는 남측의 연애소설이나 대중잡지 차지할 것이다.


 


많은 북측 사람들이 서울 말씨를 흉내 낼 것이다. 서울 말씨를 흉내내는 것이 문화적인 세련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서울 말을 배우기 위해 CD를 틀어놓고 공부하는 북한이탈주민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교육현장에서는 함경도 사투리나 전라도 사투리나 같은 사투리요. 평안도 말투나 경상도 말투나 서울 말투가 아니라고 교육해도 북한에서 사용하던 말투를 버리기 위해 노력한다. 취업현장에서 함경도 사투리나 평안도 말투를 쓰는 것은 신분을 드러내는 일이며, 차별이 시작되는 출발이기 때문이다.


 


남측의 농촌총각과 결혼하는 북측 여성들이 생겨날 것이고, 남측 기업에 취직한 여성들도 많이 늘어날 것이다. 북측의 여성들은 남측의 농촌이나 공장으로 혹은 가사도우미로 팔리듯 나가지는 않을까? 난데없이 머리를 염색하거나 랩이라고 하는 뭐가 뭔지도 모를 노래를 불러 부모를 놀라게하거나 부모의 말도 잘 안 듣고 반항하여 당황하게 만드는 북한 청소년들도 생겨날 것이다.


 


새롭게 학교에 들어간 학생들은 역사시간에 배운 지식이며, 정치시간에 배운 지식, 음악시간에 배운 것들을 가지고 부모와 언쟁을 벌일 것이고, 아버지가 배웠던 ‘문화어’ 맞춤법과 자식이 배운 ‘통일표준어’ 맞춤법이 달라서, 혹은 아버지가 배운 삼국시대의 역사와 아들이 배우는 삼국시대의 역사가 달라서 말이 통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존경하는 인물도 다르고, 말투도 다른 ‘신인류’가 나올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지식이며, 가치관이며, 삶의 목표가 너무나 차이가 많아져서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생겨나지는 않을까?


 


이렇게 통일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이 앞선다. 남북이 통일되면 서로가 만나 얼싸안고 부둥켜 한바탕 울고 나면 신명나게 통일한국의 미래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엔 통일에 대한 준비가 너무도 미약하다. 특히 문화적인 측면에서 통일 준비는 제로에 가깝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기는 의미 없는 결과가 될 것이 분명하다.


 


통일 독일에서 조사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독일이 통일이 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통일의 후유증은 해소되지 않았으며, 지역갈등을 재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놀랍게도 독일이 통일된 이후 구동독 지역에서 태어난 청소년들의 60% 이상은 자기의 조국을 ‘동독’으로 인식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이들은 통일 이후에 태어났기에 동독의 정치체제가 어떤 것인 지,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동독사회가 어떤 사회였는 지도 모르는 구동독 지역 청소년들은 어떻게 자기의 정체성을 ‘독일’이 아닌 ‘동독’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과정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가치관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통일 독일이 온전히 자기의 국가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통일 이후 동독지역과 서독지역의 경제적인 격차, 문화적인 차이를 보고 느끼면서 독일인으로서 일체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스스로 독일과 차별되는 사람으로서 ‘동독’이라는 의식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정치나 경제적으로 통일이 된다고 하여서 하나라는 일체감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남북의 통일도 독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이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다면 사실상 통일이라는 의미가 없는 통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일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앞서는 것도 현재로서는 남북의 통일도 이런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사회문화 분야의 통일목표로 제시한 사회문화공동체는 정치공동체나 경제공동체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정치공동체나 경제공동체는 정치 경제 분야에서 통일된 법과 제도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그러나 사회문화공동체가 의미하는 ‘공동체’는 통일된 법과 제도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사회문화 공동체는 하나로 통일되기보다는 다른 가치가 공유될 수 있고, 소통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일부학자들은 통일(統一)보다는 서로 다른 두 가치가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의 통이(通異, 通二)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문화는 받아들인다고 해서 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의 경쟁력은 다양성 속에서 나온다. 하나의 가치만을 인정하는 단일사회나 단일체제는 강한 문화적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우리의 문화가 강한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적 자양분을 바탕으로 문화수용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풍부히 해야 한다. 북한이 나름대로 발전시켜온 악기개량사업이나 배합관현악, 조선화의 이론적 체계, 수예나 조선보석화, 자모식무용표기법, 고구려와 고조선에 대한 연구, 신민요의 수집과 정리, 민요를 바탕으로 한 전자음악, 우리말 다듬기 사업 등은 우리 문화를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문화적인 소통은 상대 문화를 인정할 때 가능해 진다. 어느 한편의 가치만이 인정된다면 우열(優劣)만 남는다.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상대 문화의 장점을 취하는 것을 곧 체제 이념 경쟁에서 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통일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도 이 부분이다.


 
문화적 통합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우리 사회가 담을 수 있는 문화적 포용력이 커질수록 높아진다. 백리를 가는 사람과 천리를 가는 사람은 준비와 마음자세가 다르다. 통일은 곧 민족의 먼 미래를 보는 일임을 생각하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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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왜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 보면 여러 가지 대답을 한다.


 
어떤 대답이어도 좋다. 모든 대답은 결과를 전제로 한다.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답이다. 직접 말하지는 않아도 ‘지금까지 남북이 살아 온 체제 경쟁의 승리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결과’, ‘누가 옳았는 지를 보여주는 결과’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어떤가. 시험을 보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끝나지 않는다. 통일이 어느 순간에 이루어지든 역사의 한 순간이다. 통일이 되는 순간 대한민국의 역사가 멈추는 것이 아니다. 통일된 한국의 사회 안에서 남북한 주민들은 살아가야 한다. 통일과정이나 준비도 그렇게 살아가야 할 사회를 위해 기획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통일은 우리 사회의 100% 목표가 아니다. 통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도, 통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통일은 ‘되는 것’이 아니다. 통일은 ‘하는 것’이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해서 이루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할 일과 과제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고 통일한국을 위한 설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통일을 기획하고 설계할 통일디자이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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