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읽는고전] 한(恨)을 집중시키는 120분간의 긴장과 이완

관리자
발행일 2012.06.07. 조회수 694
칼럼

한(恨)을 집중시키는 120분간의 긴장과 이완
영화 <서편제> & 뮤지컬 <서편제>


 


김상혁 정치입법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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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靑山島)라는 섬이 있다. 자연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청산유수로 불린 신선의 섬이다. 근래 이 섬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속 멋진 배경이 나오면 이곳이 어디인지 찾으러 다니는 관광객들 덕이다. 드라마 ‘봄의 왈츠’,‘여인의 향기’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이 두 드라마 때문이기 보다는 영화 <서편제>(1993년 작)의 배경이 청산도였다는 것이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더 큰 이유다. 이는 영화가 나온 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영화 속의 아름다운 배경이 돌판에 글을 새기듯 사람들의 뇌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영화사에 이처럼 강한 인상을 준 영화가 과연 몇이나 될까. 영화 속 관광지에 사람들이 찾아듦과 동시에 영화는 뮤지컬로 각색되어 사람들을 찾아왔다. 필자의 머릿속에도 강하게 각인된 영화 서편제를 고전으로 삼아, 최근 각색된 뮤지컬 <서편제>와 함께 감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고전 작품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타이틀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일원들 스스로가 하나의 예술로, 문학으로 이어가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학작품을 오랫동안 즐기고, 새로운 시각에서 창조적인 작업들을 해나간다면 좋은 고전 작품들은 더 큰 빛을 발할 수 있다. 그 빛나는 작업을 뮤지컬 <서편제>가 해주었다. 물론 아쉬움도 남았지만….


 



유봉의 恨: 운명(소리)을 향한 삶



영화<서편제>가 뮤지컬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어릴 적 봤던 영화 속 장면을 그려봤다. 아비(유봉),
아들(동호), 딸(송화)이 걷던 길, 소박하고 단아한 선으로 그어진 풍경들이 가장 먼저 그려졌다. 그래서 처음 든 생각은 제한적 공간 안에서 배경을 표현해야 하는 뮤지컬로 어떻게 한국의 멋을 그려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했다. 나는 현대 뮤지컬의 발전을 간과했나 보다. 멋진 영상이 무대에 쏘아졌고 무대는 변화무쌍했다. 이런 멋진 무대에서 카리스마를 내뿜은 인물은 단연 유봉이었다. 영화에선 고집 센 영감, 소위 ‘꼰대’같았고 소리를 한다는 자부심이 타인에게 보여질 땐 날선 칼과도 같았다면 뮤지컬에선 소리에 대한 애정 어린 모습이 보였다. 영화와 가장 극명하게 달랐던 장면은 유봉의 죽음이었다. 송화와 유봉의 심청가가 구슬피 울리며 북을 치던 유봉이 잠이 든다. 영화의 유봉은 송화에게 죽기 직전까지 소리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을 보여주었지만, 뮤지컬은 유봉의 죽음을 극적으로 다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북받치게 했다. 개인적으로 뮤지컬의 이 장면만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송화의 恨: 소리를 위해 눈을 멀게 한 아비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는 역시 라이브라는 점에 있다. 모든 소리를 현장에서 생생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뮤지컬 <서편제>의 매력이다. 뮤지컬 음악은 역시 대단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만 봐도 음악의 감정이 뿜어져 나왔으니 말 다했다. 무엇보다 소리를 다루는 작품이어서 음악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 스태프들의 노력이 엿보였다. 그리고음악의 중심에 송화가 있었다. 판소리와 더불어 연기까지 한다는 건 이제껏 대중 뮤지컬에서 보기 드문 경우이다. 영화의 송화 역을 맡은 오정해씨가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송화로 남아 있지만 뮤지컬 속 송화로 분한 배우 이영미 또한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에서 송화와 동호의 재회를 기억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 속 한 컷, 한 컷을 담아 작품의 모든 것을 농축하는 절정은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소름이 돋는다. 뮤지컬에서는 두 배우의 호흡을 가까이 보지 못했다. 둘 다 관객 쪽을 보고 연기를 했다면 둘의 감정이 더욱 와닿을 것이다. 하지만 송화의 소리는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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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의 恨: 어미를 죽인 아비에 대한 원망



뮤지컬은 <서편제>의 이야기 흐름을 많이 각색했다. 이 중 가장 큰 획이 동호의 삶이다. 영화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아 모르겠지만 약재상을 하는 듯 보였다. 반면 뮤지컬의 동호는 대중가수였다. 자기 어미를 죽인 장본인이라 생각하는 아비에 대한 원망과 동시에 소리에 대한 원망이 섞여 당시 대중이 좋아하는 소리를 따라 아비에게서 벗어난다. 소리라면 전혀 하지도 관심도 갖지 않던 영화 속 동호와는 달랐다. 뮤지컬 중간엔 동호가 주축이 된 밴드의 음악과 판소리를 섞어 나름 뮤지컬로 줄 수 있는 색다른 변화를 주고 싶어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집중할 수 없었고 극의 흐름을 많이 방해한 것 같아 미간에 힘을 주며 보게 됐다. 영화는 한 사람에 초점을 맞추진 않았지만 배다른 동생 동호가 송화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송화라는 인물에 깊이를 두고 있다. 뮤지컬은 동호의 삶을 더욱 꿰뚫어 본다. 가장 큰 고민을 통해 각색했을 인물이지만 오히려 극의 흐름을 방해한 존재로 남아 극의 감정선을 균형 있게 맞추지 못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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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분의 恨: 희미해 가는 소리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어린 감성으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고 남들이 좋다 하니 좋았다고 말했었다. 단지 유봉, 송화, 동호가 아리랑을 부르며 꾸부정한 긴 길을 따라 카메라 앞까지 와서 춤을 추며 노는 장면에서 넋을 놓고 봤고, 송화와 동호의 마지막 소리에서 그 둘의 표정과 소리를 담아내는 장면에서 꼭 쥔 주먹을 펼 수 없었다. 한 가지 머리를 스친 생각은 120분간의 긴 호흡을 가진 영화를 초등학생 때 진득하니 봤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놈의 한(恨)이 뭐 길래. 그 한을 소리로 밖에 풀지 못했을까. 그리고 해방 이후 왜 소리는 사라져갔을까. 본래 동편과 서편제는 전라도 지방을 둘로 나눠 부른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전라도는 곡창 지대로 일제 시대 갖은 수탈과 수난을 겪었다고 하니 그 오랜 세월 소리는 한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변모해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보듬어 줬을 거라 생각한다. 헌데 해방이 되고 서양의 문화가 들어오자 소리가 자리잡기 힘들었나 보다. 비트 있고 신나는 음악 안에서 판소리가 살아남기란 어려웠으리라 본다. 그러나 다시 몇십년이 지나 <서편제>는 120분간 소리의 한에 집중시켜 우리 마음을 쥐락펴락 했다. 이러한 이완과 수축이 지금까지 서편제를 기억하게 하고 뮤지컬로 만들어져 희미해져 가는 우리의 소리를 다시금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뮤지컬<서편제>는 각색과 연출에 대한 아쉬움이 많지만 라이브의 빼어난 감동을 잘 살려 관객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보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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