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오락프로그램과 가수들

관리자
발행일 2011.05.03. 조회수 1128
스토리

오락프로그램과 가수들



박희선 미디어워치 회원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이 방영 초부터 화제다. 올해 들어 우리 집은 입시생이 있어 TV 시청을 자제하고 있는데, 바로 그 입시생인 딸애가 “엄마, 가수들이 '슈퍼스타K' 처럼 서바이벌로 경쟁하는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이 나왔는데 아이디어 좋지 않아?”라며 엄마의 동조를 기대하면서 말을 꺼냈다. 작년에 딸애가 '슈퍼스타K'에 열광했던 것을 아는지라 “올해 ‘슈퍼스타K 3’는 신경 끄기로 했지?”라는 말로 딸애의 기대를 바로 접어버린 게 3월 7일이었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첫 방송이 3월 6일이었으니 신경 끄기로 한 딸애의 TV에 대한 관심은 친구들을 통해서건 인터넷을 통해서건 여전히 열려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프로에 대한 반응이 상상 이상이다. 보통 새로운 오락프로그램은 몇 회 진행되면서 인지도나 인기가 오르곤 한다. 그런데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는 초반부터 수많은 의견이 오가며 주목을 받고 있어 그 형식이나 출연하는 가수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는 요즘 가장 각광받는 오락프로그램의 형식인 서바이벌에 개그맨들을 매니저로 가수와 한 명씩 맺어주고 진행과정을 리얼로 촬영, 편집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한민국의 내놓으라 하는 실력파 가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서바이벌 형식으로 가요 경연을 벌인다는 파격적인 발상이 호기심을 확 당기면서도 각기 다른 장르의 음악적 개성과 검증된 실력을 갖고 있는 가수들을 순위 매겨 탈락시킨다는 무리수를 도대체 어떻게 끌고 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SBS의 ‘도전 1000곡’은 가수들이 출연해도 가사만 심사하여 가수의 자존심이 크게 걸리지 않는데,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의 경우 가창력을 보니까 출연하는 가수들이나 시청자들이나 그 부담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케이블TV 채널인 tvN에서 방영될 ‘오페라스타’는 기성가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바이벌 형식이라 하더라도 발성법과 음역대가 다른 오페라에 도전하는 것이니까 가수들이 겪는 심적 부담이 좀 덜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가 막상 방송을 시작하고 시청자의 반응은 누가 떨어지느냐 보다는 노래 그 자체를 듣는 것에 가치를 더 두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여러 오락프로그램들을 통해 형성된 실력 있는 가수, 좋은 노래에 대한 관심이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라고 보인다.

작년에 케이블TV Mnet은 일반인들 중 실력 있는 한 사람을 선발하여 상금과 함께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오디션을 서바이벌 형식으로 치르면서 그 과정을 리얼로 스케치하는 ‘슈퍼스타K 2’를 크게 성공시켰다. 135만 여명이 예선을 치렀다니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을 짐작케 한다. 소비자가 생산자와 쌍방향으로 소통하고 실제 생산자가 되기도 하는 뉴미디어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오락프로그램의 형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잘 만들어진 프로들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직접 해보겠다는 소비자의 욕구는 아마추어들이 가수에 도전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잘 나타난다.

출연자들에 대한 인기도 폭발적이었지만 심사의원을 맡은 가수들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승철, 윤종신의 날카로운 심사평과 작품 해석, 프로듀싱의 전문성을 엿보면서 실력 있는 가수와 제작자에 대한 인정을 하게 된 것이다.

‘슈퍼스타K’와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MBC의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은 이은미, 신승훈, 김태원, 방시혁 등의 멘토링으로 차별화를 가져가고 있다. KBS2 ‘남자의 자격-남자와 하모니’편에서 합창단을 지도한 박칼린의 따뜻한 카리스마도 인상적이었고 중학교 시절에 했던 반 대항 합창대회를 떠올리며 합창단 활동을 다시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한 MBC ‘놀러와’에 출연한 ‘세시봉 친구들’은 가사 전달력과 가창력 있는 노래, 세대를 아우르는 7, 80년대 노래의 매력을 일깨워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왜 새삼스럽게 가수들이 제대로 노래 부르는 것을 향유하고 싶어진 것일까? 사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TV에서 수시로 가수들이 온전히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고 그게 큰 오락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10대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가요순위 프로그램들이 오후 시간대에 편성되어 있을 뿐 몇 개 되지 않는 음악 소개 프로그램들도 늦은 시간에 편성되곤 한다. ‘가요무대’나 ‘열린음악회’, ‘전국노래자랑’과 같은 장수프로그램과 ‘콘서트7080’과 ‘클래식 오디세이’까지 더해 그나마 공영방송에서 세대나 장르 면에서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추고 있다.

민영방송 SBS '김정은의 초콜릿'은 얼마 전에 종방되었고 KBS2에서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 방송 중인 정도로 빈약한 실정이다. 그래도 우리들은 가수들을 많이 접하고 있긴 하다. 주로 황금시간대에 편성되는 여러 오락프로그램에서 토크나 퀴즈, 섹시한 웨이브나 깨방정 댄스, 극한 체험이나 가상 결혼, 드라마 연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연기자들 못지않게 가수들도 해내고 있다. 과거에 비해 TV의 가수 소비는 노래도 노래지만 비주얼과 연예감에 집중되다 보니 예능에 소질이 없거나 음악에만 집중하고픈 가수들에게 설 자리가 부족한 것이 방송 현실이다. 가수들이 열창하는 모습을 많이 접하지 못하다가 근래 들어 오락프로그램들이 노래 부르기에 집중하면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더욱이 오락프로그램 제작자들이 발굴해낸 ‘세시봉 친구들’과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가 음반시장에 변화를 가져왔다. 모든 정보가 0과 1의 디지털로 처리되는 뉴미디어 시대에는 책이든 신문이든 음악이든 정보를 담고 있는 매체에서 정보가 분리될 수 있다. 신문은 인터넷에서, 음악은 MP3에 음원 파일로 저장되어 보다 저렴하게 소비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종이신문의 위기와 음반시장의 침체는 뉴미디어 시대의 숙명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세시봉’과 ‘나는 가수다’의 영향으로 30대에서 50대 중장년층이 음반시장의 핵심 구매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아이돌 가수들을 중심으로 10, 20대 구매가 주류였던 음반시장의 구매세대폭이 넓어졌다고 하니 TV 프로그램의 파급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책이 살아남았듯이 음반도 추억과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소장의 매력을 부추기면서 어느 정도 살아남을지 기대해봄직할까? 어떤 매체로 접하든지 좋은 노래는 우리를 즐겁게 하며 그 노래를 만드는 제작자들과 가수들이 고맙다.

※ 이 글은 월간 경실련 3~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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