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하고 밋밋한, 그러나 야박하지 않은 블루밍턴의 하늘

관리자
발행일 2009.02.04. 조회수 1764
스토리

[블루밍턴에서 보내는 편지 1]
건조하고 밋밋한, 그러나 야박하지 않은 블루밍턴의 하늘



김재석  광주경실련 사무처장



광주경실련의 김재석 사무처장은 현재 포스코청암재단의 NGO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올해 7월말부터 1년 동안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미국 시민의 지역행정 참여 모습, 미국정부의 시민참여를 연계시키는 방법’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광주경실련 회원들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현지 생활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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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밍턴에서 인사드립니다.
광주경실련 김재석 처장입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벌써 2번째 계절이 바뀝니다. 블루밍턴은 겨울에 보통 영하 15도 정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입니다. 눈도 많고 겨울에는 햇볕 구경하기 무척 어려운 좀 쓸쓸한 도시입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상당히 억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좀 따뜻한 날씨입니다. 비 그치면 쪼금 더 추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일기예보 참 잘 맞습니다. 예보할 때 확률을 일의 단위까지 발표합니다. 35%네 42%네 하는 식으로. 그런데 거의 맞춥니다.

장비는 비슷하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올해도 여전했다죠. 우리나라 지형 탓이라고요. 지 탓하는 놈 없는 세상 아닙니까? MB만 없어도 그까짓 일기예보 좀 틀리면 대수입니까? 한 하늘 이고 살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랄까요?

그런데 저는 진즉부터 돌아가고 싶습니다. 달력에 뻘건 줄그어 가며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하늘 이고 살아야겠습니다. 맘은 다잡은 지 오래됐고 근력도 제법 늘렸습니다. 오래 버틸 힘도 충분합니다. 한 판 대게 붙어 봐야지요. 우리가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간난고초를 이겨왔습니까? 누가 징한지 끝장을 봐야지요.

모르지요. 몰라. 아마 절대 모르지요. 끝내는 우리가 이길 걸.

시민운동이 여간 어렵지 않다고 소식 듣고 있습니다. 다 힘들고 어려운 때에 저만 피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 귀하고 중요한 때에 상처입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맘고생까지 겹치니 더 걱정됩니다. 다들 힘냅시다. 더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힘들 냅시다!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입니다. 한 여름에 이곳으로 와서 좋은 구경도 많이 했습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경험도 했구요. 좋은 모습, 나쁜 구석 모두 다 보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 나쁜 놈 다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다행입니다. 기왕에 온 것 다 보고 다 만나야지요.

그렇지만 생각만큼 실속 있게 보내고 있지를 못해서 아쉽고 초조하기도 합니다. 큰 욕심낸다고 될 일도 아닌데 마냥 느긋하게 보낼 수도 없는 딱한 처지이기도 하고요. 

미국 와서 첨으로 머릴 잘랐습니다. 5개월 가까이 길러 덥수룩했던 머리가 아주 단정해졌습니다. 심신이 다-아 개운해집니다.

지금도 제일 보고 싶은 것은 우리 산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늘입니다. 하늘을 자주 봅니다. 블루밍턴도 하늘이 참 좋습니다. 우리 하늘은 특히 가을 하늘은 깊고 그윽하지요. 좀 슬픈 구석이 있는데 헤어진 애인 같아서 자꾸 보고 싶지요. 사람 땡기는 멋이 있지요. 생각이 많은 하늘이랄까요. 블루밍턴 하늘은 좀 건조하고 밋밋합니다. 무뚝뚝하지요. 하지만 야박스럽지 않고 단초로운 멋이 있습니다. 우리 하늘에 비해 무념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두고 온 것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또 살피곤 합니다. 내가 했던 잘못들 어찌 그리도 많을까요. 고백의 시간을 갖습니다. 나중에 다 힘이 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자위를 합니다.

지난 9월에 황인창 대표님이 계시는 컨터키 머레이에 다녀왔었습니다. 너무 따뜻하게 우리 식구를 대접해 주셨습니다. 미국서 뵈니 더욱 새로웠습니다. 지난 11월에는 황 교수님이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5시간이 넘는 먼 길을 한달음에 오셨습니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황 교수님도 무척 즐거워하셨습니다. 다릴 좀 다치셨는데 쉬이 낫지 않아서 좀 걱정되기도 합니다. 모처럼 사람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저도 한국서 가져온 소주로 정을 듬뿍 담을 수 있었습니다.

내년 1월부터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강의도 들을 예정입니다. 소음 수준의 강의를 면하지 못할 것 같아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은 해볼 작정입니다. 하는 데 까지 되는 데 까지 정성을 드릴 것입니다. 곧 스탠포드대학에서 올 해 함께 온 분들과 세미나도 있고 5월에는 발표회도 있습니다. 그동안 잘 놀았으니 서서히 준비 해야겠습니다. 늘 목에 차야 일하던 습성이 몸에 밴 탓에 쉽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고쳐야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늘 새로워지시기를 기원합니다. 평화도 함께 기원 드립니다. 연말에 드리는 인사를 이 편지로 대신합니다. 회원여러분들의 배려에 늘 감사드립니다.

12월 8일 저녁, 블루밍턴에서 광주경실련 김재석 처장 드립니다.


* 이 글은 월간경실련 12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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