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리_김성훈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관리자
발행일 2014.02.10. 조회수 43
시민권익센터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리"
[김성훈 칼럼] 21세기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 대표, 전 농림부장관


세계사에서 프랑스 시민혁명과 중국의 태평천국 운동에 비견될 풀뿌리 민초들의 동학농민혁명은 지금으로부터 꼭 120년 전인 1894년 1월 10일(음),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와 부당한 조세 횡포를 견디다 못해 전봉준을 비롯한 일단의 농민들이 고부 이평의 말목장터에서 죽창을 들고 일어난 데서 발단되었다. 농민들의 부역으로 보(洑)를 만들고, 과다한 수세(水稅)까지 부과한 것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농민군들은 관아를 접수하여 조병갑을 축출하고 빼앗겼던 세곡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만석보를 혁파하였다. 동학 농민들의 항거는 요원의 들불처럼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졌고, 동참한 이가 1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부패척결, 내정개혁, 척양척왜(斥洋斥倭)"를 부르짖으며 마침내 풀뿌리 민초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만큼 조선왕조의 무능과 부패와 학정 그리고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가 조야에 만연했기 때문이다.

풀뿌리 민초들의 '동학농민혁명'

이 틈새에 호시탐탐 한반도 침탈을 노리던 일제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한다. 일본제국의 혼성 제9여단을 앞세워 경복궁을 기습 점령하고 민 씨 정권을 내쫓는다. 미리 양성해 놓았던 친일 개화파를 불러들여 김홍집을 내각 수반으로 삼아 갑오개혁(일명 갑오경장)을 선포한다. 그중에는 제법 개혁적인 항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나, 그 핵심사항은 일제의 한반도 침탈이 목적이었다. 다른 한편, 일제는 사전 선전포고도 없이(그 후의 러일전쟁 그리고 진주만 습격사건이 모두 그러했다) 아산만에 정박해 있던 중국 군함들에 대한 공격을 시발로 청일전쟁(1894. 7.25~1895. 4.17)을 일으켰다. 이는 갑오 농민혁명을 핑계 삼아 일제와 그 주구들이 진정한 개혁·개방과는 동떨어진 제국주의 침략 야욕이 빚어낸 사건들이다. 참고로 갑오경장을 불러들인 경복궁 기습은 일본군 여단장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가 주도하였는데 그는 현 일본 총리(아베 신조)의 모계 증조할아버지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 백성들이 고르게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동학사상이 학정에 시달려온 농민 대중들에게 민주, 민권, 민생의 근본을 깨닫게 한 등불이 되었다. 나아가 동학혁명은 일본, 청나라, 러시아, 구미 등 외세들의 침탈을 막아 보려는 풀뿌리 민초들의 염원을 담아내고 있었다. 지금도 애처롭게 전해 내려온 그 당시 불렀던 두 민요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첫 번째가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丙申)이 되면 못 가리"다. 갑오년에 부패를 척결하고 내정을 개혁하여 외세를 몰아내지 못하면 다음 해 을미년 허송세월하다가 병신년이 되면 나라와 백성이 병신이 된다는 뜻을 함축한 예언적인 노래이다. 아니나 다를까, 구한말 정권의 무능과 부패 갈등으로 인해 갑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만 11년째인 1905년에는 마침내 우리나라 외교권이 박탈당한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었고, 그 후 5년이 지나 1910년에는 일제에 완전히 합병되어 국권을 상실하였다. 대한제국과 국민은 주권이 없는 식민지 나라가 된 것이다.

인간애 넘쳤던 녹두장군 전봉준

나는 지금도 논산-천안 민자고속도로를 통과할 때마다 이인에서 공주로 향한 우금치 쪽을 보지 않으려 애를 쓴다. 1894년 11월 그곳 우금치에서 2000여 관군과 600여 일본군이 스나이더 소총과 기관총을 앞세워 1만여 동학농민군을 500여 명만 남기고 무참하게 전멸시켰던 장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 달 후 전북 순창 피노 마을에 피신해 있던 녹두장군(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는 전봉준은 5척 단구의 작은 키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은 현상금에 눈이 어두운 측근 김경천의 밀고로 일본군에 붙들린다. 서울까지 압송되어 이듬해 교수형을 당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참으로 인간애와 인간미가 넘치는 지도자였다. 서당 선생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전창혁이 학정에 항의하다가 관가에 붙들려가 장살(丈殺)을 당했지만, 자기의 슬픔보다도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못 참는 성격이었다. 백성들의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함께했던 많은 에피소드가 전해 내려온다. 그중 백미(白眉)는 동학의 고부 접주(接主)인 그가 서울로 잡혀가서 갖은 고문을 받으며 윗선을 대라고 추궁 받았지만 끝까지 자기 자신의 본심에서 우러난 봉기였음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접주로 임명한 동학 교주 최시형 선생을 보호한 것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녹두밭에 앉지 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새야 새야 파랑새야/댓잎 솔산 푸르다고 하절인줄 알았더냐/백설이 펄펄 엄동설한 되었구나/새야 새야 파랑새야/꽃 향기 맡고서 우리님이 오시면/너랑 나랑 둘이서 마중 나가자!"

지방에 따라 지역에 따라 가사와 곡조가 약간씩 다르게 불리지만, 120년이 흐른 지금도 이 노래가 민초들 가운데서 끊어지지 않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중 어렸을 적 우리 동네 어른들이 부르던 곡조가 가장 구슬프고, 가사는 위에 소개한 바와 같다. 어머니들의 자장가 소리가 알고 보니 이 노래였다는 술회도 있다.

수세 폐지로 동학농민 '비원' 풀어

필자는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이 흥얼흥얼 부르던 이 노래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나도 모르는 새 요즘 종종 흥얼대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깜짝 놀란다. 며칠 전 캐나다 유기농 연수단원들의 신년모임에 나갔을 때 진도 홍주를 한 잔씩 나눠 마시다가 이 노래가 튀어나와 서로 바꿔가며 부르면서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의 곡조는 비교적 경쾌한 데 비하여 전라도의 곡조가 너무 비감(悲感)하여 모두들 한때 숙연하였다. 아마도 그 동학혁명 토벌기간 마지막으로 전라도 나주 장흥 지방 일대에서 일제 토벌군에 의해 시산혈해(屍山血海)로 죽어간 농민군들의 수가 너무 많고 광범위하여 그 원한과 원혼들이 깊숙이 배어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필자는 IMF 치하 1998년 농림부 재임 시절, 7월 11일 전북 정읍의 전봉준 동학농민혁명 유적 기념지에서 제29회 이동장관실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녹두장군 사당에 들어가 '못다 한 동학농민들의 비원'을 풀기 위해라도 기존의 물과 토지 관련 3기관(농조, 농조련, 농진공)을 축소 통합하여 이 땅에서 수세를 완전 폐지하겠노라고 굳게 맹세하였다. 우여곡절 혹심한 '밀당' 끝에 마침내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 5일 세 기관을 축소 통합한 농업기반공사를 발족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으로 만천하에 수세 폐지를 선포하였다. 그동안 농조개혁에 동조하여 적극 지원해오던 윤근환 전 장관, 김영진·이길재·최선영 의원, 전농의 이수금·김준규 선생, 농기협의 정장섭·강춘성 회장, 그리고 농진공의 문동신 사장(현 군산시장) 등이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하였다. 모두들 수세 폐지 선언을 감명 깊게 받아들이면서, 지하의 녹두장군과 동학농민들이 더덩실 춤을 추며 반길 것이라고 기쁨을 나누었다. 이로써 1894년 조병갑의 과다 수세 징수 폭거 이래 107년 그리고 1918년 일제 토지조사사업에 의해 공식화한 지 83년 만에 수세 징수 행위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지구상에 수리조합이 있는 나라 중에 수세를 징수하지 않는 최초의 나라가 된 것이다.

120년 전과 다름없는 '3농 죽이기'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국내외의 '3농 죽이기' 형세는 형식과 형태만 다를 뿐, 120년 전 녹두장군 시대나 별로 다름이 없는 것 같다. 규모가 더 커졌고 국내외 신자유주의 대기업 자본들에 의한 내외 협공이 더 악랄해진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인자함이 없는 천민자본주의, 섬세함이 없는 밀어붙이기식 FTA, TPP 강공 드라이브,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사람을 놓친 무작정 효율 경쟁 개발 제일주의, 배고픔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에 의한 식량·농업 정책의 빈 껍데기화, 녹색 색맹이나 다름없는 토건 세력과 재벌 세력들의 일방통행, 무엇보다도 역사의식이 결여된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글로벌리즘이 지금 도처에서 서민 대중과 농민들을 짓누르고 울리고 있다. 농업 농촌 농민 3농과 중소 상공업, 노동자 서민들의 쇠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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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JTBC 화면 캡처 

국정 난맥의 극치, 지금이 바로잡을 때다

특히 전국 농지와 산지의 땅 과반을 이미 부재지주 비농민에게 넘어가 있고, 전국의 토지와 부동산 80% 이상을 4%의 상위층이 독식하고 있는 토지정책의 문란은 그중에 으뜸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의 경제생활과 생산 활동 전 부문에 걸쳐 높은 각종 요율과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원흉이 돼가고 있다. 법관, 장관 등 고위직 관료들의 청문회에서 밝혀진 예외 없는 토지 투기, 기타 불법 비리 행위의 행렬을 보라. 이러다간 동서고금 역대 정권의 몰락을 불러들인 데자뷔를 보는 듯, 나라 경제와 사회 안정에 파국을 불러올지 모를 형세다.

그뿐만 아니다. 수지가 맞는 각종 국공유기업의 민영화, 사영화 조치가 남발되고,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수천만 건이 넘는 카드 정보 유출 등 각종 내정의 문란(紊亂)은 장차 이 나라의 기초이자 주권의 기틀마저 흔들고 있다. 함량이 미달한 인사들로 채워진 박근혜 정부의 초기 내각 조각 때부터 예견된 국정 난맥상이 도처에 널려 있다. 카드 정보 유출이 국민 소비자들의 정보제공 동의 때문이라는 경제부총리 각하, 여수 앞바다 기름 유출 사태의 일차 피해자가 어민이 아닌 가해자 GS칼텍스라는 대한민국 수산업 총수님, AI(조류 인플루엔자)가 가창오리 등 철새 때문이라고 외유 중인 대통령께 보고한 담당 관료, 자기가 수첩을 보고 친히 임명한 그 관료의 보고를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믿고 "철새의 이동 경로에 따라 철저히 방역하라"고 지시하신 해외 토픽감 대통령님, 통일문제가 자칫 쪽박 신세를 면치 못할 형편에 느닷없는 "통일 대박론"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진귀한 해프닝이 백주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 난맥상이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정부의 인사제도의 난맥을 바로잡아야 국정에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 정부 인사에 비토 대상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소지한 수첩 인사명단에 빠져 있거나 거부당한 인재들이 썩어나고 있다. 출신 성분, 출신 지역, 출신 대학, 출신 가문에 비토 대상이 너무 많아 인재 발탁에 막힌 곳이 너무 많고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임명된 관료일수록 자기의 인사권을 쥔 윗 한 분만 쳐다보고 행정을 집행하니 정작 자기가 섬기고 챙겨야 할 국민들은 안중에 없는 불통 행정이 다반사다. 수천 년의 노하우가 쌓인 농정 하나만 보더라도, 농지제도의 문란이 경국지세(傾國之勢)인데도 그 문란의 통계마저 사라져 버린 겉핥기식 농지관리 난맥상을 아예 바로잡으려는 시도마저 보이지 않는다. 무관세 수입개방 FTA 체결은 세계 최고속인데 그 후속 피해 대책은 달팽이 걸음이다.

이 같은 비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라도 무소불위 중앙정부의 경제 사회 권력을 선진국형으로 분권화해 무늬뿐인 지방자치제를 혁신해야 하는데도 누구 한 사람 나서는 관료가 없다. 그렇다고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거리다간, 병신이 되면 가지 못하리'라는 갑오 동학농민들의 노래를 다시 들을 환청·환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선 참다운 선진국형 지방자치제도와 지방재정 분권주의부터 실현한다면 일단은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서민들과 그리고 3농부터 살리는 기반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100개의 다리를 가진 곤충은 죽어서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선인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도리어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내정 개혁과 탐욕투성이 기업자본주의(Corporatocracy) 외세를 민초들의 힘으로 고쳐 나가는 파랑새의 희망가를 불러야 할 때, 갑오년이 아닌가.


<저작권자 ⓒ 프레시안> 이 칼럼은 2014년 2월 9일 프레시안에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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