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처장으로 복귀한지 넉달...

관리자
발행일 2007.04.19. 조회수 1647
스토리

경실련에 복귀한지 벌써 네달째가 되어 갑니다. 영국 연수 후기 중심으로 글을 쓰라는 편집팀의 명령(?)을 받고 한참 고민해보니 ‘사무실에 복귀한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갑자기 왠 후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구나 무뚝뚝할 것 같은 외모와 달리 말 많은 저의 스타일로 인해 사무처와 같이 4층에 모여 있는 다른 상근 운동가들로부터 “please 이제 영국이야기는 그만!”이라는 경고를 수차 받고 있는 터에 편집팀의 명령은 저한테 달가운 것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무엇을 쓸까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월간 경실련의 원고 청탁은 영국 생활상의 에피소드나 인상 같은 것보다는 오히려 1년 동안 비싼 돈 써가며 무엇을 했는지, 정말 연수 목적대로 제대로 공부는 했는지를 한번 밝혀 보라는 의미로 저한테 다가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비싼 생활비를 감수하면서도 연수를 떠난 이유가 분명히 있었으니 말입니다.

저의 연수 목적을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NGO Management'를 공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NGO를 논하는 자리에 가보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위기의 담론’을 설파합니다. 내용은 약간씩 상이하지만 결론은 위기로 귀결됩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같은 운동가들과의 대화에서도, 지식인 그룹의 토론에서도 그러합니다. 근래 ‘위기의 담론’이 NGO의 주된 의제로 설정되었는지 여러 원인과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NGO의 빈약한 물적 토대’ 때문이 아닐까 가끔 생각하게 되었지요.

87년 민주화 운동을 기점으로 한국사회의 발전과 변화라는 모토로 정신력과 대의명분만을 가진 채 맹렬히 지난 10여년을 돌진해 왔지만 이제는 정신적 의지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형국으로 돌입한 것이지요. 발전과 진보, 변화라는 명제만으로 시민들에게 시민운동의 대의를 인정받기에는 한계에 다다른 것입니다.

우리사회가 다양성의 시대로 세밀하게 분화되었고 이로 인해 이슈 또한 층층화, 복잡화되어 운동 대상이 수시로 아군과 적군으로 바뀌는 현상이 발생하지요. 또한 인터넷의 등장 등 매체시장의 변화로 시민들 또한 자기가 관심 갖는 이슈에 대해선 전문가 이상의 전문성을 갖습니다. 아울러 반부패 정치개혁과 시장개혁 같은 전통적인 NGO 의제들도 공공부문의 투명성 확대로 인해 제도권 의제로 변해 버려 NGO는 자기 상품이 없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쉽게 말해 세상이 아주 많이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변화 없는 NGO들은 마치 변해버린 세상에 대한 이해 없이 자기 城에 안주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당연히 미션에 따른 운동 전략도 가져오기 쉽지 않고, 의제개발도 역시나 어렵지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율은 떨어지고 동시에 회비도 떨어져 재정 운영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할 때마다 전문성 시비로 머리가 아프지요.

확실히 위기는 위기입니다. 영국 연수는 바로 이러한 위기 탈출에 대한 비법이 있지 않나 하는 제 나름의 탐구 과정이었습니다. 너무 거창하지요. 출발 전에 제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NGO 위기에 대해 나름의 거칠지만 해결책에 대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주로 경실련 운동을 하면서 느낀 생각들이지요.

어렴풋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운동 툴(Tool)에 대한 과학적인 경영’입니다. 조직 미션을 분명히 하고, 운동 컨텐츠 개발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조사 기법도 도입하며, 이슈 캠페인에 대해서도 PR이나 마켓팅 개념을 도입하여 그에 따른 수단과 방법들을 확보하고, 시민참여나 회원들과의 관계도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개념에 따라 전문적으로 진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들이지요. 인적자원 개발측면에서 상근운동가들에 대한 교육도 리더쉽 개발, 운동 스킬, 조직 매니지먼트 등 교육내용도 개발하면서 이제는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이런 생각들의 구체화를 위해 연수를 선택한 것입니다. NGO 역사가 깊은 나라에서 먼저 보자는 것이었지요.

영국에 도착해서는 주로 런던정경대의 NGO Management 석사과정의 Syllabus에 따라 책을 준비해서 읽었습니다. 제가 있었던 캠브리지 대학의 경우 대학 종합도서관외에도 칼리지나 Department별로 도서관이 있기 때문에 도서구입의 어려움은 전혀 없었지요. 주로 런던 정경대 Civil Society Centre의 교수로 있으면서 NGO Management 연구들을 많이 발표한 D.Lewis나 H.K.Anhrier 그리고 NGO 경험이 풍부한 D.Hulme, M.Edwards, A.Fowler의 저작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유럽쪽 NGO 연구자들에게는 꽤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일부는 국내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The Management of Non-Governmental Development Organisations: An Introduction’나 ‘Too Close for Comfort? NGOs, States and Donors’ 그리고 ‘Nonprofit Organisations: Theory, Management, Policy’ 이런 류의 책들입니다.

처음에는 매일의 독서량을 정해 읽으면서 캠브리지 대학의 사회학과나 정치학과 과목도 들으면서 공부했는데 재미도 있고, 또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끔 눈에 들어오는 서구적 미모의 여학생의 미모에 사로잡혀 즐거운 적도 있었죠. 제가 아직은 청춘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 강의는 주로 세계 NGO운동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세계화와 NGO에 관련된 것들로만 들었습니다. 강의 중에 M.Keck와 K.Sikkink가 편저한 ‘Activists beyond borders: advocacy networks in international politics’를 많이 읽게 했구요.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강의 때 교수들이 전부 그날 강의 개요를 정리한 Handout을 준비하여 배부한다는 것이지요. 리스닝이 부족한 저로서는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아쉬운 점은 대학 강의 외에도 영국은 NGO 실무교육을 진행하는 NGO 단체나 기관들이 많은데 이러한 강의를 비용 등의 문제로 전혀 듣지 못하고 현지 운동가들을 사귈 기회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이들과의 교육이나 대화로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지금도 아쉽기만 합니다.

종합해서 말씀드리면 제가 정리한 MGO Management의 얼개와 Key Word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조직발전과 관련되어서는 Knowledge Management, Teamwork, Governance and Boards, Mission and Values, Organisational Assessment, Capacity building, Social Entrepreneurs
2. 운동실행과 관련해서는 Project(Issue) Management, Planning, Monitoring, Evaluation
3. 재정운영은 Fundraising, Donors, Membership, Finances and budgets, Income generation
4. 인적자원 개발은 Volunteers, Human Resources, Training and coaching, mentoring
5. 조직커뮤니케이션과 마켓팅은 Information management, Accountability, Relations between NGOs, The United Nations, Corporate Sector, Advocacy and Lobbying, Using the Internet, Negotiating, Media, Social PR & Marketing 

세부적인 키워드에 따라 논쟁이 많고 특히 조직안에서의 구체적 실행전략은 Bible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구적 현실을 반영한 논의들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한국적 NGO 특수성이 반영되어야 하겠지요. 특히 이러한 논의들이 대체로 국제개발NGO를 대상으로 한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숙고가 필요하겠지요. 경실련과 같은 Advocacy NGO과 관련해서는 연구물들이 많지 않고 책들도 한 Chapter정도로 다루고 있습니다. 서구에 사회발전 단계에 따라 우리와 같이 Advocacy형보다는 개발NGO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제 개인적으로도 1년여 시간동안 개념적 생경함으로 인해 NGO Management의 위와 같은 프레임만 잡았을 뿐이고 세부적인 주제나 키워드와 관련해서는 공부를 더 해보아야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계속 공부를 해야 하겠지요. 하루하루의 일상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계속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는데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돌아와서 경실련을 보면서 희망적인 것은 지난 1년 동안 경실련 내부에 위와 연관된 실험들이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메시지 중심조직으로의 전환 논의’나 ‘스토리텔링 모임’, 또 ‘회비 비중이 확대에 따른 여러 논의’, ‘전례없는 상근자 교육의 진행과 강화’ 등은 위의 Management와 전부 관련된 것들이라 아직은 작지만 변화의 큰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무처장이라는 저의 임무는 결국 위의 것들을 구체화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그리고 상근 운동가들과의 토론 속에서 더디겠지만 경실련의 발전과 변화를 위한 작은 노력부터 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연수 1년 동안 정말 그리웠던 것은 경실련과 경실련의 자랑스런 동료 운동가들이었습니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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