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재 경실련 ODA Watch 실행위원 


밀어내기식 해외봉사활동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가난한 나라를 돕고, 청년의 해외경험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되는 단기 해외봉사단이 최근 경쟁적으로 증가하면서 많은 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대학, 민간단체, 기업이 작년 한 해에 단기로 파견한 청년이 이미 1만 명을 훌쩍 넘었다. 종교단체에서 실시하는 단기선교봉사는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이처럼 엄청난 규모에 비해 그 내용은 아주 부실하다. 파견 전에 필수적인 교육, 연수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몇 시간 동안 모여 주의사항 전달과 행정절차 소개 그리고 장황한 격려와 인사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성과를 위해 어디든지 보내야 하기 때문에 파견국가, 파견지역, 그리고 프로그램에 대한 철저한 검토도 없이 마구보낸다.

적절한 협력기관이나 단체를 찾지 못해 여행사가 일정을 짜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시혜와 봉사라는 우월적 시각으로 보내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니까 우리가 가기만 하면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현실과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보다는 우리가 잘 사니까 베풀러 간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단기 해외봉사단만의 것이 아니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한국국제협력단의 ‘한국해외봉사단’과 해외원조단체협의회 회원 단체들의 ‘한국NGO해외봉사단’ 또한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두 파견사업은 1-2년씩 장기로 파견하기 때문에 단기봉사단에 비해 훨씬 심각한 영향을 준다. 경실련 ODA Watch는 이 두 파견사업의 현황과문제를 매달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기획기사로 연재하고 있는데, 이들 사업 또한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이, 한국의 해외봉사단 파견에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아무런 개선 조치 없이, 해외봉사단 파견을 대폭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신정부 초기에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리더 10만 명 양성 프로젝트’를 통해 IT, BT 등 전문분야 인력을 매년 4,000명씩 선발해 동남아시아 등 개도국에 봉사단으로 파견하고 해외인턴제도와 해외 취업을 활성화시켜 청년 10만 명을 해외에 내보내겠다는 선거 공약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당장이라도 공약을 시행할 것처럼 추진하다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과, 엄청나게 소요되는 예산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대대적인 봉사단 확대계획은 일단 철회된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해외봉사단은 조금만 늘이고, 나머지는 대학과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확대 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숫자를 앞세운 성과주의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뒤늦게나마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이번 일을 통해 두 가지 문제를 재삼 확인하게 되었다. 첫째는 해외봉사단 파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알게 되었다. 저개발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본래 목적 보다는 청년 실업대책이나 글로벌 리더 양성과 같은 부차적 의도로 봉사단 파견을 활용하는 것은 현지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개발도상국 청년들의 일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 되기도 하고 준비안 된 봉사자들이 현지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는 꼴이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정부와 관련기관들이 그 동안 총체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숫자를 늘리는 일에는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제기되는 지적에 대한 개선에는 여러 이유를 대며 회피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해외봉사단을 이야기하면 으레 미국의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본받으라고 한다. 한국에 부임하는 미국대사들이 평화봉사단 출신이기만 하면 언론이 호들갑을 떤다. 우리도 해외봉사단을 통해 이런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렇지만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이런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관심이 없고, 오직 같은 결과만을 바란다.

미국 평화봉사단은 독립된 기관으로 2,500여명의 직원을 가지고 매우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면, 사업 초기부터 이미 훈련의 중요성을 인식하?대학 및 전문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훈련’을 실시해왔다. 그리고 자원봉사자의 전문성을 높이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봉사단 사업을 국제개발 전문가 양성과 연계하고 있으며, ‘국제 석사 프로그램(Master’s International)', ‘USA 펠로우(Fellows USA)' 등의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결국 확고한 비전과 탄탄한 조직, 체계적인 사업운영, 자원봉사자에대한 종합적인 지원 등을 통해서 우리가 부러워하는 미국 평화봉사단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정은 어떤지 되돌아보자. ‘한국해외봉사단’은 충분한 준비도 없이 2004년 청년실업대책의 일환으로 200명 파견을 700명으로 확대하였다. 그 이후 현장은 그야말로 아우성이다.

단원모집의 어려움, 적절한 파견지와 활동 프로젝트 부족, 관리인력과 능력 부족, 교육과 훈련의 형식화, 단원에 대한 사후지원 미흡 등 문제투성이다. 이러다보니 봉사단원들의 불만의 수위도 높아가고 있다. 국가에 대한 감사와 자부심, 활동에 대한 보람보다는 자신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을 토로한다.

사업을 운영하는 국제협력단 내에서도 해외봉사단 업무는 한직으로 인식된다. 과중한 업무, 전문성 배양기회 부족, 봉사단원들의 끝없는 민원.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반면에 보람 또한 큰일이지만 직원들은 이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봉사단 파견 확대와 민간과의 협력증진을 위해 5년째 실시하는 ‘한국NGO해외봉사단사업’ 또한 개선의 노력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국제협력단의 전략부재와 민간단체들의 전문성 부족이 이 사업의 장기적 목표설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이 사업이 국고를 지원받는데 비해 사업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많이 개선이 되기는 했지만 일부는 선교 목적이나 개별단체들의 인력 양성을 위한 파견이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우리의 개발경험은 매우 값진것이며, 한국 청년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무한하다. 지난 17년간 우리 청년들은 빈곤을 탈출하려는 가난한 나라에서 의미있는 활동을 펼쳐왔다. 개도국들로부터 많은 찬사와 감사가 있었지만, 앞으로 사업의 질을 높이려는 개선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 한 자칫 수원국에서의 비판이 높아질 수도 있다.

이제는 정말 숫자를 채우기 위해 급급해서 파견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해외봉사의 가치와 철학을 정립하고, 인프라를 만들고, 인력을 양성하여 글로벌 코리아를 만드는 시금석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왜 해외에 청년들을 보내는가? 우리나라의 청년들을 글로벌 리더로 키우고, 세계시민으로서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데 해외봉사단 경험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렇지만 마구 내보낼 수는 없다. 이들에게 ‘한국이 선도하는 세계’가 아닌 ‘세계와 어깨 걸고 더불어 함께하는 한국’을 가르쳐야 한다. 차제에 해외봉사단 파견을 전담하는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해외봉사단을 파견하는 10여개 선진국 중에서 한국과 일본 등 3개국만이 국제협력단과 같은 개발원조 기관이 직접 해외봉사단 파견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을 보내는 일은 병원과 학교를 짓고, 다리와 도로를 건설하는 개발원조와는 철학과 사업 기반이 달라?한다. 종합적인 미래와 한국의 비전을 세우고, 창의적인 전문가를 양성하고, 민간과의 다양한 협력을 위해 별도의 해외봉사단 파견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