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가 주목하는 이슈] 를 위하여

관리자
발행일 2023.04.04. 조회수 34645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3년 3,4월호-우리들이야기(3)]

<다음 소희>를 위하여


이성윤 회원미디어국 부장


지난 2월, <다음 소희>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2017년 전주에서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학생이 자살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실화를 기반으로 한 게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시민단체, 노조,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는데요. 늦게나마 영화를 접하는 분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월간경실련에도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영화는 현장실습을 앞두고 있는 소희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소희의 담임선생님은 소희에게 현장실습 나갈 곳이 대기업이라고 기쁜 표정으로 이야기합니다. 사실은 대기업의 하청으로 운영되고 있는 콜센터였지만 말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희는 사무직으로 일하게 됐다고 기뻐하죠. 해맑게 첫 출근에 나선 소희의 눈 앞에는 끔찍한 현실이 펼쳐집니다. 전화한 사람들의 욕설과 성희롱, 그리고 직장 내에서 이루어지는 실적압박 등등 이제 막 세상에 나선 소희가 견디기에는 너무 힘든 현실입니다.


소희는 결국 세상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경찰인 유진의 시선으로 넘어갑니다. 소희의 죽음을 단순 자살 사건으로 종결하려던 유진이 사건의 경위를 하나씩 파헤치게 되면서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회사는 현장실습생에게 초과근무에, 이중계약서에,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고, 어떻게든 성과만 짜내려고 합니다. 학교는 현장실습생의 근무 환경이나 처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로지 취업률만을 높이려고 합니다. 학교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교육청도 마찬가지죠. 누구 하나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의 현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진은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나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라는 말을 내뱉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비참한 현실은 나아졌을까요? 실제 사건이 일어난 지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래도 지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학생이 죽었고, 문제가 명확한데 뭔가 나아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라는 희망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영화의 예고를 봤을 때, 저는 2021년 11월에 만났던 ‘특성화고 노동조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만났던 이유가 떠올랐기 때문인데요. 2021년 10월, 여수에서 있었던 현장실습생의 사망 사고가 바로 그것입니다. 무려 5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인터뷰의 내용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현장에서 시간을 아끼기 위해 화상을 입어가며 흉터를 남겨가면서 일하는 모습,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직접 현장실습 나갈 회사를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 후배들을 생각해서 참으라는 이야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장실습생들의 안전과 근무환경들 등등. 미처 알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을 남긴 그 인터뷰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여전히 현장에 있는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이들의 현실은 열악했습니다. 기본적인 안전수칙도 지켜지지 않는 일터에서 수많은 또 다른 소희들은 여전히 남아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곳에서 다치고, 상처받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수많은 희생에도 이 사회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습니다. 힘없는 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없기 때문일까요. 이 영화로 인해 특성화고와 현장실습생들의 현실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나 기사의 내용들을 보면 역시나 여전하다는 내용들이 많은데요.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사고들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가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사고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키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앞으로 지켜야 할 것은 기본적인 안전수칙들, 그리고 기본적인 법들 뿐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자라나고 있는 우리의 미래가 아닐까요. 아이들에게 ‘사회란 이렇게 험하고 냉정한 곳이야’라고 하기 전에 우리는, 이 사회는 너희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 영화의 시작에는 밝은 표정을 춤을 추고 있는 소희의 모습이 나옵니다. <다음 소희>는 이렇게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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