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실용주의’는 넌센스, 국민연금이 신용회복 대책?

관리자
발행일 2008.04.11. 조회수 454
칼럼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팀 국장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마치 집권 말기의 상황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고 있다. 연일 정신없이 이어가는 이명박 정부의 행보가 추락이라고 표현하기에도 가히 위태롭다.


여기에 가세해 얼마 전 청와대가 국민연금 기금을 신용불량자 구제자금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소외계층 지원책으로 일명 ‘뉴스타드 2008 프로젝트’ 란다. 방법은 자신이 내왔던 국민연금 납입금액의 50%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게 해줘서 밀린 빚을 일시에 갚도록 하는 것이다. 대상자가 최대 29만 명 정도 정도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금융채무불이행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대략 260만 명이니 이 대책으로 혜택 받는 대상은 겨우 10%에 불과한 셈이다. 게다가 이로 인한 국민연금 손실액이 최대 420억원이 될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 가운데 절반은 국민의 세금인 정부 재정으로 메워 준다고 한다.


이 발표가 있고 난후에 언론, 학계, 시민단체, 네티즌 모두 이구동성으로 성토하는 분위기다. 총선을 앞두고 나온 선심성 정책이다,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 사회보험 원칙도 무시하는 아마추어적인 정책이다, 국민연금 자체를 흔들 수 있다 등 이유도 다양하다. 급기야는 최고 경영자 출신 대통령 때문에 대한민국 수명이 대통령 임기와 함께 끝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왜 이렇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 걸까?


국민연금은 노후생계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담한다는 취지로 1988년부터 시행했다. 보험료율이 평균소득의 9%에 급여율이 60%이던 것이 지난해 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40%의 급여율로 조정됐다. 연금혜택이 줄게 되어 가입자들이 노후에 빈곤을 걱정하지 않을 만큼의 소득이 못 돼 경실련에서도 최저생계비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부터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었지만 이마저도 충분하진 않다.

다행이도 국민연금 구조는 연금을 받을 때 물가상승률이 반영되기 때문에 사보험에 비해서는 수령액이 높고 소득에 따라 누진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최하위 계층의 경우 평균소득의 100% 급여를 보장받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다. 물론 국민연금을 소득비례연금으로 바꾸고 두 연금의 중복지급을 없애겠다는 한나라당의 정책이 실현되기 전까지이긴 하다.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정책 방향대로라면 적어도 사회재분배 효과는 사라지게 된다.


아무튼 연금문제는 몸살을 앓을 만큼 전 세계가 골치아파하는 문제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급속한 고령화와 노인부양비가 늘면서 공적연금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이유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에 청와대가 뜨거운 감자인 ‘국민연금’을 신용회복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넌센스다.


이번 대책의 문제가 뭔지 살펴보자.


되풀이 되는 실수, 실효성 없는 ‘실용주의’

우선, 국민연금을 대출받은 신용불량자가 돈을 다시 채워 넣지 못할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다시 신용불량자로 남는 것은 물론이고 노후에 받을 연금액도 사라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IMF때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실직자를 대상으로 생계자금 지원 명목으로 1천만원까지 무보증 융자를 받도록 했던 것인데 이때 회수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해 결국은 실패했던 정책으로 기억된다. 소득이 불안정한 취약계층에게 국민연금을 담보로 한 대출금이라 해도 오래 남아있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엔 신용불량자의 경제회생이란 이름으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려하고 있다. 정책의 실효성을 우려하게 되는 대목이다.


노후를 포기하는 대가가 불투명한 신용회복 기회일 뿐

다른 각도에서 IMF의 경험을 기준으로 되새겨보면 90%에 해당하는 대다수 나머지는 단지 신용회복의 기회를 제공받는 대가로 노후 소득보장의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된다. 그나마 국민연금에 가입해서 노후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신용불량자를 아무 대책 없이 노후에 빈곤상태로 몰아넣는 것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야 능력껏 노후를 위한 설계가 가능하겠지만 돈 없는 서민들에게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판이 바로 국민연금인데, 이 연금혜택이 줄게 되면 국민연금의 존재이유,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제도목적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결국 당장 눈앞의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이들에게 더욱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조삼모사, 아래돌 빼서 윗돌 괴는 미봉책

또 다른 문제는 애초에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연금제도의 목적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연금을 지속적으로 납부하고 있는 사람들도 연금액 반환이나 담보 요구를 할 것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전체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마련된 사회연대기금으로 강제성을 띠는 사회보험인데, 이번 대책과 같이 적립금을 미리 빼 쓸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과연 누가 국민연금을 성실히 내려 하겠는가.

더욱이 우리나라와 같이 국민연금 도입역사가 짧고 제도불신요인이 많은 상황에서는 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일 수록 이탈하려는 동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국민연금의 근간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용회복지원을 받은 이들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에 손실액은 고스란히 국민연금기금이 떠안게 되어 국민연금의 재정적 부실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조삼모사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연금법에서는 생계 곤란이나 개인파산을 선고해도 연금을 보호하도록 했다. 납부하는 순간부터 사회적 연대 기금이 되어 개인 저축계정처럼 맘대로 쓸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하물며 정부가 쓰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에 비춰볼 때 이번 대책은 정부가 나서 최후의 노후대책인 국민연금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래돌을 빼서 윗돌 괴는 식의 미봉책이란 지적이다.


분명컨대, 신용불량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은 필요하나 그렇다고 원칙을 깨면서까지 해선 안 된다. 소액대출이나 개인회생제도 활성화 등 다른 정책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갈 사안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눈먼 돈도, 정부가 함부로 동원할 수 있는 돈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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