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걷다] 지속가능한 삶, 평화로 가는 길

관리자
발행일 2013.04.09. 조회수 507
칼럼



지속가능한 삶, 평화로 가
는 길

            가나에서 만난 라이베리아 난민들

정의정 국제팀 간사
ejeong@ccej.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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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부람난민캠프, PCO학교, 유치원반

 

“굿모닝 안뜨 쩡, 하우알유 투데이.”
  작은 입들이 꼬물꼬물 합창을 한다. 5살에서 8살가량 된 15명의 유치원반 학생들 중 대부분이 ‘다행히’ 학교에 나왔다. 난민캠프 어린이들이 학교에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나에서 이방인인 이들은 10년 이상의 긴 난민생활과 일자리 부족으로 늘 배고프다. 때로는 부모와 함께 장사에 나서야하기도 하고, 길에서 배고픔을 달래줄 누군가를 찾기도 한다. 너무나 아프지만 약을 먹지 못해서, 혹은 너무나 배가 고파서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학생들의 공책 맨 앞면에는 ‘신이시여, 오늘도 학교에 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쓰여있다. ‘나에게 공부하는 게 그리 감사할 기회였
던가.’ 1+5=6, 8-4=4와 같은 간단한 수학공식을 가르치다 뒤쳐진 학생들을 봐주고 있노라면, 교실 반대쪽에서는 서로 지우개 조각을 던지고 연필을 조각내 던지는 개구쟁이들의 장난이 시작된다. 캠프의 누군가는 내게 아프리카 아이들은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다르지 않다. 가끔씩 진행되는 미술시간에는 한 반 아이들이 색연필 2다스를 돌려쓰는 까닭에 한 명이 쓸 수 있는 색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로 색깔을 돌려가며 자기만의 예술본능을 펼쳐본다. 어느 날 한 여학생은 눈에 띄게 예쁜 그림을 그려와 자랑을 늘어놓았다. 6살의 솜씨라고 보기 어려운 실력에, ‘아니, 이 아이가 미술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라 생각하며 이 아이의 재능을 살려주고픈 마음에 색연필 한 다스를 구입했다. 친구들과 함께 집에 가는 그 아이가 혼자 남을 때까지 기다리다 조용히 불러서 물어보니, 그 그림은 초등반에 있는 오빠가 그린 그림이었다. ‘순간 아찔~’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 노력해왔기에, 색연필은 다시 내 가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곳에 머무는 짧은 시간동안,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다. 매일 길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캠프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도 없었고, 가족의 원수라며 싸우는 사람들을 말릴 수도 없었고, 미혼모 여성들에게 재봉틀을 사줄 수도 없었다. 다만 얼굴을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수는 있지 않을까. 커서 무엇인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게 도와줄 수는 있지 않을까.

 




개발과 지속가능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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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은 ‘자유로서의 개발(Development as Freedom)’에서 개발이란 인간의 실질적 자유를 확장시키는 과정으로서, 실질적 자유는 기아, 영양실조, 영아사망 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 경제적 편의, 사회적 기여, 투명성 보장, 보호적 안정성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센은 인간을 변화하는 능동적 행위자로 보며 정부, 시장, 법, 언론 등이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충족시키고 보장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는 반군이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내전으로    ▲부드부람난민캠프

10년 이상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가나의 부드부

람 지역에는 1990년부터 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약 1만2천여명의 라이베리아 난민들이 난민캠프를 이루며 살아간다. 거대한 판자촌 속에서 내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얽혀 살아간다. 가슴 깊이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분쟁이후의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위협으로서의 자유, 바로 ‘평화’가 먼저 필요하다.


  내전에서 살아남아 피난 온 이들이 하루하루 버텨온 삶이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라이베리아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할 그 곳에서 나는 지속가능한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센이 언급한 실질적 자유를 확장시키기 위해 라이베리아 난민은 어떤 역할을 하고, UN은 어떤 역할을 하며, 가나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또한 NGO는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2015년이 목표인‘MDGs(새천년개발목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Rio+20’, MDGs 이후의 세계목표를 설정하기 위한 ‘Post 2015’ 논의와 같이 전 세계 수장들과 국제기구, 각계 대표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논의와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들이 내전으로 황폐화된 한명의 인생을 더 나아지게 해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치유, 용서,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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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부람난민캠프, PCO학교

끝나지 않는 이야기


  2007년부터 시작된 UNHCR(유엔난민기구)의 철수로 캠프에서 많은 사람들이 라이베리아로 돌아갔다. 학교 선생님들도 떠났고, 학생들도 떠나갔다. 학교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어서 학교는 결국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아직도 부드부람에는 라이베리아 사람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2012년 5월, 라이베리아 전 대통령인 찰스테일러는 라이베리아에 내전을 일으키고, 시에라리온의 내전을 지원하여 수많은 목숨을 잃게 하고, 소년병을 학대했다. 그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전쟁범죄자로서 50년형이 구형되었다.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라이베리아 난민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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