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밑져야 본전이다_노귀남 동북아미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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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6.04. 조회수 740
칼럼

밑져야 본전이다


 


 


노귀남 동북아미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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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속 신의주-새벽까지 건축조명이 남아있다.)


 


그냥, 사는 땅을 지켜본다. 그것도 안도 밖도 아닌 압록강 변경에서 살면서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보기만 해도 건질 게 꽤 많다. 밑져야 본전이니 걸릴 게 없고 발 닿는 대로 귀 열린 대로 보고 듣는다. 북중관계는 적대국이 아니니까 국제적 차원의 대북제제가 있다고 해도 변경의 민초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남한 해역에서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의 현장을 비추어 보면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해경(海警)보다 날고뛰는 어선을 어떻게 막으랴! 여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니, 불법거래의 단위가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제재결의안으로 북한을 강경하게 압박하고, 중국도 가세했다. 하지만 중국이 자국민의 생업에 걸린 이해관계를 스스로 막을 수 없다. 특히 신의주-단동 사이 소형선박이 무수히 왕래하며 벌이는 해상 밀수는 유명하다. 이 국면에서 북한의 경비정은 중국배를 깃발로 멈추게 하고서는 번번이 수천 위안씩, 이전보다 더 많은 벌금을 물린단다. 그래도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하기 위해 반쯤은 전쟁과 다를 바 없는 거친 생존투쟁이 일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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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산악지대의 화전 연기) 



평양에서 수예품 샘플이 나왔다. 북중 간의 거래에서 중국 사람들도 현지로 가서 직접 보고 주문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라, 작은 거래라도 성사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겨우 넘겨받은 샘플을 여기서 ‘대방’이라고 부르는 상대 거래처에 보냈다. ‘주문 불가’라는 회신이 오고 사건이 벌어졌다. 갑자기 샘플 반환을 요구했다. 그대로 돌려주자 그 샘플이 본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현상인가? 중국측 상사(商社)는 고민을 했다. 싸울까, 멈출까, 갈까? 여기에서 북중 간의 개인 무역은 법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관행과 생존방식에 따르기 때문에 특정한 신뢰 관계로 이어진 인맥으로 이뤄진다. 국외자에게는 정말 생경하고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그래서 ‘아 다르고 어 다르게’ 그 나름의 방식에 따르는 이해가 필요했다. 거래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 말귀를 알아들어야 하고 상호간에 호감과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신뢰가 쌓이기까지는 아직 멀고먼 것 같다. 주고 뺨 맞을 수 없고 떼쓰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은 체제보장우선의 요구를 일관되게 함으로써 양측의 타협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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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북한식당공연) 



이때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는 민간의 생업이다. 정치는 대의를 위해서 소의를 희생한다고 하지만, ‘생업자 천하대본’이 참이라면 ‘정치적 대의’가 생업보다 결코 클 수 없다. 민초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보면 남북 양측의 대립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 동안 개성공단은 위기의 국면을 아슬아슬하게 걸어왔다. 어떻게 진단되든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아예 문을 닫고 상호 공방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북에서 지난 4월 27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형식으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성공업지구가 완전히 폐쇄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하며 그 말끝에, “막대한 손해와 피해를 볼 것은 남측이며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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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세관중심의 혜산풍경)



밑져야 본전이다. 아무튼 본전이 절실하고 꼭 챙겨야 한다는 말이지만 이 말의 뉘앙스는 간단치 않다. 대체로 북과 말싸움을 해서 본전 찾기 어렵다. 더구나 손익계산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하지 않고, “밑져야”식의 마지노선에서 “벼랑 끝” 계산을 하고 들면, 남한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그 억지 논리에 말문이 막힌다. 이 지점에서 같은 민족 언어를 쓰는 동족으로서 되돌아보면, 말의 외피보다 태도와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가 남이가?’ 그 뉘앙스를 읽고 상대의 마음을 읽으면 말싸움을 멈출 수 있고, 이해와 신뢰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것은 칼날처럼 무기도 되고 이기도 된다. 남과 북이 지독하게 싸우는 것도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제의 싸움이 무서운 것은 이해와 오해를 가져오는 언어의 감정선이 즉각적이고 더 깊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떻게 멈출까? 북은 “공업지구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대해 《돈줄》이니,《밥줄》이니 뭐니 하며 참을 수 없이 모독”하였다고 했다. 남북이 싸우는 말을 남이 아니라 생각하고 들어보면 기막히고 아프다. 아무리 ‘모독’의 차원에서 한 말이 아니라고 한들, 제발 말귀를 좀 알아들으라고 한들, 벽창호가 따로 없다. 그것은 정작 같은 말을 쓰지만 서로 형편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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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해관부근 대북무역상점)



그렇다. 샘플 반환을 요구했을 때, 기실은 그 일이 성사됨으로써 먹고 사는 절박한 문제를 간절하게 풀고자 했을 것이다. 그것은 역설이었다. 원래 견본을 내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을 때, 분노처럼 보였을 그의 말에서 착잡했을 심경을 읽어 본다면? 나는 나중에 들었다. 샘플 반환 문제로 설전을 벌이다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그가 되돌아와서 버스비조차 없다며 잔돈을 받아갔다고. 이런! 체면과 사상이 아니라 생존문제가 핵심인 줄 뻔히 알면서 그것을 얻는 방법을 모른다.


 


이를테면 사랑을 쟁취하지 못했던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후회하지 않으려면?


 


사랑하는 방식도 배워야 안다. 우리가 서로 본말을 전도시키지 않고 소통하는 길은 찾아야겠는데, 왕청같은 돌출행동은 길과 더 멀어지게 한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까? 밥이라도 같이 먹자 했는데, 그깟 밥 한 끼 얻어먹자고 자기 존엄을 버릴까 보냐고, 먹기 싫으면 말라고, 한 끼니보다 더 소중한 내일을 지켜야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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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압록강 마을 풍경)



한때 우리 부모님들은 내일을 위해, 자식을 위해 끼니도 거르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북녘에서도 부모들은 마찬가지일 터, 민족의 내일을 위해 방심하지 않고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을까? 경제적으로 살만한 우리는 방심하지 말라고 ‘안보’를 외친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약자는 공격적 방어로 칼날을 세운다. 전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작 우리가 방심하고 있는 것은 북중 변경이고 중국인 것 같다. ‘밥줄’이 남한에 달렸다는 개성공단 노동력은 출구가 없지 않다. 중국으로 송출되는 인력이 벌써 몇 십만이라는 말이 헛소문이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중국내 북한 노동자는 한 공장에도 수백 명씩 일하고 있고, 그것은 중국측 저임금 수요와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이렇게 필요와 이해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여 방심하고 있지 않은지?


  
중국말에서 방심(放心)은 걱정하는 마음을 놓고 편안한 마음이 된다는 안심(安心)을 뜻한다. 중국말 방심이 왜 우리말에서 정반대 상황이 될까? 물론 맹수도 함부로 방심하지 않겠지만, 약자는 항상 마음을 놓아 버리거나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불행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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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철교 북행 트럭)



방심은 과정과 방법에 무게를 둔 말이라면, 안심은 그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과정과 결과를 꿰뚫어보는 통찰이 있어야 안심까지 도달할 수 있다. 중국에서 위험이 있는 곳에 조심하라는 뜻으로 “小心”이라고 써 둔 것을 보고 처음에 의아했다. 나중에는 이해가 좀 갔다. 중국의 주민들이 소심(小心)으로써 위험을 방어한다고 대국이 흔들리랴. 우리가 작은 땅 한반도 반쪽에서 살면서는 실수가 없도록 마음을 삼가고 경계하고 조심(照心)하여야만 비로소 조심(操心)이 된다.



한반도 위기에 대처하는 신뢰의 ‘프로세스와 골인’을 위해서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소탐대실하는 단견(短見)에서 벗어나 세심하면서도 판을 넓고 멀리 보아야 하리라. ‘밑져야 본전’이라 한 것이 벼랑이 되지 않게 하려면 밑지지 않도록 시장을 잘 배워야 스위스 산악 길 같은, 벼랑에서도 길을 내는 지혜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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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한 임강해관 임강-중강진) 


 


우리는 경제력에서 꽤나 앞서가는 나라로 성장했다. ‘한국적 자신감’에서 혹시 소심(小心)하고 방심하는 것은 아닌지, 뒤늦게 본전 생각이나 하지 않을지, 조심하고 안심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한반도 너머까지 두루 통찰해 보는 눈이 절실한 때이다. 대국에 끼여 있는 작은 나라가 사는 지혜를 선조들의 말, 남북 공용의 민족어에서 잘 살펴보고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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