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해야 할 일들

관리자
발행일 2007.09.05. 조회수 452
칼럼

윤종빈  경실련 정치개혁위원 (명지대 정치학 교수)


노무현 정부의 임기 말 정기국회는 ‘이명박 검증 국회’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권의 코앞으로 다가온 연말 대통령 선거와 내년 4월 총선 올인이 국회의 정상적인 가동을 가로막고 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였던 이회창의 두 아들 병역 의혹에 대한 폭로전이 정기국회를 마비시켰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17대 국회는 초선의원의 대거 등장과 높아진 학력 수준, 젊어진 연령으로 입법 생산성에 많은 기대를 모았다. 표면적으로는 16대 국회에 비해 국회의원들의 입법 발의 건수가 몇 배로 늘었다. 그러나 부실한 내용으로 90%가 가결되지 못했고, 공동 발의가 지나치게 남발되고 있으며, 시급하고 중요한 개혁 법안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정치적 공방에 휩싸여 있다. 이로 인해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국민의 요구’라는 거짓말로 또 다시 그들만의 ‘동네축구’ 리그를 시작하고 있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고 규칙도 일정도 즉흥적인 싸움의 대상이 된다. 8월31일 국회 법사위의 법무장관 후보 인사청문회는 후보의 자질에 대한 검증보다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에 대한 공방으로 일관했고 국정감사 의사일정을 갖고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치범 환경부 장관은 대선 캠프 올인을 위해 국정감사를 눈앞에 두고 사퇴해 국감을 준비하던 행정조직을 무책임하게 버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도로 열린우리당’이란 비난을 받고 있는 민주신당의 출범은 우리 국회를 동네축구 운동장으로 전락시켰다. 국민은 17대 국회를 과반 의석의 여당인 열린우리당, 이를 견제하는 한나라당·민주당·민주노동당의 4개 정당체제로 출범시켰지만 열린우리당은 이런 민의를 제멋대로 왜곡했다. 열린우리당의 이합집산 과정이 국회를 진흙탕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국회는 만신창이가 된 채 방치된다. 범여권이 왜 합쳐야 되는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의 시대적 요구라고 극찬한 양당체제가 왜 필요한지를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대선 승리를 위한 반(反) 한나라당 연합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국회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국회와 정당체제의 왜곡은 17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부실 국회가 될 것을 쉽게 예견케 한다. 열린우리당 탈당 의원들의 교섭단체 구성 및 대선체제로 인한 잦은 상임위원회 이동, 여당 없는 정부의 국정감사 준비, 정당 간의 정책 공조 실종 등으로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민생·개혁정책 실험의 실패를 극복하겠다고 등장한 민주신당은 아직도 뚜렷한 비전이 없다. 수많은 대선주자들이 제각각 정책을 제시하지만 성장·분배에 대한 이념적 노선이 헷갈리고 정체성을 가늠할 수 없는 잡탕 정책만 눈에 띌 뿐이다. 국정감사의 방향을 알 수 없고 민생법안 처리에 대한 열정도 느낄 수 없다. 오로지 면책특권에 의존해 폭로전을 준비하는 사생결단의 각오만 들릴 뿐이다.


국민의 부실 국회에 대한 걱정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예산 관련 법안, 의료사고 피해 구제법, 사립학교법 재개정안, 사회보험료 부과 관련 법 등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법안들이 산적해 있다. 2008년도 예산안 심의는 10월초에 시작해 국회법에 따라 12월초까지 마쳐야 한다. 행정부 정책 집행의 잘잘못을 가리는 국정감사도 늘 일정이 촉박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부실 예산심의, 부실 국정감사 비난이 이번에도 대선 정국으로 인해 더욱 거세질 것이 자명하다. 이번만은 예외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허황된 꿈인가.


* 이 글은 문화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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