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에서 산 책]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관리자
발행일 2023.04.04. 조회수 35756
스토리

[월간경실련 2023년 3,4월호-우리들이야기(5)]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데미안>, 그리고 <불펜의 시간>-


이성윤 회원미디어국 부장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누구나 살면서 이런 고민을 한 번쯤 하게 됩니다. 청소년기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죠. 여러분은 이럴 때 어디서 답을 찾으시나요? 이번 호에서는 이런 고민이 들 때, 함께 할 수 있는 책 두 권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한 권은 청소년기의 필독서로도 꼽히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다른 한 권은 또 다른 삶의 기준을 고민하게 하는 책인 김유원 작가의 <불펜의 시간>입니다.


<데미안>, 살아가는 이유를 고민하다

<데미안>은 철학적으로도 해석의 여지가 있고, 종교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을 표면적으로 보면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서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춘기 청소년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왠지 그때 읽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주는 어두운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집안은 풍족하고, 가족들은 화목하고 평화롭죠. 하지만 한 번의 거짓말로 크로머라는 어둠의 세계에 짓눌리게 됩니다. 싱클레어는 두 세계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합니다. 가족들이 자신의 악행과 거짓말을 알아채 주기를 바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죠. 그러나 크로머의 위협은 갈수록 심해지고, 싱클레어는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 바로 데미안이 나타납니다. 데미안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소년도 소녀도 아닌 누구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이렇듯 정체를 알 수 없는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다가와 그를 어둠 속에서 구원해줍니다. 그 이후로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하나의 지향점 같은 존재가 됩니다. 데미안이 떠난 이후에도 싱클레어는 끝없이 고민하고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기도 하는데 그 고민의 끝에는 언제나 데미안이 있습니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인데요. <데미안>이 보여주는 두 개의 세계에 대한 답이 이 문장에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지금의 세계와 투쟁해야 합니다. 책 속의 데미안도 끝없이 투쟁합니다. 그 투쟁 속에서 나만의 길이, 나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데미안은 답을 찾았을까요? 그 답은 알 수 없지만, 시대가 달라져도 그가 했던 고민만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실패가 아닌 또 다른 삶, <불펜의 시간>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치열한 현재를 살아가는 세 사람의 투쟁이 담긴 책 <불펜의 시간>으로 가보겠습니다. 이 책은 힘겨운 직장생활을 버티고 있는 준삼, 한때는 최고의 유망주였지만 지금은 지고 있는 경기에 주로 나오는 불펜투수가 된 혁오, 야구천재 소녀였지만 현실에 막혀 선수가 되지 못하고, 성공을 꿈꾸는 스포츠신문 기자가 된 기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준삼은 어릴 때 야구선수였습니다.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선수로 성장하고 있었죠. 그런데 같은 팀에는 혁오라는 특급 에이스가 있었습니다. 유려한 투구폼, 그리고 언제나 겸손한 태도로 팀을 이끄는 선수였죠. 준삼은 혁오를 보면서 야구를 포기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준삼은 혁오의 경기를 보게 됩니다. 그는 여전히 유려한 투구폼을 보여주는데 어딘가 이상합니다. 준삼은 혁오가 일부러 볼넷을 던지는 것 같다고 느끼죠. 기자인 기현은 이를 승부조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혁오를 취재하기 위해 그에게 접근하죠.


그런데 혁오는 정말 일부러 볼넷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승부조작은 아니었죠. 그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이기기 위해 해온 야구 때문에 한 친구가 자살을 하게 되고, 그 이후로 이기려고 공을 던지면 자꾸 그 친구가 나타나서 공을 제대로 던질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의 룰을 만들어서 이기지 않는 야구를 시작합니다.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사람은 소설에도 현실에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기기만을 요구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경쟁에 지쳐서 병들고, 쓰러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그런 삶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죠. 모두가 더 빨리 달리기를 바라고, 거기서 밀려난 사람들은 패배자로 실패자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마치 인생의 정답이 하나인 것처럼 말입니다. 기묘하게도 사람들은 인생의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불펜의 시간>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인생에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저렇게는 못살 것 같은데 지금과는 다르게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보라고 권하진 않겠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어떤 삶을 살지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든다면 이 책들을 꺼내 보며 잠시 쉬어가는 걸 추천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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