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파동 韓ㆍ美 둘다 大失

관리자
발행일 2008.06.02. 조회수 540
칼럼

김성훈(前 농림부장관, 상지대 총장)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눈앞의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더 큰 이익을 잃어버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지난 5월29일 미국의 막강한 로비단체인 축산육우협회(NCBA) 엔디 그로세타 회장은 협회 홈페이지에서 한미 쇠고기 위생조건 협상을 위대한 승리라고 한껏 추켜세웠다. 매년 한국에 약 100만마리에 해당하는 자국의 쇠고기 1조원어치를 수출할 수 있게 됐음을 자축하는 말이다. 그간 광우병의 99%가 발생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비롯해 곱창, 사골, 내장, 갈비, 소꼬리까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팔아먹게 돼 자못 기대가 큰 듯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정부 여당과 일부 단체 등이 수십억의 광고비를 써가며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럴수록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참가자 수는 더욱 늘어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청계천 등지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벌써 20회를 훌쩍 넘겼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정상회담 직전까지 밀어붙인 쇠고기 협상은 결국 소탐대실의 전형적인 사례가 돼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시민들과 재미교포 및 유학생들이 매일 먹는, 광우병에 안전한 20개월령 이하의 쇠고기마저 한국에서 의심받고 배척받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소비자들이 불안해하는 30개월령 이상짜리와 위험물질(SRM)을 수출하려다 진짜 ‘값싸고 질 좋은’ 부위마저 의심받게 된 것이다.


소탐대실에선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당초 얼마 안 되는 축산농가만 염두에 두고 그 저항이 별거 아닐 걸로 여겼던 것 같다.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도 되지 않는다는 안이한 발상이 아마도 그래서 나온 듯싶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의 수혜 대상자로 생각했던 도시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전혀 뜻밖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너나 드세요”라는 구호가 함축하듯 먹는 문제는 확률로 따질 사안이 아닌 것이다.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방역과 검역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 하겠다. 이를 망각한 협상이 빚어낸 업보가 국민저항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인간광우병 전염인자(프리온)가 득실대는 부위와 의심 연령대 쇠고기의 수입을 한미 캠프데이비드 회담 몇 시간 전에 부리나케 결정한 처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종래의 정부 입장을 뒤집고 세계적 추세까지 거스른 채 검역주권마저 내어준 행위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일거에 무너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신뢰는 군대와 식량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신뢰가 없으면 어떠한 정책도 제대로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실’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미 당사자가 시급히 다시 만나 한국의 쇠고기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식과 내용대로 가축 위생조건을 고쳐야 한다. 기존 협상내용을 제쳐두고 절대적으로 안전한 부위와 연령의 소고기들을 단계적으로 한국 소비자가 신뢰하는 방식으로 도축·수입·판매할 수 있게 검역체제를 협의해야 한다.


또 미국산을 들여올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학교·군대 급식, 소규모 식당, 가공식품시장에서 30개월령 이상과 광우병 위험물질 취급을 금지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고 미국도 그들이 원하는 수량만큼 팔 수 있을 게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기본으로 돌아가 한미 양국의 진짜 ‘윈윈’이 뭔지 생각해 볼 때이다.


* 이 글은 세계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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