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쌀 재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7가지 문제점

관리자
발행일 2004.12.16. 조회수 2462
경제

정부는 국익과 농촌을 생각하는 자세로 쌀 재협상의 잘못을 시인하고
협상 내용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쌀 재협상의 최종타결을 위해 협상 대상국과의 막바지 협상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주요대상국인 중국과 미국 등과의 협상 내용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협상 과정과 내용에 대해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정부의 사실상의 협상실패는 전략부재와 협상 실무력의 미숙에서 기인한 ‘자승자박’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당초 9월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2005년부터 자동관세화 된다고 했다가,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말을 바꾸어 2004년 말 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자동관세화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의 어느 규정에도 2004년도까지 쌀 재협상을 마치지 않으면 자동관세화 된다는 규정은 없다. 2004년까지 이해 당사국끼리 쌀 재협상을 한다고만 돼 있을 뿐이며 협상 결렬 때의 처리 규정은 없는 것이다.


정부가 WTO 사무국에 비공식적으로 물어봤더니 직원의 답변이 그랬다고 하는데 재판관에게 판정 결과를 미리 알아보았다는 말처럼 사리에 맞지 않다. 이는 관세화유예를 위한 쌀 재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책임을 회피하고 농민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경실련>은 정부의 쌀 재협상 과정과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첫째, 기준연도의 변경 없이 2014년까지 8%를 의무 수입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지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 타결 시 쌀 관세화 유예를 얻어내면서 향후 10년간(1995년~2004년), 기준연도(86~88년 평균 쌀 국내 소비량)의 1%~4%까지의 의무수입을 약속했고, 이를 성실히 수행해 왔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이번 재협상에서는 적어도 96~98년 평균 쌀 국내 소비량을 기준연도로 변경해서 협상을 했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고, 논리적으로도 마땅하다.


정부가 단 2년을 늦춘 88~90년을 기준연도로 합의하고, 2014년까지 이의 8%를 의무 수입하겠다는 것은 이미 협상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다. 그것은 국내 쌀 소비량이 10년 이전에 비해 크게 줄고 있기 때문에 88~90년 기준의 8%는 최종연도 소비량의 12% 이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실제 쌀 의무수입량의 수치가 축소되어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협상 대상국 측에 의하면 96~98년도로의 기준연도 변경에 대해서는 협상에서 제기조차 되지 않았다고 하니, 이는 협상팀의 무능이자 직무태만이며, 국민 기만이다.


둘째, 관세화유예를 위한 쌀 재협상의 의제는 의무수입량의 결정에 한정되어야 함에도 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 규정에 의하면 쌀 관세화유예(부분개방)의 경우, 의무수입량의 결정이 주된 의제이다. 따라서 국가별 수입물량 배분(의무수입량의 각 국별 쿼터)을 결정, 제3국(북한)에 쌀을 지원, 수입쌀의 소비자 시판 비중(30%) 등은 국내에서 논의해서 결정할 문제이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협상의제가 아닌 것은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함으로써 협상 중인 8개 국가에서 우리나라에 불리한 저마다의 요구조건들을 무리하게 들고 나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은 정부의 외교력의 빈곤이요, 협상의 무능이다.


셋째, 정부는 관세화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정부기관의 예측과 정책결정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정부는 관세화유예(부분개방)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관세화(완전개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공언하였으며, 그렇게 될 경우 400% 미만의 관세율을 부과할 것으로 언론에 밝혀왔다. 그 정도 수준의 쌀 시장 완전개방이라면 주요 협상 대상국인 중국은 가격경쟁력으로 충분히 한국시장을 잠식할 수 있으며, 미국의 다국적기업들도 대규모 자본과 계절별 가격 변동 폭을 활용해 국내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지 않아 국내의 농업과 농촌이 몰락할 것은 자명하다. 정부가 자동관세화를 주장하면서 관세화율은 어느 정도로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그 결과 정부기관의 예측과 반대로 국익이 훼손되고 쌀 산업 더 나아가 농촌이 몰락할 경우에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정책결정자의 실명을 밝혀야한다.


넷째, 만약 국익을 위해 관세화가 바람직하다고 판단될 경우라도 관세 상당치와 관세율 조정을 통해 쌀 수입을 억제하겠는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관세화(완전개방)로 전환하는 것이 국익과 농민의 권익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라도 수입쌀에 부과할 관세 상당치와 관세율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은 기준연도(86~88년) 기간 중 해당품목을 전혀 수입한 경험이 없는 나라의 경우 ①유사품목의 국내외 가격차이 또는 ②인접 국가의 쌀 관련 데이터를 원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향후에 관세화를 택하게 될 경우에는 일본의 사례를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본은 1999년 관세화로 전환하면서 기준연도 기간 중 태국산 싸레기 쌀을 수입했던 사실을 근거로 당시의 국내외 가격차이 1,300%를 관세 상당치로 계산했다. 물론 그때까지의 의무수입량 7.2%는 계속 수입한다는 조건이었다.


또한 그중 상당량을 미국에서 들여올 것을 이면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결과 첫해(99년) 관세 상당치는 지난 6년간의 감축률을 제한 1,100% 수준에서 완전 개방했다. 이것은 일본의 관세화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완전개방이지만 실제로는 방화벽 장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협상당국은 우루과이라운드(UR) 규정에 따른 일본의 사례를 원용하는 대신 396%의 턱없이 낮은 관세율을 적용할 것으로 보도되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 모호하고 위험하다.


국민과 농민에게 한 연구원의 가상시나리오에 근거해서 관세화 할 경우 7.5% 수입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주장하는 것도 위험천만한 숫자놀음이다. 관세화는 의무수입량 이상으로 수입하지 않는 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협상과정에 관세화율 400% 미만을 내용으로 하는 관세화불사론을 내세운 것은 협상의 ABC도 모르는 행위인 것이다.


다섯째, 관세화가 유리하더라도 DDA의 세부원칙(Modality)이 결정되기 이전까지는 관세화 유예를 유지해야 한다.


설사 일본 수준의 관세화가 우리에게 유리하다 할지라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WTO, DDA 협상의 세부원칙(Modality)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장차 관세 상한선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1차적으로 관세화유예 방안을 얻어내고 관망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부원칙(Modality)이 어떻게 결정될지도 모르면서 관세화불사론을 제기한 것은 협상 상대국(중국, 미국)에게 하등의 위협이 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나라 농민과 국민들에게만 엄청난 충격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거듭된 관세화 불사 의지 표명의 의도가 무엇인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여섯째, 협상과정의 내용을 상대국에 공개한 것은 그로 인한 긍정적 효과보다는 강경한 태도를 자초한 것으로 졸렬한 협상태도이다.


협상과정 중인 11월 초, 주무 책임자가 미국과의 잠정협정 결과를 언론에 인터뷰하면서 당시 일정량의 쿼터를 미국 측에 양보할 듯한 내용을 공개하여, 한국 쌀 시장에 가장 위협적인 중국을 자극해 결과적으로 중국이 비밀리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미국과의 협상 내용을 탐문하고, 쿼터 지분 확보를 위해 전에 없는 강경한 자세를 보이도록 유도한 결과를 만들었다. 어느 나라가 8개국과 협상을 하는데 있어서 특정국가와의 협상 결과를 흘려 상대 국가의 긴장을 불러일으킨단 말인가? 사전에 A국가와의 협상 결과를 B, C, D국가에 공개해서 해보나마나한 협상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정부 스스로 국익을 훼손한 것뿐만 아니라 졸렬한 협상태도이다.


일곱째, 2015년 이후 관세화(완전개방)를 전제로 협상에 임한 것은 협상미숙을 드러낸 것이다.


국제통상협상 경험이 전무(全無)했던 93년 우루과이라운드(UR)농업협정 당시에도 협정문 말미에 유예기간 10년 후 재협상 내용을 조문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일각에서 이번 협상에서는 2015년 이후 자동관세화(완전개방)를 전제로 했다고 하니, 정부는 이에 대하여 먼저 사실 관계를 밝혀야 한다. 차기협상용 또는 관세화로 전환할지라도 그와 같은 단서조항 첨부가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만약 사실이라면 이 또한 협상의 미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쌀 재협상에서의 잘못은 관세화(완전개방)를 염두에 둔 자동관세화론을 협상에 앞서 정부 공식입장으로 발표한데서 비롯된 자승자박의 결과이고, 협상 미숙의 결과이다.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심지어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게도 그 내용을 비밀로 하면서, 브리핑제도를 악용하여 언론플레이를 통해 국민을 속이고, 농민을 위협하고, 국가최고통수권자의 판단까지 흐리고 있다.


이 협상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쌀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과 농촌․농민을 살리기 위해 겸허한 자세로 국익을 위해 잘못을 시인하고, 쌀 재 협상 결과에 대해 시간을 두고 전면 재검토해줄 것을 요구하며, 이번 미숙한 협상의 책임자를 문책할 것을 촉구한다.


[문의: 정책실 경제정책팀 02-3673-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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