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르포, “우린 꿈도 못 꿔. 투기꾼이라면 모를까”

관리자
발행일 2006.11.29. 조회수 2534
부동산

오마이뉴스 김시연 기자


 



















▲ 21일 판교 공공분양 당첨자 가족들이 아파트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주변에서 한 턱 내라고 난리에요. 내 집이 생긴다니 말할 수 없이 든든하네요."

이제 막 계약을 마친 여인현(39)씨 부부는 자못 들뜬 모습이었다. 결혼 5년차지만 여씨가 미혼시절부터 10년 넘게 부은 청약저축통장 덕에 '판교입성'이라는 꿈을 이뤘다. 계약금을 간신히 치르고 중도금은 대출로 해결해야 하는 빠듯한 상황이지만 부부 표정은 뿌듯했다.


[장면 #1]
로또 당첨?... 판교에서 미래 꿈꾸는 사람들



성남 판교 2차 분양 계약 8일째인 21일 오전 10시.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분당 대한주택공사(아래 주공) 주택전시관에는 당첨자 수십명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계약하는 상품은 주공 32평형(전용면적 25평) 공공분양아파트. 청약저축 가입자 등 무주택자에게 공급하는 국민주택 규모지만, 분양가가 적게는 3억5천만원에서 4억원(평당 1200만원)에 이른다.

잠실에서 10년 전세살이를 하다 이번에 32평 아파트를 분양받은 최아무개(38)씨는 원래 성남에서 나고 자랐다. "분당 신도시 덕에 기반시설이 많이 생겨 지금 부모님이 사는 성남 구시가지도 덩달아 발전했다"며 개발 당시를 회상하는 최씨. 그는 "지금 아이가 둘인데 교육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강남과 가까운 데다 용적률도 낮아 살기 좋을 것 같다"며 판교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 최씨도 1억5천만원은 대출 받아야 중도금을 내고 집을 살 수 있다. 10년 전매 제한 역시 큰 부담이다.

"집사기 전엔 안 오르는 게 좋고 집산 뒤엔 오르길 바란다는데, 솔직히 요즘 집값은 올라도 너무 올랐어요."


[장면 #2]
컨테이너살이 7개월... 삶이 곧 투쟁인 사람들
















▲ 판교 철거 세입자인 송상엽씨(왼쪽) 가족은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한 임시건물에서 7개월째 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같은 날 정오 분당과 경계를 이룬 동판교에 속한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 택지개발지구.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할 것 없이 온통 파헤쳐져 흙먼지만 날리는 그곳에 컨테이너박스를 고친 임시건물 두 채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곳은 지난 4월 20일 '행정대집행' 당시 집이 강제철거된 뒤 7개월째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송상엽(65)씨 가족의 마지막 보루다.

컨테이너 방에서 이웃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송씨는 기자가 왔다는 말에 다짜고짜 철거 계고장을 바닥에 펼쳐놓는다. 16일자로 발행한 '대집행 영장'에는 강제철거일시가 '2006.11.20 08:00~18:00'로 박혔지만 이미 하루가 지나 있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한 번 당해보니까…. 지난 4월에도 여경에 팔다리 붙잡혀 꼼짝 못하고 쫓겨났는데, 이제 이중철거 당할 판이야. 계속 버틸 자신도 없어. 여기서 쫓아내면 성남시청에 가서라도 천막치고 살아야지."

판교 철거 세입자들은 현실적인 보상과 이주대책, 생계대책 등을 요구하며 정부와 시행사에 맞서 수년째 투쟁을 벌여왔다. 이들에게 '삶은 곧 투쟁'이었다.

"처음 5~6개월은 전기도 안 나와 호롱불에 의지하고, 수도도 끊겨 성남시청에서 물길어다 먹었지. 무더위와 모기 등쌀에도 여름은 어떻게 버텼는데 당장 겨울나는 게 문제야."


1년에 50만원 내고 살았는데 보증금 5000만원 내라?















▲ 차옥녀(76)씨가 살던 향나무집. 자진철거해 폐허로 남아있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송씨 가족이 판교에 뿌리를 내린 건 24년 전. 건축제한 때문에 비닐하우스를 고친 무허가건물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개와 닭 100여 마리를 기르며 20년 넘게 생계를 꾸려왔다. 당시 부지 임대료는 1년에 50만원이었다고 한다.

2001년 판교신도시 개발계획이 나올 당시만 해도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 89년 이전에 지은 주거용 무허가건물에도 대토(이주대책용 단독주택용지)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씨와 4남매에게 돌아온 건 아파트분양권(특별공급)과 임대아파트 입주권이었다. 문제는 말이 임대아파트지 보증금 4천~5천만원에 월 임대료가 30~40만원에 달해 영세민들로선 감당하기 힘든 조건이라는 것. 또 당장 지낼 곳도 마땅치 않고 축산업을 계속할 수 없어 생계도 막막한 상황이다.

집이 헐린 뒤 송씨 집에 의탁하고 있는 최영순(64)씨나 이웃에 살던 차옥녀(76)씨 사정도 비슷하다. '향나무집 할머니'로 불리는 차씨는 자진 철거하고 나가면 전세자금 지원해 준다는 말만 믿고 집을 구해 나갔더니 지원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만 들었다고 한다.

택지개발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그동안 함께 투쟁하던 철거 세입자들은 하나 둘 판교 땅을 떠났다. 이제 오갈 데 없는 50여세대 정도가 운정동·판교동·사송동 등지에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이들에게 판교는 희망이 아니다.

"강남대체신도시라고 하는데 여긴 돈 있는 사람만 들어와. 우린 강 건너 불구경이지. 평당 1800만원이나 하는데 원주민은 꿈도 못 꿔. 투기꾼이라면 모를까."


"철거민투쟁 4년, 남는 건 범법자 낙인뿐"
















▲ 판교택지개발주민대책본부 사무실에 붙은 현수막들이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송상엽씨의 아들 박정환(40)씨는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전철협) 판교택지개발주민대책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손잡고 의욕적인 활동을 펼쳐왔지만 15개가 넘는 판교주민단체들 중 하나일 뿐이다. 대책본부 사무실이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 옆에 바로 붙어 있지만 이달 초 전기가 끊긴 뒤론 주로 어머니인 송씨 집에서 지내고 있다.

박씨는 2003년 대책위에 참석하면서 '생존권'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면 주거생존권을 빨리 얻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4년 투쟁 끝에 남은 건 '범법자'란 낙인뿐이다.

박씨는 판교 철거민 투쟁에서 유독 구속자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공가 철거를 막거나 공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문 사람들만 100여명에 이르고 구속자도 상당수다. 이는 판교 세입자들에게 또다른 족쇄다.

"투쟁하면서 얻은 것도 있어요. 하지만 과격하게 싸우면 범법자 되고 온건하게 싸우면 싸워서 얻어가라고 부추겨요. 그들이 원하는 건 우리를 다 범법자 만들어서 아예 못 싸우게 하는 거죠."


[장면 #3]
단식 17일... 목숨 걸고 투쟁하는 사람들
















▲ 지난 21일 성남시청 앞에서 판교세입자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17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문명식 위원장.

ⓒ 오마이뉴스 김시연



"지난해 7월에 한번 구속됐고 이번에도 또 집행유예 족쇄를 채워놔 과격 투쟁도 못해요. 이렇게 목숨 내걸고 하는 극단적 방법밖엔 안 남았죠."


이날 오후 성남시청 앞에선 문명식 판교세입자생계대책위원회 위원장이 17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갈 곳 없는 판교 세입자들에게 생계대책과 이주비를 지원하고, 값비싼 임대료를 감당 못해 민영임대나 국민임대를 포기한 사람들을 구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같은 시간 성남시 도시개발사업단에선 문 위원장이 내건 5가지 요구사항을 놓고 양측 대표들이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성남시는 이미 세입자 보상이나 이주대책과 관련해서 해줄 것은 다 해준 상황이라며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판교에 제2의 강남 만든다며 있는 사람들만 살 수 있게 비싸게 만들었어요. 임대아파트라도 1000만원도 없는 주민들이 들어가긴 힘들어요. 세입자 80%가 신용불량자자 대출받을 여건도 안 되고… 결국 지역주민들은 다 쫓아내고 외지사람들만 살 수 있는 환경인 셈이죠."



"판교는 89년 분당 개발의 복사판"


89년 분당신도시 개발 당시 분당세입자대책본부 위원장을 맡았던 이호승 전철협 지도위원은 "분당개발 당시 주택 공급론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판교개발 논리가 똑같다"고 꼬집는다.

17년 전 1기 신도시인 분당 개발 당시에도 원주민 4300세대 중 70%가 보증금 20만원 정도에 사는 영세민이었지만 세입자 주거대책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강제 철거를 단행해 큰 충돌을 빚었다는 것.

이씨는 "서민주거 안정과 삶의 질 향상을 내세우지만 정작 개발지역 세입자 등 경제약자에 대한 이주대책이나 생계대책 마인드는 없다"면서 "공공임대아파트를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고 주택만 임대하는 방식으로 바꿔 주택가격을 낮추고 연기금을 활용해서라도 진짜 서민을 위한 주거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공사가 한창인 동판교 택지개발지구.

ⓒ 오마이뉴스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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