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분노만으론 '제2의 천안함' 못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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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0.04.22. 조회수 502
칼럼




김근식(경남대 교수/(사)경실련통일협회 이사)


놀라움 자체였다. 금요일 밤중에 전해진 천안함 침몰 소식은 대형 재난의 가능성과 군사적 충돌의 위험성을 동시에 안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다. 멀쩡한 군함이 당했다는 사실과 무고한 젊은이가 희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처음의 천암함 사태는 놀라움과 당혹함 그 자체였다.

곡절 끝에 함미가 인양되고 시신이 수습되면서 천안함은 슬픔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가,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가 산화한 젊은이들을 보면서 온 나라는 안타까움과 애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성금이 모이고 애도의 물결이 이어짐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죄 없는 젊은 넋을 위로하기 위한 슬픔의 바다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놀라움과 슬픔을 지나 우리 사회 일각엔 분노가 쌓이고 있음도 보인다. 내부폭발과 피로파괴가 아닌 외부충격에 의한 것으로 잠정결론이 나면서 이제 장병의 넋을 위로하던 슬픔의 바다는 분노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 도발 주체에 대한 응징과 보복이 거론되기도 한다. 분명한 책임을 묻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응당한 처사이다.


일부 언론과 보수 진영에선 북한 소행임을 확신하는 분위기고 집권 여당의 대표와 당직자도 북한 연루설을 흘리고 중대결정을 주문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로 밝혀질 경우 정부는 단호하고 원칙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불사의 군사적 응징을 제외한다면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뾰족한 수단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유엔 제재가 진행 중이고 우리가 북에 제공하던 경제적 지원은 끊긴 지 오래다. 북을 괴롭힐 마땅한 카드가 없음은 보수진영도 인정하고 있다.


북의 소행일 경우 대북 경계심과 적대감이 증폭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궐기나 규탄의 방식으로 대북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천안함 희생에 대한 분노는 안으로도 돌려질 것이다. 안보를 책임져야 할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고 군의 안보 허점을 비판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도발 주체에 대한 분노와 안보 무능에 대한 분노는 그래서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의 궁극적인 교훈은 슬픔과 분노를 넘는 것이어야 한다. 직접적 원인은 누군가의 무엇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한 것이지만 근본적 원인은 서해바다가 긴장의 바다였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천안함 사태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가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계기이다. 세계적인 경제규모를 가진 반듯한 나라이면서도 전쟁을 일시 중단한 정전상태의 국가이며 따라서 언제라도 교전이 재개될 수 있는 상황임을 재삼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북한의 소행이든 아니든, 서해는 오래 전부터 군사적 대치와 긴장의 바다였고 실제 군사적 충돌이 발발하던 불안한 바다였다. 긴장과 대결이 구조화되어 있는 서해 바다를 그대로 둔 채, 지금의 분노를 조직하고 응징을 실행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단순히 갈등을 억지하는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로부터 궁극적으로 갈등을 종결시키는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로 나가야만 또 다른 천안함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그리하여 긴장과 대결의 바다가 평화와 안정의 바다로 되어야만 천안함 사태가 궁극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된다.


군은 국가의 안보를 책임진 집단으로서 억지력과 자구책을 항상 강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는 분노와 응징을 넘어서서 긴장의 서해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전환할 수 있는 지혜와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천안함 사태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냉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평화다, 그래도 평화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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