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주장, 공동선을 위한 최고, 최선의 정답이어야

관리자
발행일 2009.11.17. 조회수 584
칼럼

 


경실련 주장, 공동선을 위한 최고, 최선의 정답이어야



박세일(전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이제는 오래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체제 내의 시민운동과 전문가집단(교수, 학자 등)이 함께 하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처음하게 된 것은 1980년 대 말이었다고 기억한다. 사실은 관악구 남현동에 있는 나의 집에서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서경석 목사와 둘이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이야기하다가 이러한 생각을 같이 하게 되었다.


당시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일익을 담당하였던 [반체제적 재야운동(反體制的 在野運動]이 사회 운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이제 우리사회도 1987년을 계기로 민주화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反체제 운동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올바른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反체제가 아니라 [체제내 운동(體制內 運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체제내 운동이라면 선진국의 시민운동이 우리에게 참고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단순한 시민운동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왜냐하면 [체제내 운동]이라면 정부가 하는 일에 무조건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비판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시민과 정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정부의 정책을 올바른 戀袖막?유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요컨대 정부비판이 단순한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대안을 가진 생산적 비판]이 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반드시 교수 학자 등 정책전문가들과 함께 하는 운동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정책과제 (당시는 부동산 인플레가 큰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시민운동과 생산적 정책대안을 만드는 전문가운동을 결합한 경실련이란 아이디어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래서 2~3주 후에 나는 이근식 교수 등 학자들에게 연락하고, 서경석 목사는 신대균 목사 등 시민운동가들을 조직하여 우선 준비모임을 하자고 약속하였다. 그래서 첫 준비모임을 영등포의 신대균 목사 자택에서 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경실련은 시작되었다.  


나는 1989년부터 1994년 말까지 5년간 경실련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학교강의만 마치면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경실련 회의를 하면서 보낸 기간이었다. 1993년부터 정책위원장을 하면서 경실련이 세계화시대 우리나라 [시민-전문가 운동]을 선도할 수 있는 운동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젊은 교수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사실 이분들이 오늘날 우리사회 각계각층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까지는 경실련 활동이 정부정책이 나오면 그 정책을 보고 비판하며 정책대안을 마련하여 보완하는 수준이었다면, 앞으로는 경실련이 [세계화 시대의 국가비전과 미래정책]을 미리 연구하여 선도적으로 제시하면서 정부와 시민사회를 앞서서 이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역량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꿈을 가지고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 나는 1994년 12월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들어가고 청와대에서 세계화개혁을 직접 책임지게 되었다. 청와대에 들어간 후 3년간 나는 의도적으로 경실련과의 관계를 끊었다. 시민운동에 정치가 개입하면 시민운동을 망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계화개혁의 일환으로 사법개혁을 추진하다가 한동안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가 있었다. 주위의 보좌관들이 사법개혁은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올바른 일이니 경실련에 도움을 요청하면 어떠냐고 했다. 나는 절대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 청와대 수석회의 때도 시민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항상 시민운동은 독자의 영역이 있어야 함으로 정치는 아무리 선의에서 출발하였다 하여도 어떤 형태로든 -지원이든 억압이든- 시민운동과 관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것이 내 소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8년 정권이 바뀌면서 청와대에 시민사회비서관이 생겼다. 나는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의 미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정권이 한차례 더 바뀌면서 이제는 시민사회수석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이제는 폭풍우가 몰려옴을 느꼈다. 주지하듯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하여 건강한 시민사회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단히 애석하게도 -민주화세력이 집권하면서- 오히려 우리나라의 시민사회가 후퇴하기 시작함을 느꼈다. 참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나는 가까운 장래 우리 사회에서도 건강한 시민사회의 새로운 싹이 다시 움트기를 기원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선진화를 위하여서 이다.  
 
 
경실련에 대한 바람(조직, 정책, 노선 등)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에서는 경실련을 시작으로 하여 여러 가지 시민운동단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이 줄줄이 조직되고 많은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도 커졌다. 그런데 큰 문제가 하나 발생하였다. [시민운동의 정치화(政治化) 내지 이념화(理念化)] 경향이었다. 이것이 사실 대한민국의 시민운동을 망쳤다고 본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전국조직을 가진 시민단체들이 소위 좌파적 혹은 진보적 정당 내지 정권과 연대하기 시작하였다. 본래 시민운동은 특정이념을 지향하는 운동이 아니다. 공동선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이다. 그런데 시민운동에서 이러한 가치지향성이 사라지고 그 대신 권력지향성 내지 이익지향성이 강해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시민운동이 아니라 정치운동이 되어 버린다. 더 나아가 이들 시민단체는 소위 좌파 내지 진보정권의 시기에 권력과 결탁한 기득권세력이 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와중에서 경실련은 한 가지는 잘 해 왔고 한 가지는 부족하였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잘한 것은 비교적 다른 단체와는 달리 정치의 유혹에 휩쓸리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특정이념이나 현실적 이익보다 가치와 원칙을 지키는 정직한 시민운동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이다. 정치의 바람에 휘둘리지 아니했다는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일은 여야, 진보 보수 등에 신경을 쓰지 말고, 국민적 시민적 과제에 대하여 공동선의 입장에서 옳은 답을 구하여 소신을 가지고 확실하게 주장하고 나서야 했다. 내가 보기에 그 점이 약했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시민단체의 발언이 필요한 경우에도 경실련의 발언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때로는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여도 언론이 잘 실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점을 감안하여도 최근 수년간 경실련의 활동이 크게 돋보이지 아니했다. 두 가지 이유일 수 있다. 하나는 정치적 휩쓸림에서 빠지지 아니하려고 하다가 자연 발언과 행동이 소극적이 되었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그 동안 국민적 시민적 과제에 대한 관심과 심층적 연구가 부족하였을 수도 있다. 그 어느 경우든 우리는 철저히 반성하여야 한다. 


나는 경실련의 연구결과나 입장표명이 정부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혹은 진보적 결론인가? 보수적 결론인가? 등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그 분야의 이론적 전문가와 현장의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찾은 정답이라면 이를 확실하게 주장하여야 한다. [지적 정직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경실련의 주장은 항상 국익과 공익이라는 [공동선을 위한 최선과 최고의 정답]이 되어야 한다. 그 결론이 특정의 정파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는 전혀 문제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 


한 가지 더 부탁한다면 이제 경실련은 보다 본격적으로 시민 속으로 더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그리고 시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삶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그 곳에서 새로운 이슈를 발견하고 그들과 함께 그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 노력을 보다 강화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풀뿌리 운동]들을 보다 많이 할수록 좋다고 본다. 나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하여 다시 풀뿌리 운동으로 돌아가야 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거기서 새로운 싹이 나올 것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두 가지다. 첫째는 경실련은 앞으로 정책연구의 질을 높일 것, 그리고 정책대안을 주장하는 데 좀 더 대담해야 할 것이다. 둘째, 시민과 지역사회의 일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거기서 새로운 이슈를 찾을 것이다.


경실련의 무한발전을 기원한다.


 



<약력>


전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현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이글은 2009년 월간경실련 특집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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